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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 회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자 사망사고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제빵공장 기계장치 끼임 사망사고 등 연이은 중대재해 발생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했다.
▲ 연이은 중대재해 사고에 사과한 허영인 SPC 회장 허영인 SPC 회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자 사망사고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제빵공장 기계장치 끼임 사망사고 등 연이은 중대재해 발생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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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박이대승이 쓴 칼럼(폭력과 노동자의 죽음[박이대승의 소수관점](19), <주간경향> 1503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명명되는 '산업재해'가 서구에선 '노동사고(work accident)'로 불린다고 한다. 사실 그 차이에서부터 우리는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기 때문이다. 박이대승은 이렇게 부연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재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재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피해. 지진, 태풍, 홍수, 가뭄, 해일, 화재, 전염병 따위에 의하여 받게 되는 피해', 즉 재해란 인간적 사건보다는 자연적 사건을 부르는 말이다. 산업재해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자연적 사건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자연적 사건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다. 물론 사고란 단어는 재해와 비슷한 의미의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난 까닭"이란 뜻도 공존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사고'는 산업'재해'에 비하면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상황을 사용자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그나마 '중립적인 언어'라 볼 수 있겠다.

한편, 같은 칼럼에서 박이대승은 "폭력과 사고의 차이"를 "인간의 의지가 개입됐"느냐의 여부로 구분한다. 만약 "개입됐다면 폭력"이라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터에 안전 관련 예산과 인력을 '투자'해야 노동자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비용' 문제로 사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나머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사고보다는 오히려 '폭력'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그가 묻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이 피해가 겉으로 볼 땐 사고의 형태를 띨지라도 그 이면에는 노동자의 생사보다 비용 절감을 더 우선시하는 사용자의 '계산적 행위'가 다분히 깔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0월 "24일 한겨레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를 위반해 기소된 23건의 사건 중 "1심 이상의 판결이 나온" "총 7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선고 형량이 대체로 징역 1년∼1년6개월에 그치고 그마저도 단 1건을 제외하면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돼 실형을 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단독] 밑바닥 구형에 집행유예 반복…중대재해법 힘빼는 검찰·법원, <한겨레>, 2023년 10월 25일) 이 법을 어긴 사업주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소' 형량은 징역 1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는 주 목적은 중대산업재해의 예방에 있다. 노동자가 일하다 실수를 해도 최소한 크게 다치지 않는 노동환경을 사업주에게 조성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순간의 실수로도 중대산업재해를 겪을 수 있다는 건 그곳의 환경이 이미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에 따르면, 법에 명시된 요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결과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법원이 사업주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배경에는 피해자의 과실, 유족과의 합의 여부 등이 정상참작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중 노동자의 실수가 사업주의 죄를 경감해주는 정상참작의 사유가 된 것은 중대산업'재해'라는 단어가 뜻하는 대로 사고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혹여 우리 사회가 이를 중대'노동사고', 더 나아가서는 중대'노동폭력'이라 명명했다면 어땠을까?

근로기준법의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의 뜻을 지닌 단어로, 근면, 성실 등과 비슷한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에게 이를 요구하는 사용자의 시각이 투사된 용어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대비 2.5%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자 많은 보수매체와 경제지 들은 이로 인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사업주는 물론, 노동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최저임금은 법적 강제성이 있기에, 사용자는 무조건 노동자에게 그만큼은 지급해야 한다.

현재의 최저임금 제도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려 했던 애초의 제정 취지에 얼마나 잘 부합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노동자의 급여가 최저임금으로만 책정된 사업장에서 그 강제성은 최저임금이 단 1원이라도 인상될 때마다 인건비 상승의 원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사업주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곧 경영상의 피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마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왜 일어날까?

근로기준법을 보면, 근로시간에 상한은 있지만 하한은 없다. 바로 그 지점이 사용자로서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법정 최저임금은 1시간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아무리 최저'시급'이 많이 올라도, 기존에 일하던 근로'시간'을 줄이면 인상한 의미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근로시간을 줄이고 줄여서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감축할 경우, 사용자는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의 수당을 지급할 의무조차 사라진다. 법의 허점을 노린 사용자들의 이런 편법 행위가 결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킨다는 근로기준법의 목적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는 사용자의 편법이 통용되는 이유는 뭘까? 근로가 의미하는 대로 '근로'기준을 바라본 결과는 아닐까? '노동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사용자의 편법 행위가 정당하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전제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사업주 들이 사업하기 힘든 여건인 건 사실이지만, 만약 우리 사회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그들은 근로기준법에 있는 빈틈을 찾아내는 대신에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강구해 비용 절감을 이뤄내려 하지 않았을까?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방송3법 대통령 거부권을 거부한다’ 정의당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김준우 비대위원장, 이은주, 강은미 의원, 금식기도 중인 남재영 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방송3법 대통령 거부권을 거부한다’ 정의당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김준우 비대위원장, 이은주, 강은미 의원, 금식기도 중인 남재영 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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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해 어느 경제지는 '파업조장법'이라 이름 붙인 바 있다. 다른 어느 부처의 장관들보다도 노동자의 입장을 더 대변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법안에 "가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는 순전히 파업을 당하는 입장, 즉 기업의 시각을 내포한 언어에 해당한다. 그런 결과중심적 관점에서는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도리어 노동착취를 일삼는 사용자의 모습은 자연스레 은폐될 수 있다.

한 존재를 어떻게 언어화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언어로 정의되는 순간, 그 대상의 성격이 곡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로 경제단체들은 노동자를 지칭할 때 거의 대부분 근로자로 부르거나 쓴다. 그것이 과연 우연일까? 의도된 명명은 아닐까? 그러한 언어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노동자의 현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 지금도 수많은 노동법이 그 취지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노동자보다는 사용자의 시각을 반영한 언어들이 법전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그:#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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