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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신나리 신지수 신민정 김도희

"일곱 살 난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엄마, 박근혜 이제 대통령 못하는 거 알아?'라고 하더라. '박근혜가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또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이제 대통령 못한대. 우리 대통령 새로 뽑아야한대'라고 말하는 아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들이 전해준 말을 그 현장을 알려주고 싶어 오늘 광화문에 나왔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찾은 시민들은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7살, 5살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참석한 유미란(36)씨는 촛불 광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유씨의 아이들은 불빛이 반짝이는 LED 전구 머리띠를 쓰고 광장을 누볐다.

동대문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배미경(55)씨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기쁨을 표현했다. "탄핵 인용 발표를 듣고 책상 밑에 내려가서 울었다"는 배씨는 "그동안 19차례 집회에 모두 참석해 개근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참석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도 집회에 나와서 거의 4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라며 "그동안 광화문 2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은 많았지만 수도 없이 바람맞았다. 하지만 다 이해한다. 오늘은 다 괜찮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오아무개(27)씨는 "오늘 하루 종일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며 "매년 3월 10일을 '국민승리', '시민이 승리한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너지지 않는 산 같고 답답한 성벽 같았다"면서도 "이제 재벌이나 적폐 청산 등과 같은 다음 산을 넘을 차례다"라고 강조했다.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 강아지 '만구' 주인 박영수씨는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란 리본을 목에 걸어줬다"고 했다.
▲ '박근혜 파면' 축하 촛불문화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 강아지 '만구' 주인 박영수씨는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란 리본을 목에 걸어줬다"고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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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이목을 끄는 사람도 있었다. 박영수(66)씨는 갈색 복슬강아지 '만구'를 집회 현장에 데리고 나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구로에 사는데 만구와 함께 한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집회 현장에 나온 게 이번이 8번째"라며 "아침에 탄핵 선고를 생중계로 보면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끌어안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광화문 잔디 위에 앉아 '탄핵 축하주'를 드는 이들도 있었다. 페이스북 봉사 모임 '재미난 연구소'의 백세인(47) 소장은 회원 8명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백씨는 "막걸리 100병을 사와서 사람들에게도 나눠줬다"며 "탄핵을 기념하려고 회원들이 사비를 털었다"고 했다.

'박근혜 탄핵' 사라진 광장.. '정의' 바라는 시민들

'박근혜 탄핵' 구호가 사라진 광장에는 '사람'과 '정의', '상식'이 등장했다. 강유정(25)씨는 "어느새 한국에서 '자살'은 센 표현이 아니라 점심먹자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됐다"라며 "앞으로는 우리의 당연한 상식, 정의가 지켜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역사적인 오늘'을 기억하려고 광화문을 찾았다는 장화정(51)씨는 "오늘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처럼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날"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라며 "앞으로 대통령 탄핵을 시켜야만 하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드러냈다.

이동준(25)씨는 '사람'을 강조했다. 이씨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우리 개개인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년, 비정규직에게는 이 나라가 여전히 헬조선이다.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와야 오늘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태그:#박근혜탄핵, #탄핵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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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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