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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11일 만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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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던 시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담벼락에 모인 지지자들의 "탄핵무효!" 구호가 짙은 미세먼지를 뚫고 서초역 일대에 울려 퍼졌다.

21일 오전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법원삼거리 입구에 모여 있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탄 승용차가 쏜살같이 서초대로를 지나는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일부는 그 자리에 남고 나머지는 서울중앙지검 서문 쪽으로 이동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된 오전 10시경 서울중앙지검 서문 담벼락 바깥 인도에 모인 지지자들은 약 400여 명에 달했고 오후 4시 현재까지도 비슷한 인원이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각종 군가와 '아! 대한민국' '손에 손 잡고' 등의 노래를 틀고, 자유발언대 등을 이어가면서 파면 당한 박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발언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근혜 파면 = 대한민국 공산화'라는 등식이 이들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통하고 있었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몇몇 지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을 꼽는 대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은 '통합진보당 해체'였다. 통합진보당은 소속 국회의원인 이석기 당시 의원의 RO 조직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해산됐다. 정작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RO조직의 실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최고 치적으로 꼽는 이 일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뤄졌다. 이제 이들은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향해 온갖 비난과 증오를 쏟아내고 있다.

자신들이 공산주의 정당으로 생각하는 통합진보당을 해체한 이가 박 전 대통령이므로, 박 전 대통령을 몰아낸 이들은 공산주의 빨갱이들이라는 게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공통된 생각처럼 보였다.

지지자들의 집회 현장에서 "빨갱이들은 다 죽여버려야 돼"라는 말은 기본이다. '집회에 방해되니 개인적인 확성기 사용은 자제해 달라'는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막는 것도 빨갱이"라며 "너도 빨갱이냐?"며 같은 편끼리 '빨갱이 공세'를 펴기도 했다. 자신만 빼고 다른 이들 모두 빨갱이가 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제 '빨갱이 프레임'은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하는 검찰로 향했다.

검찰총장 이름 외치며 다같이 "○새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서편 담벼락 밖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응원집회를 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서편 담벼락 밖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응원집회를 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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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반대 활동에 앞장섰던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는 일장 연설을 마치고 방송차에서 내려오기 전 집회 참가자들과 '욕설 퍼포먼스'를 벌였다. 주 대표는 "제가 '김수남 (검찰총장) 물러가라'고 하면 여러분이 욕을 하면 됩니다. 김수남이가 들을 것"이라고 했다. 몇 번 반복하자 집회 참가자들의 욕설은 "○새끼"로 통일됐다. 주 대표가 "김수남!"을 외치면 참가자들은 "○새끼!"라고 답하는 '욕설 퍼포먼스' 소리가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사이에 울려퍼졌다. 

주 대표는 이날 곧 다가올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 참석자가 대부분 노년층인 상황에서 주 대표는 유산 상속을 무기로 자녀들의 대선 투표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대표는 "자녀들이 자유민주세력에게 투표하지 않는다고 하면, '유산은 복지재단 같은 곳에 기부하겠다'고 해보라"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 자식들을 위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옥순! 주옥순!"을 연호했다.

조사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을 응원하려는 집회에서 검찰을 향한 화풀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열흘 안에 반드시 청와대로 돌아갑니다"라며 희망을 북돋우려는 이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내란 외환의 죄가 아니면 임기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를 위반했기 때문에 법치주의인 한국에서 헌재의 결정이 번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주장의 요지였다.

이 얘기는 '형사상 소추'와 탄핵 소추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헌법 84조가 현직 대통령에게 보장한 것은 형사상 혐의로 기소당하지 않을 권리일 뿐이다. 헌법 65조가 규정한 탄핵 소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대한 재심절차도 없다.

그런데도 연단에 선 박아무개씨는 마이크를 잡고 박 전 대통령이 복권된다고 확신에 차서 소리를 높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환호했다.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태그:#박근혜, #응원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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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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