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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분회 1월 10일, 새해 첫 현장 운영위를 박수로 시작하겠습니다."

광운대분회 간부 12명이 참석한 현장 운영위원회가 오전 10시에 개최됐다. 활기찬 박수소리가 멎을 때쯤 최수연 분회장님이 운영위에 상정할 안건들을 이야기했다.

"어제 (서경지부) 집행위 회의 안건을 중심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2시에 집단교섭이 시작됩니다. 지부 (사무실)에서 진행합니다."

벌써 또 서경지부 집단교섭의 시간이 다가왔다. 서경지부 소속 대학 사업장(분회)의 간접 고용 노동자들(청소·경비·시설관리 업무)이 임금협약에 도장을 찍은 지 대략 9달 만이었다. 정말 '뫼비우스의 띠' 같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어김없이 험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관련 기사: 툭하면 정회에 입장도 불분명... "이게 무슨 교섭?").

"작년까지 우리와 함께 집단교섭에 나섰던 고대병원분회와 서울여대분회의 교섭권이 올해부터 박탈됐습니다. 중앙대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노조가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서경지부 집단교섭에 들어오지 못하고요. 소수노조라서요. (현재까지 서경지부에서는) 4개 분회가 (2017년 임금·단체협약) 교섭권을 박탈당한 상태입니다."

4개 분회가 교섭권을 잃은 건 교섭창구 단일화의 영향이 크다. 오로지 다수노조만 사측과 교섭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소수노조는 개별교섭조차 힘든 실정이다. 소수노조의 개별교섭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분회장님은 다른 사안들도 전달했다.

"임단협 말고, 사업장 보충요구안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분회에서 필요한 요구사항들을 넣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설 전날쯤 원청 요구안도 전달할 거예요. 원청 면담도 진행할 거고요. 간부님들은 원청 방문 때 제출할 안건들을 준비해주세요. 퇴직금 관련한 것들도요. 조합원들 요구사항을 사무장님이 좀 취합해주시고요. "

운영위가 막바지로 흘러갔다. 분회장님이 대뜸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운영위원들에게 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노동자들 보고, 요구 좀 그만하래요. 애들도 말 잘 들어야 더 챙겨준다고. 참 어이가 없어서..."

한 운영위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는 아이한테 젖도 더 주지. 관심도 더 주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권리를 요구해야 보장받는 거지."

다른 운영위원도 살짝 격분한 목소리로 한마디 보탰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권리 누가 보장해주나? 여태 우리가 말 안 하고 꾹 다물어서 그렇게 노예같이 살았었나?"

운영위원들의 분노가 곧 가라앉자, 분회장님이 각 운영위원들의 이야기를 수렴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지난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별 일이 없는 듯싶었다. 다시 박수로 운영위는 끝이 났다.

서경지부 집단교섭의 시작

"간접고용 법제도 개선! 최저임금 1만원 쟁취! 2017년 지부 집단교섭"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교섭 장소에 걸려 있다.
 "간접고용 법제도 개선! 최저임금 1만원 쟁취! 2017년 지부 집단교섭"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교섭 장소에 걸려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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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회장님, 올해 교섭은 어떨 것 같으세요?"

나는 분회장님께 교섭 관련해서 질문을 했다. 분회장님이 올해 집단교섭을 어떻게 예상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 기습적인 질문에 분회장님은 입을 앙다문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곧 입술을 뗐다.

"올해가 4번째 교섭인데,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매 교섭이 그래요. 더 힘들어지거든요. 3월 말쯤에 업체가 계약만료 돼서 교섭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겠어요. 4월부터는 새 업체랑 교섭할지도요."

우리는 곧 영등포구에 있는 서경지부 사무실로 갔다. 박순옥 부분회장님도 함께였다. 지부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분회장님과 부분회장님은 보충협약에 어떤 사안을 문구로 집어넣어야 할지 계속 상의했다. 원청 면담 때 담당자에게 요구할 문제도 긴밀하게 이야기했다.

얼마 후, 우리는 지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1시간 만이었다. 다른 사업장의 분회장님과 간부들이 이미 와 있었다. 나는 한 분 한 분께 인사했다.

곧이어 노조 교섭위원들끼리 사전 회의를 진행했다. 집단교섭 전에 대책을 세우는 시간이었다. 박명석 지부장님(노조 교섭대표)이 앞으로 집단교섭을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노조 교섭대표)이 앞으로 교섭을 어떻게 진행할지 노조 교섭위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노조 교섭대표)이 앞으로 교섭을 어떻게 진행할지 노조 교섭위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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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비정규직이란 말조차 없었어요. (비정규직은 노동자들을) 쉽게 부려먹고, 돈 적게 주기 위해서 만든 거죠. 용역이 불법이다, 하니까 (이제는) 파견법도 만들고요. 용역을 합법으로 만들려고요."

