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경북 김천 황악산 직지사에 서니 삶이 예뻐지는 듯합니다.
 경북 김천 황악산 직지사에 서니 삶이 예뻐지는 듯합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봄에 뿌린 한 알의 씨앗은 가을에 가서 천만 개의 씨를 맺는다."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에 있는 말입니다. 인과의 종교라는 불교 철학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씨앗 하나가 천만 개 씨앗으로 돌아오듯, 알게 모르게 행했던 행위가 언젠가 자기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걸 일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지은 업보는 스스로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게지요. 이는 삶에 임하는 자세가 신중해야 할 이유입니다.

천왕문의 파격에서 풍수와 고승들의 지혜를 보다

"아도 화상께서 일선군(선산) 냉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가 있다' 하여 직지사라 했다. 또 고려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하실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지하여 붙여졌다. 직지사라는 사명에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근본 가르침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위 내용은 직지사 유응오 종무실장이 전하는 '직지'라는 산사 이름에 대한 설명입니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直指寺, 주지 웅산 법등 스님) 산문에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마치 속세에서 지었던 죄업들이 말끔히 씻기는 기분입니다.

 직지사의 멋은 여유로움에서 깃든 듯합니다.
 직지사의 멋은 여유로움에서 깃든 듯합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직지사 천왕문 안의 사천왕상입니다. 목각이려니 했는데, 흙으로 빚었답니다. 왜 그랬을까?
 직지사 천왕문 안의 사천왕상입니다. 목각이려니 했는데, 흙으로 빚었답니다. 왜 그랬을까?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비스듬히 세워진 직지사 천왕문입니다. 이 천왕문에 고승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비스듬히 세워진 직지사 천왕문입니다. 이 천왕문에 고승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직지사 일주문, 대양문, 금강문을 지납니다. 어~, 천왕문이 비스듬히 꺾였습니다. 보통 절집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자리하는데 반해, 직지사는 천왕문에서부터 대웅전까지가 틀어졌습니다. 마치 총알이 물속에서 비스듬히 꺾이는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천왕문의 파격이 흥미진진합니다. 이와 관련, 자성 스님 설명입니다.

"예전에 천왕문을 보수할 때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이 되게끔 반듯하게 복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천왕문 내부에 모셔진 사천왕상이 흙으로 만들어져 옮기기가 힘들어,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놀라웠습니다. '서기 418년, 아도 화상에 의해 세워져 1천 6백년의 세월과 함께한 직지사'에서 파격을 깨트리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습니다. 직지사에 머무셨던 고승대덕들께서 틀어진 천왕문을 고집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겁니다. 이는 풍수지리에 기초한 전각 배치로 화를 당하는 걸 방지한 듯 여겨집니다. 고승들이 먼 훗날 후손들이 고칠 것에 대비해 사천왕상을 목각 대신 흙으로 만든 지혜이지 싶습니다.

나는 전생에 공양주 보살과 어떤 업보로 엮였을까?

 청기와로 멋을 낸 직지사 비로전입니다.
 청기와로 멋을 낸 직지사 비로전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김천 직지사 대웅전입니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스님, 공양간이 어디 있습니까?"
"저쪽으로 가면 됩니다. 공양시간이 지났을 텐데..."

갑자기 허기가 집니다. 무릇 중생임을 절감합니다. 설법전 밑에 자리한 공양 간으로 갑니다. 그릇을 씻는 중생들 모습이 눈에 잡힙니다. 공양 간 내부. 가족으로 보이는 3명의 보살이 공양 중입니다. 한 줄기 희망이 보입니다. 주방 쪽을 살핍니다. 3명의 공양주 보살이 있습니다. 점심 공양은 냉면이었나 봅니다. 주방 앞쪽의 공양주 보살이 공양 그릇 등을 치우는 중입니다. 땀을 닦으며, 용기 내어 말합니다.

"공양 좀 주세요."
"공양시간이 끝났습니다. 공양은 열두시 삼십분까지입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냅니다. 시간을 확인합니다. 시간은 12시 25분. 속으로 '살았다!'를 외칩니다. 쭈뼛쭈뼛, 그렇지만 직지사 공양 받을 자격 충분하다는 듯 "아직 열두시 삼십분이 안 되었습니다"라고 반문합니다. 순간, 공양을 거두는 보살 손길이 멈칫합니다. 찰라, 보살 얼굴에 멋쩍음이 서립니다. 이 짧은 갈등 순간에 공양을 줄지 말지가 달렸습니다.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멀리서 직지사까지 왔는데 공양 좀 주세요."

보살에게 눈을 떼, 뒤쪽에 앉아 공양 중인 가족을 봅니다. 20대로 보이는 보살 얼굴에 '꼭 먹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주방을 봅니다.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비로소 깨닫습니다. 침묵, 그 속에 부정의 의미가 더 깊다는 것을. 말없이 공양 간에서 물러나왔습니다. 아마, 과거의 나였다면 기어이 공양을 먹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산사에 다니는 이유가 '나를 이기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생에 공양주 보살과 어떤 업보로 엮였을까?'

반성했습니다. 절집을 찾는 중생에게 공양을 나눠주는 소임의 공양주 보살이 배고픈 중생에게 공양을 주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터. 전생에 지은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 그러고 보니, 공양주 보살은 내게 깨우침을 준 스승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목련존자 어머니 설화를 떠올렸습니다. 다음은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을 기본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오봉산 영선사의 <불설우란분경> 재해석 본을 각색한 것입니다.

