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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 시대의 자본주의 사회.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 같지만, 돈으로 획득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들은 분명 존재한다. 또 아무리 돈을 써도 복지의 힘이 닿지 않는 지점도 늘 발생된다. 해법은 무엇일까. 그간 우리는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왔고, 동일한 한계에 부딪혀왔다. 여기에 기존의 우리가 사용해 온 봉사, 노동, 임금, 자본 등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리하여 자본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사단법인 <타임뱅크>의 손서락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손서락 대표가 미국에서 들여온 <타임뱅크>의 아이디어는 매우 매력적이다. 노동을 한 이의 시간을 적립해주고, 적립된 '시간 화폐'를 활용하여 다른 이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노동 대 노동의 교환을 이끌어내는 것이 기본 골자다. 돈 대신 노동을 노동의 보상으로 삼는 이 방식이 전근대적인 물물교환처럼 보인다면, 손 대표의 꼼꼼한 설명을 들어보자. 인터뷰는 지난 25일 진행됐다.


 타임뱅크 손서락 대표.
 타임뱅크 손서락 대표.
ⓒ 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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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기자(이하 강):
우선 타임뱅크 운동이 무엇인지부터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손서락(이하 손):타임뱅크는 '돈을 벌지 않는 사람들의 일'을 시간 단위의 가치로 환산한 뒤 이를 교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주부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 김치를 담그는 노동을 1시간 했다고 할 때, 이는 분명 '노동'이고 '일'이지만 그 자체로 돈을 버는 일이 아니다보니 그것이 '노동'으로 인정되질 못하죠. 그러나 타임뱅크 시스템 안에서 이는 '1시간'만큼의 노동으로 저장이 되어, 미용사의 1시간, 안마사의 1시간, 영어 강사의 1시간 등과 교환할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할 때, 이 분이 피케팅을 하시거나 서명운동을 하셔도 그것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서 '노동'으로 인정이 안 되거든요. 하지만 역시 '타임뱅크' 안에서는 1시간의 피케팅이 노동 시간으로 저장되고 이는 시장 봐주기 1시간, 강아지 산책 시켜주기 1시간 등의 노동과 교환될 수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로 화폐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데요,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요?
:가장 큰 차별점은 봉사활동에 있어 '봉사자'와 '수혜자'라는 전통적인 역할 구분을 벗어나 양자간 상호 호혜적인 봉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봉사활동, 사회기여라고 하면 봉사를 해 주거나 기여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게 마련이죠. 그런데 '타임뱅크'를 이용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봉사자이자 호혜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 효과는 상상 이상입니다. 우선 지속 가능한 봉사활동의 제공이 가능합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봉사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소진시켜 결국 그것을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 타임뱅크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내가 한 봉사활동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지속이 가능해져요. 봉사활동 혜택을 받으시는 분들의 경우에도,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무기력해지기 쉽고 의존성이 생겨 자립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환자든, 노인이든 1시간의 노동을 인정해주는 타임뱅크 시스템 안에서는 이분들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타임뱅크 운동은 2004년 역서 '이제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의 발간으로 국내에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2018년이니까 시간이 많이 경과됐잖아요. 타임뱅크를 아는 분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잘못 굳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요나단 신부님이 구미에서 노인 대 노인 간 봉사활동으로 출발을 한지라, 타임뱅크 자체가 '노인을 위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타임뱅크 운동이 젊은 층이나 아이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페이스북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웃음) 젊은 세대에 다가가기 위해 젊은 감각이나 이해, 단어, 감각 등을 배우고, 제가 속한 세대 안에 갇혀있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전국단위로 확장을 해 보자고 작년에 사단법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 대목이 인상깊습니다.
:가족이 노인을 돌보면 그냥 '돌봄'이지만 요양보호사가 나서면 '노동'이 됩니다. 돈을 버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노동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노동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노동들도 일로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타임뱅크의 입장입니다. 가정주부, 청년실업자 등도 노동을 하지만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노동은 존중 받지 못하죠. 이것에 대해서도 보상이 필요한데, 그 보상을 시장 화폐가 아닌 '시간'으로 돌려주는 것이 타임뱅크예요. 이를 통해 기존의 시장 질서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가정주부, 환자, 심지어 어린아이의 노동까지 '노동'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돈을 받는 일만 노동으로 취급하면, 돈이 되지 않는 일들은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되죠. 민주주의나 인권보호를 위한 투쟁 역시 '노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장 경제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 시장 화폐도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비시장적인 방법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이 타임뱅크의 생각입니다. AI 시장의 확산에 따라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이들이 점점 많아질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냐, 그렇지 않다는 얘기죠. 그들 역시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해 적절히 보상할 수 있는 우리만의 화폐가 필요하고요. 이 새로운 화폐는 종전의 화폐, 즉 법적 화폐 내지는 국가와 은행이 발행하는 화폐가 아닌 '공동체 화폐'가 될 것입니다.

