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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째 날
▲ 산티아고순례길 12번째 날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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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 독려 응답한다 1988 - 88회 헌혈 88년생 800km 순례길 88장 헌혈증 기부 여행]

세계 3대 선사 지역, Atapuerca(아타푸에르카)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중 주요 도시 4곳을 뽑으라고 하면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그리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뽑을 수 있다. 인구 수도 많을 뿐더러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도시들은 대부분 다 과거 왕국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각 주의 주도이다. 오늘은 그중 하나인 부르고스에 도착하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오늘이 더 기대됐고 다시 종원이도 만날 수 있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3월 14일 12번째 날 3월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봄이 오는지 많이 춥지는 않았고 아주 가파른 길을 걷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늘 오후 부르고스에 도착해서 종원이를 다시 만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눈이 참 반가웠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아타푸에르카에 도착했다.

아타푸에르카 마을 입구에는 원시인 그림이 그려져 있는 큰 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 큰 마을도 아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된 장소라고 한다. 약 100만 년 전부터 살았던 이들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동굴과 화석의 연구를 통해 인류 조상의 생김새 등을 연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80만 년 전 살았던 '호모 엔티 세서'가 발견돼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순례길에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곳이 있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신기하고 재밌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도 외국인 여행자들이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역사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느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 서울 석촌동 백제고분 바로 옆 빌라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이 곳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고대 삼국시대 역사를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고 고분의 형태나 생김새를 봤으면 좋겠는데 여행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항상 들었다.

유적지에는 관광객들이 없다. 하지만 바로 지하철로는 한 정거장이고 걸어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잠실에는 롯데월드에 놀이기구를 타러 온 관광객들과 백화점에서 구입한 물품을 담은 몇 개의 쇼핑백에 나누어 들고 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순례자가 돌로 만든 화살표 모양
▲ 화살표 어떤 순례자가 돌로 만든 화살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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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스페인의 아침
▲ 눈 눈내리는 스페인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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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산

아타푸에르카에서 부르고스로 가는 길은 산을 넘어야 한다. 눈이 많이 오지는 않았고 살포시 길 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돌로 만든 화살표를 보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이 등재된 이후에 프랑스 정부와 지자체는 숙소뿐만 아니라 길 정비에도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표지판을 세우고 화살표로 길을 표시했다. 하지만 구간에 따라서는 길을 잃기 쉬운 곳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럴 때마다 먼저 앞서 걷는 순례자들이 흙바닥에 나무나 스틱으로 화살표를 그리거나 돌에다가 노란 화살표를 펜으로 그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화살표는 본 적이 없었다. 넓은 산 위의 들판에 혹시나 뒤따라 오는 순례자들이 길을 잃을까 봐 만들었을 거라 추측되는 이 화살표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누가 정성 들여서 왜 이렇게 큰 화살표를 만들었을까? 그냥 땅 위에 스틱으로 방향을 표시했으면 눈에 다 가려졌을 텐데 돌로 만든 화살표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길을 따라 걸었다.

며칠 전에는 짜증만 났던 눈도 오늘만큼은 선물 같았다. 오르막길도 왠지 모르게 오늘은 덜 힘들었는데 가벼운 마음이 가방까지 가볍게 만들어준 것은 아닌가 싶었다.

보까디요, 초리소, 또르띠야 데 파타타
▲ 점심 보까디요, 초리소, 또르띠야 데 파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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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스페인 음식, 보까디요 초리소 그리고 또르띠야

까르데뉴엘라 리오 삐고에 도착해서 우리는 어느 바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고 부르고스까지 남은 11km를 걷기로 했다. 아헤스에는 큰 마트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먹을 점심과 간식거리는 없어서 다들 음식을 주문했다. 카페콘레체와 보까디요, 초리소, 또르띠야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대표적인 스페인 음식으로 어느 음식점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다. 초리소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시지인데 '소금에 절인'의미를 가진 라틴어 'Salsicium'에서 유래됐다. 더운 기후 때문인지 스페인 고기들은 주로 소금에 절인 형태가 많다. 대표적으로 살치촌, 하몽, 초리소, 살라미 등 우리나라의 고기보다는 짠맛이 강했다. 붉은색을 띠는 소시지 초리소는 돼지고기와 비계 마늘을 섞어 만들어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 짠맛에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바게트와 함께 먹으면 짭조름한 맛이 덜하고 맛있었다.

보까디요는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바게트 빵 안에 각종 재료를 넣어 만들어 먹는 샌드위치다. 참치나 하몽, 오믈렛 등 속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놀란 점은 빵이 굉장히 맛있다는 것이다. 나는 빵 하면 고정관념처럼 프랑스가 생각났는데 순례길을 걸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난 특히 바게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갓 만든 스페인 바게트는 가격도 0.30~1유로 정도로 부담 없었고 맛도 남달랐다.

