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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고려대에서 선전전을 했다.
 2016년 12월 9일, 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고려대에서 선전전을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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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11시쯤 황보경 조합원(민주노총 서경지부 광운대분회)과 만났다. 그녀는 고려대로 가는 길이었다. 연대 활동 차였다.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이 겪는 노조탄압의 현실을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고려대에 가는 이유였다.(관련 기사: "세상을 정화하는 사람들인데, 왜 경멸하는지...") 그날은 그녀의 순번이었다. 그녀는 늦었는지 곧 급하게 떠나갔다.

황보경 씨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다.
 황보경 씨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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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보경 조합원과 다시 마주했다. 80주년기념관(신축 건물) 4층에서 한창 청소 중이었다. 일이 막 시작된 상황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선전전은 잘하셨나요?"
"열심히 했지. 피켓 들고 서 있었어요."
"고생하셨네요."
"오히려 저보다는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더 고생하죠. 매일 선전전 하느냐고 얼마나 힘들겠어요. 자기 권리 찾겠다고... 우리가 얼마나 더 외쳐야 그분들이 다시 평상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대걸레를 들고, 여자화장실로 갔다. 곧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데, 가만히 있는 노조

"그런데 내가 A에 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주차 쪽 근로자들이 꽤 오랫동안 집회를 했어. 복직 투쟁이었지. 나는 퇴근할 때 잠깐씩 보고 그랬지. 그때 다른 서경지부 조합원들이 연대 오고 그랬을 걸요. 주차 쪽이 민주노총 소속이었거든요. 광운대분회 조합원들도 왔었지, 아마?"

"그때 조합원들을 만나신 거예요?"
"우리한테 와서 민노(민주노총)에 가입하라고 그랬었어요. 인원이 적더라도 우선 만들라고. 복수노조제인가? 그거 때문에 노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면서요. 인간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저번에 말씀해주시기로 A에도 노조가 있었다고... 무늬만 노조라고 하셨죠?"
"내가 있는 노조가 당시에 완전히 어용이었거든. 엄청 열악했어요. 처음에 노조 만들어질 때 완전히 속았어. 저번에 제가 한 번 말해줬잖아요."

그녀는 A에서 청소 일을 했다. A에도 곧 노조가 생긴다고 했다. 당연히 민노가 들어올 줄 알았다. 그때였다. 누가 막 사인하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사인했다. 그게 문제였다. 알고 보니, 예전 B에서 청소 일을 했을 때 겪은 어용노조와 같은 이름의 노조였다. 민노가 들어올까 봐서 업체 측이 급하게 노조 조직에 나선 것이었다.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났다.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에서였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점을 후회했다.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였다. B에서 어용노조를 한 번 겪어봤기 때문이리라. 노조가 회사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결과였다.

"A는 진짜 심했어."

황보경 씨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다.
 황보경 씨가 대걸레질을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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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였다. 노조는 진짜 있으나 마나였다. 임금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에 신경쓰지 않았다. 열악한 근로조건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오히려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업체의 부당한 지시에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회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며 완전히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매번 우리한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하나도 안 지켜졌지. 한 번은 지부(상급노조) 사람들이 와서 월급을 올려준다고 했어. 그런데 다음에 와서는 우리 지회장이 애를 썼는데, 잘 안 됐다는 거야. 그러더니 시간을 좀 더 달래. 다음번에는 꼭 올려주겠다고. 그렇게 해를 넘겼어. 그것도 거짓말이었지. 임금은 그대로였으니까. 임금협상 따위는 없었던 것 같아."

A의 청소노동자들은 노동 강도에 비해 값싼 임금을 받았다. 노조는 매번 임금협상에 나섰다고 했다. 도대체 회사와 무슨 협상을 해왔던 걸까.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회사 편들기 바빴던 건 아니었을까? 제1노조는 노조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노조다운 노조'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민노를 조직하기 어려웠다. 곳곳에 "사쿠라"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회장과 내통된 사람들이 도처에 숨어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 모든 말이 블랙홀처럼 지회장에게 흘러갔다. 아무나 붙잡고 "나랑 같이 민노 한 번 만들어 볼래?" 말 한마디 하기 힘든 구조였다. 당장 누가 내 편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건 사치였다. 잘못 말했다가 지회장한테 발각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일터는 민노 조직 상황이 새어나갈 위험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작스레 쫓겨났다. 본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왜 잘랐는지 물어봤다. 자신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노조 조직조차 시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 쪽은 다른 생각이었다. 그녀를 이미 민노를 조직할 사람으로 생각한 듯했다.