:노동이 교환된 실제 사례가 알고 싶습니다.
:동네 안에서 70대 장애인 어르신 한 분이 90대 노인을 위해 도시락 봉사를 1시간 하신 후, 본인은 미용실에 가서 염색 1시간 봉사를 받고 오신 일이 있습니다. 머리 염색 봉사를 하신 미용사 분은 가게 때문에 시장에 가기 어려운 분이셨는데, 타임뱅크를 통해 '장 보기 노동 1시간'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었죠. 이 케이스는 여러모로 의미가 큽니다. 우선 노인이 노인을 도운 경우인데, 노인은 항상 돌봄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라는 인식을 깨는 사례죠. 앞서 말했듯, 타임뱅크 시스템을 이용하면 봉사를 받기만 하는 이와 제공하기만 하는 이 사이의 불균형을 깨고 '봉사의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이웃과 지역 공동체의 강화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타임뱅크가 가진 하나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수평적 관계망이 촘촘하게 형성되면 그 자체가 사각 없는 훌륭한 복지 시스템이 되기도 하구요.

:타임뱅크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다 보니 도와줄 사람, 이 개념을 가르쳐줄 사람도 필요하겠어요.
:타임뱅크의 기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기 때문에 이를 연결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 '누군가'의 필요성은 아파트를 보면 알 수 있죠. 수많은 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대형 공동주거공간이지만 관계망 형성이 안 되잖아요. 사람이 필요한 거죠. 우리는 사람이 가진 재주를 발굴하고, 그 재주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이 사람을 '코디네이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코디네이터 양성 역시 타임뱅크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러나 두명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타임뱅크입니다. 서로 필요한 것과 제공할 수 있는 노동의 교환이기 때문이죠.

:중증장애인을 간호하는 노동도 1시간이고, 아이들이 재롱을 부리는 것도 1시간이라면, 노동의 강도와 전문성 등에 차이가 있는데 그 경우 조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내용 역시 타임뱅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타임뱅크 안에서 노동은 1시간이면 1시간입니다. 변호사의 1시간이 어린 아이의 노동 1시간보다 값지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개념입니다. 노동이 시장의 가치로만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데 상당 부분 목적이 있는 타임뱅크는 모든 노동의 가치를 같게 평가합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노동들 중에도 귀한 것들이 많아요. 이런 노동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노동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끔 해 주는 것이 타임뱅크의 역할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개념이 더 들어가는데 바로 '코프로덕션', 즉 '공동 생산'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키죠. 봉사자와 수혜자의 분리도 이와 연관이 있고요. 그러나 타임뱅크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혜를 베푸는 시스템으로, 단순한 교환이 아닌 '코프로덕션'을 실현합니다.

:코프로덕션의 추구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어떤 것이 있나요.
:'평등한 관계로 공통의 것을 만들어가는' 코프로덕션은 타임뱅크의 기본 정신을 구현해냅니다. 사회적 기업의 예를 볼까요. 사회적 기업에게 주민은 '소비자'는 아닙니다. 대신 좋은 사회적기업들은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죠. '함께 생산'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의사 결정 과정에 구성원들은 공동으로 참여하고, 권력은 분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사이의 평등은 자연스레 확보됩니다. 전업주부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등도 같은 1표를 갖기 때문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가 되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머'의 개념을 도입, 생산자가 곧 소비자이고 소비자가 생산자인 생산 구조를 만들어내면 합심하여 더 큰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죠. 복지에 있어서도, 어르신 복지를 기획할 때 복지 대상인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면 '코프로덕션'이 구현될 것입니다. '내 돈 냈으니 이만큼의 서비스를 가져오라'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복지를 만들어가는 개념인 것이죠.

강: 타임뱅크에 함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끌어내는 작업부터 진행해야 합니다. 직장만 다녀도 그 안에서 관계망이 형성되나, 경제활동 이탈자들은 아무래도 소외되죠. 코디네이터를 통해 이 시장경제 이탈자들을 사회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직접 봉사를 제공하고 싶으신 분의 참여도 가능합니다. 사실 자원봉사센터 어디를 가든 봉사 일은 구할 수 있죠. 하지만 타임뱅크를 이용하면 봉사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함께 봉사를 받으시는 분께 역할을 드리는 일까지 하실 수 있습니다. 직접 타임뱅크 공동체를 구축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희를 찾아오시면 재능을 가진 두 세 사람을 연결하는 요령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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