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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인사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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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2일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밝힌 그는 의욕적인 태도로 활동을 본격화했고, 그의 발언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며 이런 저런 평가를 끌어내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된 발언들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두 가지 발언은 <조선일보>가 게재한 반기문 기내 동승 인터뷰와 지난 14일 소위 김치찌개 간담회를 다룬 파이낸셜 뉴스 기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기내 인터뷰에서 반기문은 본인이 UN에서 청년 실업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고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고 설명했다.

"UN 역사상 처음으로 청년 유스 엔보이를 임명. 28세. 조단 아흐메드 Alhendwer(*주. 최초의 youth envoy는 아흐마드 알헨다위로 요르단 출신이다. 조단은 요르단 출신임을 말한 반 전총장의 발언을 이름으로 오해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를 임명했다. 젊은 사람만 갖고 안 되니까 경험있는 인재. 오스트리아 총리 출신. 페이만이라고 얼마전에 총리가 됐다. 그 사람은 청년취업을 위한 특사로 임명했다. 이게 처음이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주장을 하고 각국 지도자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

이어 반기문은 다음 날 오후 청년 창업가, 워킹맘, 대학생 등과 함께 김치찌개를 먹으며 간담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 대한 보도한 기사들 중  파이낸셜 뉴스에서 언급된 청년인턴론은 매우 흥미롭다. 반기문은 현재 한국의 경직된 고용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보다 유연한 채용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구체적인 예로 현행 산학협동과 인턴제를 적극 보완 활용하는 방식을 들었다. 반 전 총장은 "대기업이 대학과 연계하여 학생들에게 기회를 줘야한다. 인턴이나 보조사원으로 인성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서 "그런 면에서는 2~3년 같이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채용하는 방식을 확대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이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반기문의 발언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김광진 전 의원은 "청년인턴제도는 이미 실패한 제도이며, 이미 정책방향은 전면적인 정규직화로 전환되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인 청년들은 "백만노예양병설"이 아니냐며 반기문의 발언에 대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고강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유엔 인턴, 그런데...

여러 반응들 중 2009년 UN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했다고 밝힌 사람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경험담(현재는 삭제됨)은 매우 흥미로웠다.

먼저 유엔인턴십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유엔인턴십은 보통 석사 학위 이상, 혹은 2~5년 이상의 실무 경험자들을 선호한다. 선발자들은 2~6개월의 기간 동안 근무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인턴들은 수습과정이나 보조업무를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정식직원이 해오던 일을 첫날부터 전담할 정도로 실제 업무 투입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즉 상당히 높은 스펙을 요구하며, 실제로 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에서 공익을 위해 이바지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청년층에게 매우 인기있다. 하지만 그가 올린 경험담은 화려한 유엔인턴십과 이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해본다. 그는 유엔 무급인턴으로 근무하던 당시 많은 인턴들이 체제비, 생계비의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심지어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인턴십을 포기하는 케이스도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인턴들의 의견을 수렴해 본인이 대표로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국문과 영문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고 썼다.

"유엔에서의 인턴은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물가가 비싼 뉴욕에서 최소 2개월이상의 무급 인턴 생활은 그 자체가 높은 문턱이다. 유엔의 무급 인턴제를 유급으로 바꾸는 것이 당장 불가능하더라도, 차기 인턴들을 위해서라도 조직 차원에서 숙박시설만큼은 적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방안 등의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본인이 인턴을 마칠 때까지 반기문 사무총장은 답을 하지 않았고. 사무총장 개인 면담을 신청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했다. 이 경험담은 유엔 인턴(청년들이 주로 지원하는)의 중요한 문제, '무급'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기구인 유엔은 관행적으로 무급인턴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의하면 1997년부터는  비정규직원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기로 결의까지 했다. 인턴은 유엔의 정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공식적으로도 유엔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턴들은 인턴직 수행을 위하여 "자비"로 비행기를 타고 고물가의 뉴욕과 제네바에 도착해, "자비"로 주거비와 식비, 의료비 등을 해결하며 일한 후, "자비"로 귀국해야 한다.