또르띠야 데 파타타는 계란을 풀어 감자와 함께 만든 스페인식 오믈렛인데 그냥 먹기도 하고 보까디요로 먹기도 한다. 가게에 따라 그리고 크기에 따라서 1.50~3유로 정도며 마트에서도 냉동(종류와 크기에 따라 1~2유로) 식품으로 판매할 정도로 스페인 국민 음식이다. 또르띠야(Tortilla)는 케이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로 케이크 조각처럼 판매한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 부르고스 대성당 산타마리아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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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영웅 엘시드의 고향, 부르고스

종원 : 어디쯤이야?~
충만 : 우리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해 지금 리오 삐고야
종원 : 응 나 도시 구경하고 있을게 도착할 때쯤 카톡해

점심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종원이가 기다리고 있는 부르고스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은 경사는 크게 차이가 없고 걷기 쉬운 길이었지만 공업단지를 지나쳐야 했다. 탁 트이고 맑은 하늘을 보면서 걷다가 공장지대에 다다르니 소음이 심했다.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만 하는 구간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적지만 순례길과는 이질감이 드는 길이다.

부르고스는 순례자 이외에도 많은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인데 바로 스페인의 영웅인 엘시드의 고향이 부르고스이기 때문이다. 부르고스대성당에는 그의 관이 있고 그의 동상을 시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스페인어 수업에서 빠지지 않는 '엘시드의 노래'로도 유명하다. 나 또한 대학에서 스페인 수업에서 엘시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부르고스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부르고스 도시 초입에 들어서니 부르고스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반가웠다. 17만 명이 넘게 사는 큰 도시라 시내 중심부까지 가는데도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해인이는 걷다가 버스 정류장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며 오빠들을 뒤로 한 채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 시내로 향했다. 우리가 부르고스에 도착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길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반가운 사람은 며칠 전 따로 걸어 먼저 부르고스에 도착한 종원이었다.

종원 : 형 ~보고 싶었어 ~ 
충만 : 너 없으니까 정말 심심해 알베르게는 어떻게 했어?
종원 : 사정 말하고 공립 알베르게에서 하룻밤 더 잤어 

한 알베르게에서는 하루 숙박이 가능하고 이틀 이상은 불가능하다. '크레덴시알'이라는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만 숙박이 가능하며 다음 날 아침 8시 전에는 떠나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하루 더 머물러야 한다면 알베르게 관리자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하면 하루 더 머무를 수도 있다.

대도시에는 각종 시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호텔에 묵으며 그동안 몰린 피로를 풀기도 한다. 특히나 계속 다른 순례자들과 시설을 같이 쓰는 알베르게가 불편한 이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호텔에 묵기도 한다. 하지만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는 규모도 크고 시설도 깔끔해서 많은 순례자들이 굳이 호텔이나 사립 알베르게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종원이와 인사하고 각자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밀린 빨래도 했다. 여름 같은 경우 햇빛이 뜨겁기 때문에 빨래가 잘 말라 매일 빨래해서 말리면 된다. 하지만 지금 철은 날씨 변덕이 심해서 그렇게는 못했고 빨랫감을 모아서 한꺼번에 세탁을 돌리곤 했다. 주로 가격은 세탁 3유로, 건조 3유로였는데 우리는 서로 빨랫감을 모으고 비용을 나눠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모음통 화면
▲ 빅워크 모음통 화면
ⓒ 빅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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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 걸을 때 마다 1noon 이 쌓이고 기부가 가능하다
▲ 빅워크 오늘 하루 걸은 결과 10m 걸을 때 마다 1noon 이 쌓이고 기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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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워크 모음통 개설 2주 후

내가 항상 아침에 키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끄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었으니 바로 '빅워크'였다. 88회 헌혈자 88년생이 약 800km 순례길을 완주한 후 88장의 헌혈증을 기부하겠다는 '응답한다1988' 프로젝트를 만든 지 2주 정도 지나니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걸어주고 계셨다. SNS를 통해서도 헌혈증을 보내주시겠다는 분들이 몇 분 생기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도 왜 걷냐고 물을 때면, 나는 작년에 레온부터 약 300km를 걷고나서 순례길 프랑스길 풀코스(약 800km)를 걷고 싶었는데 언젠가 다시 걷게 되면 걸음이 불편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사실 작년에 유럽 여행이 끝나고서는 취업 준비로 바빠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나 다시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순례자들에게 헌혈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처음부터 헌혈 전도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어 헌혈을 시작했다가 그 횟수가 어느덧 88회에 달했다. 그러다가 단순히 헌혈 참여에만 그치는게 아니라 수혈이 필요한 소아암환우를 도우면 어떨까 시작한 생각에 조혈모세포기증 서약을 하고 주위에는 헌혈독려를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주위 선배들과 동생들에게 말했다가 친한 동생이 '빅워크'를 소개해줬다.

'빅워크'는 걸으면 'noon(눈)'이라는 사이버머니가 적립되고 눈을 모음통이라는 기부통에 기부할 수 있다. 나는 출발 전 순례길을 걷고 나서 헌혈증을 기부하겠다는 모음통을 만들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빅워크를 켜고 눈을 쌓아 기부에 참여했다. 한 명 한 명 참여자가 늘수록 가방은 무거워도 마음은 따뜻하고 가벼워져서 몸이 고된 날도 즐겁기만했다. 기쁜 마음으로 빅워크 어플을 종료하고 다 함께 부르고스 시내를 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태그:#산티아고순례길, #헌혈독려, #적십자, #CAMINODESANTIAGO, #BUR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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