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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하러 가냐."
"작가 빨리 죽어라."
"쓰레기 같은 인생 왜 사냐."

지난해 여름 페미니즘 지지 발언을 해 화제가 됐던 네이버웹툰 <아메리카노 엑소더스> 작가 박지은씨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암 선고를 받아 연재를 중단해야 하는 박씨에게 일부 독자들이 욕설은 물론 투병 사실을 조롱하는 듯한 댓글을 단 것. 박씨는 네이버 웹툰에 달린 댓글만 25만 개였는데 대부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웹툰 작가가 악성 댓글이나 악의적인 리뷰 등으로 고통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악성 댓글 자체는 법적 대응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 씨는 지난달 12일 본인의 SNS에 "저를 조금씩 파괴한 악플 하나하나가 가해자들에게는 던지고 바로 잊을 정도로 가벼운 것들이었지만 그것을 한 몸으로 받은 전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큰 타격을 받았고 투병과 회복 과정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 심경을 전했다.

웹툰 작가들은 연재 마감에 대한 압박과 악성 댓글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 Team 캐잼의 <오늘만 사는 토끼가면>1부 후기 중 한 장면이다.
▲ 웹툰 작가가 앓고 있는 직업병들 웹툰 작가들은 연재 마감에 대한 압박과 악성 댓글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 Team 캐잼의 <오늘만 사는 토끼가면>1부 후기 중 한 장면이다.
ⓒ Team 캐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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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는 우울증·공황장애가 직업병"

공휴일도 없이 일하는 노동 환경도 작가들을 병들게 한다. 주간 연재가 대부분인 환경에서 작가들은 마감을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웹툰 작가 A씨는 "작품 시작 전에 통상 2회에서 5회 정도의 비축분을 갖고 시작하지만 연재를 하다보면 비축분이 빠르게 소모된다. 7일 동안 여유 없이 원고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작업실이나 집에서 혼자 일하다 보니 우울증을 겪는 것 같다"며 "우울증을 호소하지 않는 작가를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레진코믹스에서 <340일간의 유예>라는 작품을 연재했던 웹툰 작가 '미치'씨도 "1년 동안 휴재를 한 번도 안 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출하려면 그 시간만큼 일을 미리 해야 하다 보니 외출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자연히 사람을 많이 못 만나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작업하다가 그냥 눈물이 흐른 적이 많다.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지만 마감을 해야 하니까 울면서 일한다"며 "눈물 흘리면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네이버웹툰에서 <닥터프로스트>를 연재한 만화가 이종범씨도 지난해 4월 웹툰 리뷰 전문 팟캐스트 'LBC 웹투니스타'에 출연해 "최근 웹툰 작가들의 직업병으로 이야기해도 이상해지지 않은 게 공황장애다"라며 "동료 작가들이 (공황장애를) 많이 앓고 있다"고 밝혔다.

'자영업자' 웹툰 작가들, 아파도 치료는 본인 몫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작업 환경이지만 스트레스를 관리할 시스템은 열악하다. 웹툰 작가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돼 직장인들처럼 정기 건강검진을 제공받지 않는다. 일부 포털과 웹툰 플랫폼에서 조건에 맞는 작가들에 한해 건강검진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소수이고 정신과 검진은 없다.

한국웹툰산업협회가 지난해 한방병원, 안과의원, 치과병원 3곳과 협약을 맺고 웹툰 작가와 업계 종사자들의 병원 진료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이 서울에 1~2곳, 부산에는 한 지점밖에 없어 지방에 사는 작가들은 이용하기 힘들다. 진료 과목에 정신과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한다. '미치'씨는 "몸과 마음 모두 무너져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 한 주에 8만 원이었다. 약값까지 한 달에 40만 원이 들었다"며 "이마저도 웹툰 수익이 괜찮을 때 이야기다. 돈이 없어서 치료 중에 그만뒀다"고 전했다.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웹툰 산업 현황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인작가의 월 수익은 12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다. 작년 말 기준 신인작가의 연봉은 1600만 원 수준이다. 웹툰 작업을 위해 작가가 어시스턴트를 쓰면 1회당 15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주 1회 연재라면 어시스턴트 비용으로만 40만 원이 나간다. 작업 비용과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에서 작가들이 한 달에 40만 원을 치료비로 쓰는 건 쉽지 않다.

웹툰 작가들은 연재 마감에 대한 압박과 악성 댓글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 Team 캐잼의 <오늘만 사는 토끼가면> 1부 후기 중 한 장면이다.
▲ 웹툰 작가가 앓고 있는 직업병들 웹툰 작가들은 연재 마감에 대한 압박과 악성 댓글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앓고 있다. Team 캐잼의 <오늘만 사는 토끼가면> 1부 후기 중 한 장면이다.
ⓒ Team 캐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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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

2013년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면서 만화가와 웹툰 작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인'으로 등록해 의료비 일부와 심리상담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2017년 현재 예술인으로 등록돼 이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만화가는 총 677명이다. 이 숫자는 만화가와 웹툰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만화가'로 묶어서 등록한 결과다. 작년 말 한국콘텐츠진흥원 집계 국내 웹툰 작가 수는 5127명이다.  실제 웹툰 작가 중 의료비·심리상담 지원 대상은 10%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 예술인 의료비와 심리상담 지원은 열악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예술인복지재단 예산은 5억 원이다. 재단은 심의를 거쳐 저소득 예술인을 우선 지원한다. 의료비도 전액 지원이 아니라 1인당 5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제한을 뒀다.

심리상담은 소득과 무관하게 1인당 12회 받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매년 받을 수 없다. 전년도에 상담을 받지 않은 '예술활동 증명 완료자'에 한해 제공한다.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센터는 전국 30개소(2017년 기준)이다. 현재까지 246명이 상담을 받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협회와 연계하는 등 홍보는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예술인복지재단 사업비가 부족해 열악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한국만화가협회 관계자는 "작가분들 중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며 "예산상 무료 상담을 진행하긴 어렵지만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심리상담을 진행 중이니 협회 차원에선 좀 더 의학적인 접근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며 "웹툰작가협회가 지난달 27일 출범해 구체적인 계획은 나온 것이 없지만 복지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태그:#골방툰, #나 혼자, #우울증, #공황장애,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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