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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승 전주 신흥고등학교 교장
 조재승 전주 신흥고등학교 교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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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열렸다. 오전 11시 국민들의 눈과 귀는 모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에게 쏠렸다. 결과는 전원 일치로 탄핵 소추안이 인용되었고 탄핵을 바라는 국민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른 것 이상으로 환호했다.

이런 가운데 지방의 한 고등학교가 주목을 받았다. 바로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세워진 전주 신흥 고등학교(아래 신흥고)다. 신흥고는 1900년 미국의 선교사가 세운 학교지만 3.1운동과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을 보냈고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때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위에 참여하는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참여했다,

이런 전통이 있는 학교여서였을까? 신흥고는 계기 수업의 하나로 10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전교생이 강당에 보여 방송 중계를 시청했다. 단지 탄핵 심판 방송을 시청한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탄핵 심판의 용어를 설명하고 결과에 대해 자유 발언대를 통해 의견을 나눠 민주주의의 산교육이 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시간을 마련했는지 궁금해 조재승 신흥고 교장을 지난 13일 교장실에서 만나 탄핵심판 계기 수업에 대한 얘기와 함께 선거 연령 문제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다음은 조 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지난 10일 박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강당에서 함께 시청해 화제가 되었는데 예상하셨나요?
"화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강당에 모여 함께 시청하는 것을 우리 학교 어느 선생님이 SNS에 올린 건데 그것이 알려져서 화제가 된 것 같아요."

- 어떻게 이것을 하게 되었어요?
"헌재의 탄핵 심판은 선생님들과 같은 어른들만의 관심일 수는 없죠. 학생들도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을 했어요."

전교생이 함께 헌재 탄핵 선고 시청

-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있었던 때는 어땠나요?
"같이 시청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의 역사의식이나 정치의식이 좀 더 성장하고 성숙했잖아요. 그런 학생들에게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이 시대는 좀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국가적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어른 못지않게 관심과 의견을 갖는 것 같아요. 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블랙홀이었잖아요. 선생님들도 궁금한데 아이들도 궁금할 것 아니에요."

10일 전주신흥고 강당에서 교사와 학생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시청하고 있다.
 10일 전주신흥고 강당에서 교사와 학생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시청하고 있다.
ⓒ 전주신흥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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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주신흥고 강당에서 교사와 학생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시청하고 있다.
 10일 전주신흥고 강당에서 교사와 학생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시청하고 있다.
ⓒ 전주신흥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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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서 반별로 TV 시청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강당에서 함께 본 이유는.
"TV 시청을 할 것인가와 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교직원 회의를 통해 선생님들의 의견을 물었어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겠다.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의 좋은 기회다'라고 하더라고요. 또 반별로 교실에서 보는 것보다 전체가 같이 모여 보면 좋겠고 그냥 보게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탄핵이란 건 무엇인지 또 인용은 무엇이고 기각이 무엇인지 용어들을 공부할 기회도 갖고 끝나면 학생들의 의견도 한자리에서 나눠보고 가능하면 토론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같이 보게 된 것입니다."

탄핵 선고 계기수업 "민주주의를 위한 산 교육"

- 정말 민주주의의 산 교육이 된 것 같아요.
"탄핵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각하될지 최종 선고 전만 하더라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전체 학년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방송을 시청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같이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면 이거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한 산 교육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 시청하며 아이들은 어떤 태도였나요?
"굉장히 진지했죠. 우리 학교는 전 학년 또는 학년 단위로 강당에 모여 뭔가를 하는 일이 많은 편인데, 다른 때는 떠들거나 졸거나 다른 짓을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런 학생들이 거의 없었어요. 이정미 재판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는 크게 실망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 교장 선생님은 탄핵 심판 어떻게 보셨어요?
"탄핵 선고 이후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시간을 좀 가졌는데 학생들이 학년별로 고르게 나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어요.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끝난 다음 저는 학교장으로서 제 소견과 바람을 말했는데 '특정인의 탄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헌재의 결정은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이런 점에 오늘 탄핵심판의 의미를 두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민주주의 시대에 평민이라고 하는 말은 봉건시대 평민의 의미와 다르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봉건시대의 평민은 하위 신분을 의미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의 평민이라는 말은 법 앞에 모두가 다 평등하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다 평민이다. 오늘 탄핵심판은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말을 했어요."

