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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1번가 홍보 영상.
 문재인1번가 홍보 영상.
ⓒ 문재인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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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한다. 처음엔 참 답답했다."

예종석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선대위 공동홍보본부장이 선거 과정을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 선거 포스터의 탄생 일화도 털어놓으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원래 준비했던 사진은 다른 것이었다. 후보가 사진 찍는 걸 싫어해 과거에 찍었던 사진을 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은 포스터로 쓰기엔 해상도가 떨어지더라. 스타일도 올드(old)했다. 할 수 없이 손혜원 의원이 작가 두 명을 대동하고 청주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문 대통령을 찾아갔다. 스튜디오도 없어서 근처 돌사진 스튜디오를 겨우 빌려 지금의 포스터가 탄생했다."

예 본부장의 말처럼, 문 대통령의 성격은 내향적인 편이다. 물론 2012년 대선 때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이번에도 그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얼굴과 공약은 어느 후보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어색한 연기가 담긴 영상부터 항상 엄청난 인파에 뒤덮여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그는 선거 기간 내내 1위 후보로서의 자신감을 내보였다. 때로는 특전사 베레모, 때로는 해태·롯데 프로야구팀 유니폼 등 그가 걸쳤던 의상도 매번 색깔을 달리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공약을 유쾌하게 전달한 '문재인1번가'와 '파란을 일으키자' 포스터도 큰 호응을 얻었다.

'발연기'조차 높은 호응

'파란을 일으키자' 포스터.
 '파란을 일으키자' 포스터.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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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것조차 싫어하는 문 대통령이 이처럼 얼굴과 공약을 널리 퍼뜨릴 수 있었던 데에는 홍보·SNS·유세 분야를 담당한 이들의 공이 컸다. 특히 문 대통령의 공약은 온라인에서 빛을 발했다. 홈페이지 문재인1번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약 설명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진 문재인1번가는 공약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재미와 가독성을 높였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문재인1번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문 대통령의 영상과 추미애 상임선대위원장, 금태섭 전략본부 수석부본부장의 영상은 '발연기'라는 오명(?)과 함께 누리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예 본부장은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하는데, 스틸 카메라도 아닌 무비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되겠나? 그런데 그렇게 어눌하고 부족한 듯한 연기나 표정이 오히려 더 좋았다"라며 "너무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문재인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이 오히려 문재인의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과 금태섭 수석부본부장이 출연한 '문재인1번가' 홍보 영상.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과 금태섭 수석부본부장이 출연한 '문재인1번가' 홍보 영상.
ⓒ 문재인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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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1번가는 4월 17일 처음 선보인 이후 5월 7일까지 310만여 명이 방문했고, 약 100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방문자 1명 당 평균 3.4개의 정책을 들여다본 것이다. 예 본부장은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1번가가 가장 획기적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파란을 일으키자' 포스터를 두고도 호평이 이어졌다.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활용한 이 포스터는 이번 선거 기간에 나온 아이디어 중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김종인 두 대표 시절 당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손혜원 의원은 취임할 때부터 "(자유한국당이)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별러왔다. 포스터는 미세먼지 편으로 시작해 이후 4대강, 색깔론 비판으로도 이어졌고, 누리꾼들의 자발적 참여도 이끌었다.

김광진 유세본부 부본부장(경선 때는 SNS본부 부본부장)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쏟아진 것을 두고 "당 분위기가 지난 대선과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정치는 그런 게 아니야', '선거는 그런 게 아니야'라는 말이 나왔을 텐데 이번에는 시도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시도해보는 분위기였다"라며 "윤영찬 공동SNS본부장 등 상층부 의사결정권자들이 실무진들로부터 최대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절로 흥이 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재인1번가 홈페이지.
 문재인1번가 홈페이지.
ⓒ 문재인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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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이고, 4선이고 마이크 양보"

문 대통령의 유세 현장 역시 철저히 전략에 의해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유동인구가 많은 좁은 길목을 유세 장소로 택했다. 인파 한가운데의 단상도 유세 현장에 항상 존재했다.

문 대통령은 이 두 가지 공식으로 유세의 최대 효율을 냈다. 경호팀에서는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은 어느 곳에 가든 인파에 휩싸여 있었고, 유권자와 많은 스킨십을 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 문재인 유세에 담긴 두 가지 비밀).

특히 이러한 전략은 유세 현장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어딜가나 문 대통령이 인파에 둘러싸여 있는 사진이 만들어지면서, 선거운동 초반 세 과시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다른 후보들이 비슷한 전략으로 유세 현장을 기획할 정도였다. 이 같은 기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이미지팀장이 주도했다.

유세 현장의 막전막후 영상도 민주당의 사례가 유독 이슈를 끌었다. 특히 진선미·이재정·조응천·표창원 의원의 춤 솜씨가 담긴 영상은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공유됐다. 이는 후보의 유세가 끝난 뒤에도 현장을 찾은 유권자들과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문나이트' 기획 덕분이었다. 김 부본부장은 "특별히 계획과 콘셉트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다.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이 있었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라고 떠올렸다.