지부장님은 간접 고용 철폐를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의 개정'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한 '최저임금 1만 원으로의 인상'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두 방안은 올해 서경지부의 핵심 추진사안 중 하나였다(관련 기사: "우리도 떡국 먹고 싶었는데... 국회 노동자 부러워요"). 법 제도 개선과 최저임금 1만 원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사전회의가 끝난 다음, 바로 본 교섭으로 이어졌다. 각 용역업체의 교섭위원들이 회의장소로 들어왔다. 작년에 봤던 사측 교섭위원들도 있었다. 노·사 교섭위원들이 마주보는 형태로 모두 자리에 않고 보니, 교섭 공간이 상당히 비좁았다.

2017년 서경지부 집단교섭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17년 서경지부 집단교섭이 한창 진행 중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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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경지부 교섭위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교섭위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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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1차 교섭 및 상견례가 시작되겠습니다."

지부장님이 2017년 집단교섭의 개회를 선언했다. 곧바로 노사 간 상견례를 했다. 사측 교섭위원들의 자기소개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와, 우리나라에 진짜 용역업체가 많구나. 용역업체 상호명부터 천차만별이네. 그런데 대학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용역업체를 쓰는 이유는 뭘까?'

노사는 교섭과 관련한 절차들을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업체 담당자들은 기존의 임금·단체협약을 올해 집단교섭 완료 때까지 승계하겠다는 기본협약서에 서명했다. 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노사 간의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대학과 계약한 용역업체 한 군데서 서약을 안 했다. 기존 단체협약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기본협약서에 서명부터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경지부 사무처 활동가가 단체협약 사본을 서명 거부 업체에 건네줬다.

"2017년 (서경지부 집단교섭) 요구안 다 받으셨습니까? 집단교섭과 관련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교섭위원이 서경지부의 단체협약 요구안을 보고 있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교섭위원이 서경지부의 단체협약 요구안을 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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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사측 교섭위원들에게 서경지부 집단교섭 요구안을 제시했다. 서경지부의 요구안은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으로 나뉘었다. 임금협약의 주요 골자는 기본시급 1만 원이었다. 최저임금 1만 원과 연계되는 사안이었다. 올해는 임금협약과 함께 단체협약도 새로 갱신해야 한다. 서경지부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2년이 완료됐기 때문이다. 올해 협상할 단체협약에 개정·신설 조항도 일부 포함됐다.

그런데 갑작스레 사측 교섭위원 자리 쪽에서 조금은 커다란 목소리가 노측 교섭위원 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2017년 서경지부 집단교섭 요구안을 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왜 이렇게 요구사항이 많아?"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부러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듯싶었다. 나는 누군가의 혼잣말이 꽤나 귀에 거슬렸다.

요구안 설명을 완료했다. 이후, 사측의 교섭대표와 간사 선출로 30분간 정회됐다. 그러나 끝내 대표와 간사 선출에 실패했다. 용역업체 담당자들은 다음 2차 교섭 전까지 선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아까 기본협약서 서명 거부 업체 담당자가 노조에 아무 말 없이 정회시간에 도망갔다. 다른 업체 사장과 담당자들은 끝까지 남아 있었는데. 도망간 사측 교섭위원으로부터 노동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첫 교섭부터 교섭 상대의 무책임한 모습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매 교섭마다 그래요. 2년 전에는 첫 교섭 때 아예 용역업체들이 참석을 안 했었으니까요. 교섭 태도가 정말 불량하죠."

분회장님이 귀띔해줬다. 나도 얼추 안다. 작년 집단교섭에 참석했었으니까.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지속해온 사측의 모습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매번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태 한 번 쉽게 교섭이 끝난 적이 없다.

"(다음) 2차부터는 요구안을 갖고 교섭을 진행할 겁니다."

1차 교섭이 드디어 마무리됐다. 나는 상견례만 하고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진행됐다. 올해는 단체협약도 교섭 사안인 만큼, 예전보다 더 치열해질 듯싶다. 단체협약에 단어 하나 추가하는 일로 노사 간에 오랜 논쟁이 이어질 테니까. 과연 몇 달 동안 교섭이 이뤄질까? 2주 후부터가 진짜 교섭의 시작이다.

첫 교섭이 끝난 후, 민주노총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팔뚝질을 하며 투쟁 구호를 소리쳤다. 2017년 집단교섭 승리를 다짐하는 의미였다.
 첫 교섭이 끝난 후, 민주노총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팔뚝질을 하며 투쟁 구호를 소리쳤다. 2017년 집단교섭 승리를 다짐하는 의미였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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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서경지부, #집단교섭, #상견례, #용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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