- 전주 신흥고는 3.1운동,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마다 참여하였잖아요. 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 신흥학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를 위해 세운 학교입니다. 그런데 1900년 구한말 국난의 시기에 학교 이름을 '신흥'이라고 했어요. '신흥'이라는 말은 새롭게 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정도의 의미로 학교 이름을 '신흥'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신흥'의 영어 이름은 '새벽'이라는 dawn입니다. 새벽은 하루가 시작하는 첫 시간인데, 그 새벽의 의미로 학교 이름을 '신흥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신흥학교 교사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차별이 아닌 평등의 시대가, 나라의 주인이 어느 한 사람이 아닌 국민이 모두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가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상, 근대의 세상이라는 것이지요. 당시 우리 신흥학교의 선생님들은 이런 새로운 세상을 신흥학교의 학생들을 통해 열어 보겠다는 웅대한 비전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근대 의식을 심어 주었지요.

학교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신흥학교 학생들은 전주지역 3.1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동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어요. 학교 문을 해방 후까지 10여 년 동안 닫았죠. 또 1980년 신군부가 민주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에 맞서 민주화 시위를 일으키기도 했어요. 이런 역사는 민족민주 학교로서의 우리 신흥학교의 큰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 탄핵 심판 선고 마친 후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했다던데 어떤 내용이 있었나요?
"학생들은 탄핵 결정이 이뤄지니까 환호 하고 박수를 쳤어요. 나와서 했던 자유 발언들도 탄핵을 기뻐하는 발언들이었고요. 몇몇 학생들은 '다음이 문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신중하고 사려 깊게 살아가 할 것이다, 우리가 유권자가 되면 좋은 일꾼을 뽑자'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법치국가에 대한 배움도 있었을 것"

- 이번 탄핵 사유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였잖아요. 아이들은 그것에도 관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당연하죠. 우리 학교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매년 4월이 되면 희생자들을 위한 추념 기간을 가지고 있어요, 이 행사는 학생회가 주관하고 많은 학생이 추념의 글을 쓴다든지 하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세월호와 관련해서 탄핵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관심이 컸을 것이에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 탄핵 사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잖아요. 이런 결정에 불만이 있었겠지만, 이걸 탄핵 사유로 받아들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정미 재판관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는 또 다른 측면의 배움도 있었다고 봐요. 법치국가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벌을 줄 때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벌을 줄 수 있다고 하는 배움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선거 연령을 18세로 내리자는 주장에 대해 찬반이 팽팽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 18세이면 고등학교 3학년 가운데 일부 학생들이 해당되는 연령입니다. 대입을 앞둔 수험생이라는 문제가 있어서 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믿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선거연령에 대한 문제는 이게 누구에게, 어떤 정파에 유불리 할 것이냐를 떠나 거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 사회적 공론의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되어야 합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정파적 이해의 틀 속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 역사 교사 출신이시잖아요. 탄핵이 인용되었음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감히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탄핵 선고 이전에도 국정 교과서를 통한 역사 교육은 사망 선거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탄핵 선고 이후엔 더 어렵게 된 것 아니겠어요? 국정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민주주의 시대에 언론의 역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민주권을 확인하고 헌법 가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가능했던 것은 언론이 그래도 역할을 잘 해줬기 때문입니다. 혼미한 안갯속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오마이뉴스〉가 우리 사회의 횃불과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마이뉴스〉와 같은 언론, 정론이 살려면 진실의 소리를 해주는 언론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도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태그:#조재승, #전주신흥고등학교, #박근혜, #탄핵심판, #계기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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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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