18일 오후 광주 충장로 거리유세에 나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광주 충장로에 선 문재인 18일 오후 광주 충장로 거리유세에 나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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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김 부본부장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당의 일심단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에서 2030본부장을 맡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땐 당과 후보 캠프 사이의 괴리가 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후보 한 사람을 빛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이크 잡게 해달라', '단상에 올라가게 해달라'는 민원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것도 거의 없었다. 3선 의원이고, 4선 의원이고 중진들도 예외가 없었다. 오히려 다선 의원들이 '시간이 지연되면 내 발언 시간을 빼라', '나는 단상 밑에 있어도 된다. 영입 인사 위주로 올려라'라며 양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지역 별로 선보인 색깔 있는 퍼포먼스도 화제를 불러 모았다(관련기사 : 대구는 베레모, 전주는 비빔밥, 광주는 김응용). 김 부본부장은 "전략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라고 떠올렸다.

"지역별 퍼포먼스도 그만큼 영입인사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획만 하면 참여해주는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6일 진행된 프리허그 행사에도 여러 연예인들이 참석했는데, 이건 돈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행사이다. 다른 후보들이라고 그런 아이디어를 못 냈겠나?"

김 부본부장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점차 '유권자 참여형'으로 유세 문화가 크게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가 유세장에 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연대 의식을 느끼기 위해서다. 촛불집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나이트 등의 기획을 통해 유세장을 찾은 사람들이 유대감을 느끼고, 일상에 가서도 더 쉽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이는 10배, 20배의 효과로 다가올 것이다.

(문나이트 등의 기획을 보고) 일부에선 '투표는 간절함에 호소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유세를 기획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늘려야 한다. 후보가 떠난 후에도 지역 맞춤형 공약 논의, 치맥파티, 청년위원회 버스킹 공연 등이 이어져야 한다. 정당이 이런 기획들을 점점 제도화시켜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이 듣고 싶었던 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일 경남 진주시 대안동 차없는거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 진주 한복판에서 '엄지 척'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일 경남 진주시 대안동 차없는거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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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본부장은 이번 선거의 홍보 기조를 설명하며 "외연확장"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 중 문 대통령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에 방점을 뒀다는 것이다.

"선거 후반에 안보 관련 이미지 조사를 해보면 문 대통령이 60% 이상의 신뢰를 받아 1위를 기록했다. 과거 민주당은 항상 안보 분야에서 취약점을 보이지 않았나? 종북좌파 덧칠 때문에 정권을 못 맡긴다는 여론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엔 외연을 좀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안보를 강하게 강조했다. 선거운동 첫 날, 첫 유세 장소였던 대구에서 그는 특전사 베레모를 쓴 채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유세 때마다 "특전사 다녀온 나 앞에서 군대도 안 갔다 온 후보들은 안보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 군 출신 인사를 영입할 경우,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육해공 각군의 예비역 장성과 영관급·위관급 장교들을 망라한 '튼튼안보유세단'은 선거 막판 취약 지역인 강원도를 누볐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선거를 닷새 앞두고 영입한 '아덴만의 영웅'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안보인사 영입 프로젝트의 정점을 찍었다.

예 본부장은 "문 대통령을 상품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분석했다. 기대 이상으로 가진 자산이 많았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풍부한 국정경험부터 외모까지 대선 후보로서 장점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국정경험, 좋은 인품, 넓은 인재풀, 심지어 선거를 재수했다는 것도 굉장한 자산이다. 외모도 정치인으로서 매우 훌륭하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치인하면 약간 '꾼'의 느낌이 있지 않나. 하지만 그의 외모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것이 유권자들에게 전달이 잘 안 된 측면이 있었다. 아주 고정적인 안티(anti) 문재인 세력도 존재했다. 그의 장점만 잘 전달해도 (이를 극복해) 선거를 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 본부장은 선거 포스터에 담긴 슬로건도 문 대통령이 다른 후보를 압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후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문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슬로건에 담았다"라며 "이것은 엄청난 차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었다. 촛불정국에서 나왔던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에 답을 드린 것이다. 유권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국민이 이깁니다'는 사실 '국민의당이 이깁니다'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당당한 서민 대통령'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는 때에 따라 아주 시건방지게 들릴 수 있다.

'시골뜨기' 빌 클린턴은 명문가 출신이면서 걸프전 승자인 아버지 부시에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슬로건으로 선거를 뒤집었다. '전쟁 때문에 국민 경제가 어렵다'로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촛불정국은 대통령이 나라와 대기업의 금고를 사금고처럼 부리고, 명문 대학을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만드는 등 엄중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슬로건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태그:#문재인, #대통령, #홍보, #유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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