목련존자 설화에서 선업 닦아야 하는 이유를 배우다

 직지사, 생전 예수제가 한창입니다.
 직지사, 생전 예수제가 한창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옛날 왕사성에 재산이 많고 육바라밀을 열심히 행하는 한 장자가 살았다. 그는 아들 '나복'을 두었다.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나복은 3년 상을 치른 후 준 재산을 3등분해 불릴 계획을 세웠다. 1/3은 집안을 꾸리도록 어머니께 드렸다. 또 1/3은 삼보에 공양하고, 매일 백승재(백 명의 스님을 초대해 공양을 드리는 것으로, 공양 받는 수가 많을수록 복을 더 받는다고 한다)를 베풀도록 어머니께 드렸다. 나머지 1/3로 다른 나라로 가서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떠나자 백승재를 멀리하고, 찾아 온 스님들을 쫓았다. 또 돼지, 오리, 닭, 개 등 짐승들을 사 기둥에 매달아 피를 받거나, 몽둥이로 때리고, 배를 갈라 간을 꺼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로 즐거움을 삼았다. 그러는 사이 큰돈을 번 나복이 귀국한다. 어머니는 매일 재를 올리고 5백승재를 올려 스님들을 공양한 것처럼 꾸민다. 마을 사람들이 나복에게 어머니의 행실을 알려준다. 어머니가 나복에게 변명한다.

"네가 떠난 뒤 내가 너를 위해 5백승재를 지내지 않았다면 내가 문득 중병을 얻어 이레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머니는 중병이 걸려 이레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나복은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한다. 부처님께서 '목련(목건련)'이라 지어주셨다. 목련은 수도 끝에 신통력을 얻자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자 했다. 목련이 어머니를 찾아보니 아귀에서 음식을 먹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했다. 어머니에게 밥을 주었으나 밥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 불덩이로 변해 먹지 못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간청한다. 부처님은 우란분재(백중날 부모님 명복을 빌고 중생의 극락왕생 기원하는 재) 베풀기를 권했다. 목련이 이를 다하자 부처님께서 목련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주셨다.

목련존자 설화는 누구나 자기가 지은 업보는 자기 스스로 받는다는 걸 알려줍니다. 특히 인과응보에 따라 악도에 떨어진 중생도 지극정성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이처럼 죽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살아생전 선업을 부지런히 닦고 악행을 멀리하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닦는 다짐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왜 나만 이럴까?' 보다 기꺼이 봉사하고 살아야

 직지사 경내는 공원 속에 또 다른 공원을 품은 듯한 아늑함을 자랑합니다.
 직지사 경내는 공원 속에 또 다른 공원을 품은 듯한 아늑함을 자랑합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마음 굴뚝입니다. 지나가는 스님 한 분을 붙잡았습니다. 돈성 스님입니다. 스님께 주지 스님 뵙기를 청했습니다. 고뿔에 걸려 힘들다고 합니다. 덕분에 주지 스님 대신 자성 스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지난 해 말 직지사로 발령받아 왔다는 자성 스님은 포근하고 넉넉했습니다. 모습이 달마대사를 닮았습니다.

"스님 공양 하셨습니까?"
"예. 보살님도 공양 하셨지요?"

"아직 공양 전입니다."
"여기는 12시 30분이 넘으면 우리 스님들도 공양 못합니다."

"스님, 아시는 김천 맛집 좀 알려주시지요?"
"산채비빔밥, 쌈밥 등 많이 있습니다."

 달마대사를 닮은 듯한 직지사 자성 스님입니다.
 달마대사를 닮은 듯한 직지사 자성 스님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하얀 고양이 한 마리 왔다 갔다 합니다. 우아한 자태에 반할 지경입니다. 걸음 멈춰 우리를 스리슬쩍 봅니다. 무슨 이야기 오가나 살피는 듯합니다. 이내 재미없다는 듯 고개 돌립니다. 산사 종무소에 앉아 문 밖을 내다보는 폼에서 큰 스님의 기품이 서려 있음을 봅니다. 수도 승 사이에 있으니 고양이까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이룬 게지요.

"고양이 이름은 무엇입니까?"
"연화입니다. 인연 맺은 지 6년 됐습니다."

"어떻게 인연 맺었습니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습니다. 주인 없이 어슬렁거리던 녀석인데, 출발하려고 보니 차에 있데요. 그때는 털색이 누랬는데 씻기고 나니 저렇게 깨끗한 하얀 색이 나오데요. 인연으로 알고 같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려놓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발밑도 보고 편하게 살아야지요. '왜 나만 이럴까?'가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으니 기꺼이 봉사하고 살아야지요."

직지사 아늑한 느낌입니다. 마치 영화 <전우치전>에서 동양화 사이에서 튀어 나오는 도인들의 쉼터 같다고 할까. 스님은 이를 "전각과 전각 사이가 다른 절보다 넓어 그렇게 느껴지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직지사 경내에 있으니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임을 자랑하는 이유를 알 듯합니다. 이렇게 직지사가 가슴 속에 들어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황악산 직지사는 사명대사가 출가한 절집임을 알려주는 듯 사명각이 자리합니다.
 황악산 직지사는 사명대사가 출가한 절집임을 알려주는 듯 사명각이 자리합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