FII(유엔의 전,현직 인턴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UN내 인턴시스템의 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Fair Internship Initiative(공정 인턴쉽을 위한 운동)(이하 FII) 의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부담의 결과 74%의 인턴은 선진국에서 충원되고, 78%의 인턴은 가족의 원조가 없었더라면 인턴에 지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곧 무급인턴 시스템은 개인의 희생 뿐 아니라 기회의 불공평을 구조적으로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 131명에서 2014년 4018명으로 늘어난 인턴

16년 3월 11일, 제네바에서 벌어진 유엔 무급 인턴들의 시위
"무급은 불공정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유엔 무급인턴 항의 시휘 16년 3월 11일, 제네바에서 벌어진 유엔 무급 인턴들의 시위 "무급은 불공정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 Fair Internship Initiat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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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간 이어져 왔던 무급 인턴문제는 2009년에 한국인 인턴의 문제제기와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의 결단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9년 반기문은 전례를 유지하기로 한 듯하다. FII의 자료에 따르면, 유엔의 인턴은 1996년엔 131명에서 2014년엔 4018명으로 늘어났다. 반기문 총장의 재임 시절(07년~16년) 중인 14년 기준, 유엔 직원은 총 4만4000여 명이었고, 이 중 인턴의 비율은 9%에 가까웠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반기문은 재임기간 동안 무급 인턴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무급인턴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15년, 유엔은 무급 인턴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유엔 유럽본부에서 6개월 과정 인턴에 근무하던 뉴질랜드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는 제네바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경제난을 겪던 유엔의 인턴들은 모여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7월 14일 파업을 했고, 유엔의 수장인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유엔의 기본원칙인 헌장 - '유엔은 주요기관이나 보조기관에 참가하려는 남녀에게 어떠한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 -와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똑같은 일에 똑같은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23조를 언급한 그들은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팩트올의 기사에 따르면,  11월, 유엔인턴들이 피켓을 들고 뉴욕 유엔 본부 건물 안으로 시위를 하러 갔을 때, 보안요원들은 이들을 막아 섰고, 건물내 시위 뿐만 아니라 사진 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대상으로 유엔의 인턴정책을 재검토 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
▲ 프랑스 교육부 장관의 공식서한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대상으로 유엔의 인턴정책을 재검토 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
ⓒ 프랑스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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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당사자들 외에도, 유엔의 내외부에서 반기문 유엔 총장에게 대책을 요구했다. 2016년 3월 4일, 제70차 총회, 제5위원회 회의(Fifth Committee meeting of the 70th General Assembly)에서 이안 리차드 (Ian Richards) UN 직원 관리위원회 부회장(Vice-President of the United Nations Staff Management Committee)은 유엔 사무 총장에게 유엔 인턴을 위한 봉급(stipends)도입에 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 또한 그는 "유엔 직원들은 국제 노동 기준에 반하여 인턴에게 무급으로 일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12월 17일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반기문 사무총장 앞으로 유엔의 인턴정책을 재검토 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발송했다.

그러나 반기문 유엔총장은 2009년에 이어 15년에도 역시, 인턴들의 건의나 항의에 대해 어떤 공식 답변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떤 제도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비드 하이드와 유엔 인턴의 반향을 소개한 한국일보 기사에서 "다만 반 총장은 18일 유엔 사무국 인턴들과의 사진촬영 시간에 인턴의 '경제적인 상황'에 대해 사과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란 언급을 찾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2017년 대선가도가 본격화된 이 시기에 반기문은 다시 청년실업을 이야기하고 청년인턴제의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공정한 기회의 문제였던 무급 청년 인턴에 대해 "우려"조차 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택했던 그이기에 그의 이러한 발언은 무게감이 떨어진다.

2014년, 달라진 한국 청년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반기문이 한국을 떠나 있던 10년 동안 젊은이들은 본인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에서 의미를 찾았고 깨달음을 얻었다. 10년 출간된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은  2011, 12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후 누적 판매부수가 300만부에 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앞선 세대에게 위로와 길안내를 받고자 했던 청년들은 2014년 즈음에는 달라졌다.

SNL에서 중도 탈락하는 인턴으로 분한 유병재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하는 상사를 향해 눈을 똑바로 보며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뭐가 청춘이야!"를 외치고 끌려 나가는 모습이나,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내 말이 틀려?"란 사자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소비하기를 택했다. 웃음이 사그러 들면 유병재가 페이스북에 올린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를 떠올리며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관심을 가지지도, 해결하지도, 우려하지도 못했던 청년인턴제를 반기문은 다시금 끄집어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 청년실업의 해법으로 말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깊은 회의를 느끼게 한다. 2~3년간 보조사원으로 인성을 파악 당한 후에야 겨우 정규직이 될 기회를 부여받는 청년인턴제, 그것을 해법으로 긍정할 청년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반기문은 한국 청년들의 현실을 보는데도, 한국 청년들의 마음을 읽는데도, 그리고 한국 청년들의 절망을 위로하는데도 모두 실패했다.


태그:#반기문, #유엔, #청년인턴, #무급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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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basic truth of the human condition that everybody lies. The only variable is about wh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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