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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이날 청와대는 사진취재를 불허했으며,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6장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으나, 박 대통령의 얼굴 모습을 크게 볼 수 있는 망원렌즈를 활용한 사진은 없었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 청와대 제공 사진 6컷의 비밀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이날 청와대는 사진취재를 불허했으며,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6장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으나, 박 대통령의 얼굴 모습을 크게 볼 수 있는 망원렌즈를 활용한 사진은 없었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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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내놓은 입장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요약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으로서 제 할 것을 다 했다"고 강변했고, 적절한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까닭은 언론의 오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갹출시키고 국정 개입 정황까지 드러난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그저 지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정유라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는 뇌물 혐의에 대해서 "완전히 나를 엮으려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그에 따르면, 모두 허위사실에 근거한 조작된 의혹이었다. 박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거기에다 허위가 남발돼서 종잡을 수 없게 됐다"면서 "사실 아닌 것이 더 힘을 가지고 사실 같이 나가고, '그게 (사실이) 아니다' 하는 얘기는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마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정지된 현 상황에서도 앞서 세 차례 있었던 대국민담화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기다리신다", 노트북·카메라 금지한 간담회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 시작 과정부터 잘 드러난다. 청와대는 당초 이날 낮 12시 30분 한광옥 비서실장과의 신년 점심식사를 공지했다.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의 식당에서 새해를 맞아 떡국을 나누며 얘기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대통령이 기자들과 신년 인사 겸 티타임을 하겠다는 소식은 그 현장에서 바로 알려졌다. 오후 1시 5분 경 갑자기 '대통령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얘기가 전해졌고 기자들은 청와대 외빈접견실인 상춘재로 급히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지참할 수 없었다. 취재기자들은 수첩과 볼펜 정도만 갖고 취재해야 했다.

앞서 대국민담화에서 취재기자들의 질의응답을 거부했던 '일방통행'의 자세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사의 사진취재를 금하고 청와대 전속 사진을 사용하도록 강제한 대목에서는 최근 대통령의 얼굴사진을 통해 제기됐던 미용(성형)시술 의혹을 인식한 결정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직무정지 후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 특히 출입기자들을 23일 만에 처음 만나는 자리였음에도,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언론보도로 알려진 것 이상의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 것도 이 자리의 성격을 '일방통보'로 해석할 수밖에 없게 했다. 기자들이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다양한 질문을 던졌지만, 박 대통령은 언론보도 이상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차은택씨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증언했던 최순실씨의 인사개입 의혹을 묻자, "이렇게 되면 너무 오늘 많은 애기를 한 것이고, 새해 인사라도 나누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는데 새해 1월 1일부터 거창하게 기자회견이나 한 듯이 하는 것도 참 모양새가 안 좋다"면서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다만,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검증을 한 뒤에 잘 할 것 같다는 분을 선택한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해서는 가장 긴 시간을 할애했지만 앞서 알려진 언론보도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가족도 없는데 거기(관저)에는 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도 다 되어 있고 필요하면 손님도 만나고 접견도 할 수 있다"면서 당시 본관이 아닌 관저에서 일한 것은 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남 탓'이 더 도드라지기까지 했다. 당시 '전원 구조' 오보 탓은 물론, "경호실에서 '적어도 경호하는 데는 필수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중대본(중앙대책본부)에서도 무슨 상황이 생겨서 확 떠나지를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첫 변론기일 앞두고 탄핵사유 전면 부정, 누구 향한 메시지인가

1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말한 뇌물죄 의혹이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해명을 보면 오는 3일부터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겨냥해 만든 기자간담회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3차 준비기일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청구인과 피청구인, 대리인단 출석 확인을 하고 있다.
▲ 출석 확인하는 이정미 재판관 1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말한 뇌물죄 의혹이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해명을 보면 오는 3일부터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겨냥해 만든 기자간담회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3차 준비기일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청구인과 피청구인, 대리인단 출석 확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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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죄 의혹이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해명을 보면, 오는 3일부터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겨냥해 만든 기자간담회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특히 5일과 10일 열릴 2, 3차 변론기일에는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최순실씨 등이 증인으로 각각 출석할 예정이라 그를 앞두고 대통령 측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일단 모두발언 때부터 "저를 이렇게 도와줬던 분들이 사실은 뇌물이나 이상한 것 뒤로 받고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맡은 일 열심히 한다고, 죽 그동안 해 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면서 뇌물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하게 한 것 아니냐는 뇌물죄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해서는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면서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검이 허위사실로 혐의를 짜깁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블랙리스트' 지시와 관련해 자신에게 직접 항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진위공방으로 빠지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에 "전혀 모르는 일"이라면서 "보도를 보니까 (블랙리스트로 규정된 인사가) 굉장히 숫자가 많고 그런데 저는 전혀, 그것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유 전 장관이 대통령한테 항의를 했다고까지 보도가 됐는데 인지가 안 됐냐"고 재차 묻자, "오히려 그렇게 많이 품어서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 아니냐고 들었고, 그때 그런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전하는 이야기는 다 그게 그대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직무와 판단이 있는데 어떻게 지인(최순실)이 모든 것을 다한다고 엮을 수 있나"라며 국정농단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최씨는 몇십 년 된 지인이지만 그렇다고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나"라면서 "대통령으로서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 왔다. 복지·외교·안보·경제 등은 참모들과 의논하면서 저 나름대로 더 정교하게 좋은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영애 시절 회고까지, 지지세력 '동정론' 확산 원했나

2016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박사모 등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비선실세' 최순실이 사용한 것으로 제시된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JTBC 손석희 사장의 포승줄 묶인 사진을 들고 나왔다.
▲ '태블릿PC 조작' 주장하는 박근혜 지지자들 2016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박사모 등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비선실세' 최순실이 사용한 것으로 제시된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JTBC 손석희 사장의 포승줄 묶인 사진을 들고 나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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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등 일부 우익진영의 '지지 여론'을 확산하기 위한 조치로도 읽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미용시술 등 여론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성형시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설명과 피로회복·미용 목적의 태반주사·백옥주사 등을 맞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영양주사도 놔줄 수가 있는 건데 그걸 큰 죄가 되는 것 같이 한다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의도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전통적 지지자들의 '동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의 일화를 꺼낸 것도 유의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 때 "30년 전과 비교하면 청와대도 참 많이 바뀌었다. 안 바뀐 곳은 별로 없는데 녹지원부터 여기(상춘재)까지는 별로 안 변했다"면서 "어릴 때 그네를 묶어서 놀려고 했다가 나무 상한다고 해서 못한 기억이 있다. 출퇴근시 저 나무를 지날 때마다 그런 기억이 스친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당장 특검은 이날 "(뇌물죄는)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즉각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추후 입장을 밝히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이 여론을 통해 특검 수사의 정당성을 흔들려 한다는 우려를 드러낸 대목이다.

야당은 즉각 성토에 나섰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궤변과 후안무치로 일관한 기자단 신년인사회였다"고 비판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도 "새해 첫날부터 국민은 복장이 터진다. 이번 신년인사회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부인하려는 피의자 대통령의 비겁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당 탈당파로 구성된 개혁보수신당(가칭)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장제원 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무척 실망스럽고 참 부적절한 간담회였다. 지금은 기자간담회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에서, 특검에서 본인의 해명과 자기 방어권을 행사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특히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항변을 들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라며 "수사 중인 관련 피의자의 진술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될까봐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태그:#박근혜, #탄핵, #최순실, #세월호 참사, #성형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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