바로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를 '어용노조'


황보경 씨가 손걸레로 창문을 닦고 있다.
 황보경 씨가 손걸레로 창문을 닦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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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보경 조합원이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지난 기억을 다시 더듬으려는 듯 눈을 살포시 감았다가 떴다.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C에서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였지. 저번에도 말해줬잖아요. 민주노조를 탄압하면서 어떻게 어용노조 만들었는지를... 업체가 그냥 키운 거지, 뭐."

C에선 회사가 키운 노조가 제1노조였다. 어용이었다. 민주노총 여성노조는 보경 조합원이 들어갔을 때 이미 조합원 3명밖에 없는 소수노조로 전락한 상태였다.

"예전에는 민노가 다수노조였대요. 민노가 자주 투쟁했거든요. 근무환경 좀 개선해달라고. 그런데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요. 업체가 민노를 파괴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중 파견도 하나의 전략 아니었을까 싶어요. 파견은 먼 데로 보내는 거라 다들 꺼려했거든요."

회사는 꾸준히 민노 파괴 전략을 내세웠다. 지긋지긋하게 민주노조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때부터 민노 조합원들의 탈퇴가 이어졌다. 민노 탈퇴자들은 자연스레 회사가 뒤를 봐주는 노조로 가입했다. 정말 업체가 노조를 키워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민노에 가입했다. 민노가 진짜 노조라는 사실을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1노조 사람들이 와서 왜 벌써 민노에 가입서를 썼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발뺌했다. 민노 사람들이 먼저 가입서를 줘서 그쪽에 들어갔다고 핑계를 댔다.

이후에도 제1노조 사람들은 계속 자기네로 들어오라고 꼬드겼다. 어느 날은 회사 계장이 "황보경씨는 왜 민노로 들어갔어요?"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얼른 제1노조에 가입하라고 했다. 노조 가입 대상도 아닌 계장이 노골적으로 제1노조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민노에 있는 동안은 근로계약서도 못 썼다. 제1노조에 들어갈 때까지 억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꿋꿋하게 버텼다.

버티는 대가로 감시까지 당해야 했다. 기장(청소 반장)이 그녀의 동태를 제1노조 지회장이나 계장에게 보고했다. 기장도 제1노조 소속이었으니까.

황보경 씨가 손걸레로 창문을 닦고 있다.
 황보경 씨가 손걸레로 창문을 닦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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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보경 조합원이 들어간 곳마다 왜 다 어용노조가 존재했을까, 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경 조합원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들어가시는 곳마다 어용노조가 있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뭐.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인데... 회사에 잘 보이려고 어용노조에 가입하는 거 아니겠어요. 자기 안 잘리겠다고. 회사도 민주노조 들어가면 자르겠다고 부추기는데 별 수 있어. 그런 거에 넘어가는 거지. 그런데 어용노조 들어가는 순간, 자기 발목 자기가 찍는 거예요. 오히려 나중에 가면 처우가 더 열악해지잖아. 내가 그걸 옆에서 봐온 거고. 그런 거 보면 어용노조 사람들, 참 답답하죠. 지금 힘들어도 미래를 좀 봐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지금 제가 속해 있는 우리 서경지부는 진짜 노동자를 위한 노조잖아요."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시선을 바닥에 떨구었다. 현실이 너무 답답한 탓이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 때였다. 그런데 마침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어용노조도 결국에는 악의 평범성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지극히 평범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탄압에 동원되는 현실을 자주 보기 때문이리라. 오늘 들은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어용노조가 생각보다 우리 곁에 더 많을지도...'


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어용노조, #광운대,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서경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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