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3일, 동성 간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육군 장교가 구속되는 일이 있었죠. 작년 초 <성 소수자 다시 바라보기>라는 제목으로 여섯 편의 연재 칼럼을 기고했던 이로서 참담한 심경입니다. 너무도 참담하여 차마 펜을 쥘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제 지난 칼럼을 기억하시고 저에게 '질문'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정말 '질문'일 수도, 질문의 형식을 띤 비아냥일 수도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들에 대답해보려 합니다. 비록 그 의도가 비아냥이더라도 성실히 대답해볼 생각입니다. 혹시 이번 사건에 대하여, 저처럼 조롱 섞인 '질문'을 받고도 적절히 대응할 요령이 없었던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께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군 동성애 색출 지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6항 추행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는 제보를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2017.4.13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군인 중 일부는 자신의 성관계 영상을 SNS에 직접 올렸습니다. 이건 '성 소수자인 걸 떠나서라도' 문제 아닌가요?"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심지어 성 소수자분들께도 이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 소수자인 것을 떠나서라도, 공무원이 자신의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죠.

하지만 이는 본질을 흐리는 질문입니다. 조사를 받고 있는 군인들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체포되고 구속당하고 모욕적인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처벌을 받는다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 유지 위반과 음란물 제작 및 유포로 처벌을 받아야 옳죠. 이들은 동성애를 이유로 형법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굳이 동성애자인 점을 감안하지 않아도 어차피 잘못한 일'이란 분들께, 단호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이들이 동성애자인 점을 감안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군대 내 성군기 확립은 중요한 문제 아닌가요?

대한민국 애국 보수의 마음의 고향, 미국과 비교하죠. 미국은 성 소수자 군인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근 트랜스젠더 군인들의 입대 허용 또한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로 바뀌고 나서도 LGBTQ(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성소수자)포용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죠. 안보를 위해서라면 수조 달러도 아깝지 않게 쓰는 미국이, 성 군기 문란으로 군 기강이 해이해질 가능성을 알고도 LGBTQ 포용을 장려한다면 어불성설 아닙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미국이나 북유럽 선진국 얘기하지 말라는 분들 많더군요. 그건 그들의 생각이고 우리에겐 우리의 '전통'이 있다면서요. 하지만 굳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우리나라 안에서만 보아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나옵니다. 여성 군인들의 존재를 보십시오. 어느덧 그 수가 1만에 다다른 대한민국 여성 군인들은 이제 그 존재가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당연하죠.

하지만 사관학교에 여성 생도들을 받아들이고, 여성 ROTC를 선발하겠다는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표적 근거로 내세웠던 것이 바로 '성 군기 문란'입니다. 여군들이 왔다 갔다 하면 남자 군인들이 정신 차리고 나라 지키겠냐는 얘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당시에 이는 꽤나 근거 있는 반론으로 여겨졌습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성차별적 발상이죠.

그러나 여성 군인들은 성 군기 문란의 주범이 되긴커녕 각자의 위치에서 군인으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출산 등의 과정에서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죠.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군대 내 성 군기 문란은 이런 것들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동성애자를 색출해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2015년 여군 대상 성폭행 사건에 대해 '여군의 명확한 의사표시'가 필요했다며 책임 일부를 여군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바로 그 인물입니다.

악법도 법인데, 군형법에 동성애가 금지돼있으면 어쨌든 불법인 건 맞잖아요?

'동성애자 군인 색출 처벌' 지시의 근거가 되는 군형법은 92조의 6 추행죄입니다. 이는 강제적인 성폭력이 아니라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어도 동성 간의 성행위가 있으면 처벌하는 법이죠.

'어쨌든 불법 아니냐'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한다면 답은 '예'가 맞습니다. 동성 간 성행위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불법입니다.

하지만 불법이므로 처벌이 당연하다는 발상은 법의 체계와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거나 모르는 척하는 겁니다. 군형법 92조 6항은 위헌의 소지가 매우 큽니다. 또한, 헌법은 군형법 위에 존재하죠. 해당 군인은 군형법을 위반했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는 재판을 통해 실현될 것이며 군형법 92조 6항의 삭제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여기에 함께할 것입니다.

굳이 위헌 운운까지 하지 않더라도 수사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점 또한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성관계의 물증도 없이 조사를 받기 시작한 군인들이 있고 이들에겐 성관계 여부에 대한 추궁 및 성 정체성 폭로 협박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성행위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과정에서 모욕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사가 이뤄진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도 확인됐습니다. 결국 체포당한 장교가 휴대전화 등을 육군 중수단에 압수당한 사실이 확인되자 변호인은 영장 열람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영장 없이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물품은 모두 다시 수거됐지만, 절차를 무시한 군 수사당국의 야만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성 소수자 폭력이 이루어진 중요 사례

이번 사건이 특히 의미를 갖는 것은, 성 소수자 대상 폭력에 국가 기관의 행정력이 동원된 첫 사례라는 사실입니다. 이건 인권을 가치로 삼는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야만입니다.

배우 메릴 스트립은 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장애인을 비하한 트럼프의 행동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행동을 해도 좋다는 허용(permission)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유세 기간 내내 성차별,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쏟아내고 반인륜적 제도들의 도입을 약속한 트럼프의 당선 이후, 특정 인종 사람들이 난데없이 길거리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는 등의 사건이 크게 증가했죠.

성 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이러한 왜곡된 공권력 행사 역시, '허용'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이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군대는 시작일지 모릅니다. 이미 일선 교회에서는 '성 소수자 친구를 찾아 교회로 데려오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곳도 있습니다. 다음은 동네, 회사, 그리고 각 가정일지 모릅니다. 간곡히 호소합니다.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폭력을, 막아내야만 합니다. 더 이상의 '나중'은 없습니다.


태그:#성 군기, #군형법, #동성애, #성소수자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