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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2016.5.26)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2016.5.2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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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온다는 소설인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재추진한 지 한 달이 채 안되어 경제부총리가 주관한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그 자리엔 식물 대통령도 없었고, 팽 당한 총리도 없었다. 나라가 이처럼 혼란하고 국가안보에 중차대한 정책결정의 구심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방부와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중단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23일은 한일 양국이 정식으로 서명했다. 국민들 가슴에 보이지 않는 서늘한 첫눈이 내리고 있다.

2012년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연기되었을 때나 불과 한 달 전 국정감사에서는 국방장관조차 여건 성숙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제 와서 여건 조성이고 뭐고 안보의 위중함을 내세워 시기가 됐고 필요성이 있다며 말을 바꾸고 일사처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까지 결코 적지 않은 국방비를 써대고 국방비리로 얼룩진 국방부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당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일본의 월등한 군사정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엄살을 떨고 있다.

북핵 미사일 위협이 그리 죽는 소리 낼 만큼 시급한 것인가?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상황보다 더 시급하고 위태로운 안보위기상황이 어디 있을까? 대외협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치적 위기상황에서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협정이라면 안보적으로 정말 위중한 사안이라 할 수 있으니 이는 국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방부 스스로 모순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일군사정보협정이 무엇인지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

친구들 사이에 "꼭 너만 알고 있어. 다른 곳에 이야기 하면 넌 친구도 아니야"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정말 죽음까지 같이 할 친구사이라면 모를까 이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입을 떠난 비밀은 없다고 한다. 친구 간에도 신뢰감이 낮을수록 돈을 빌려주든 비밀을 알려주든 불안한 뒤탈을 방지하기 위해 각서나 문서를 주고받는다.

하물며 그럴진대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에 자국의 비밀, 그것도 군사비밀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주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국가 간 무기거래, 군사지원, 합동작전 및 훈련, PKO 활동 등 군사교류가 빈번할 경우 군사비밀이 오갈 수밖에 없는데, 상호 정보보호를 위해 정해진 약속이 없다면 필요한 비밀전달에 있어 한 건 한 건 매번 다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주고받는 군사비밀을 보호하고 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법적 행정적 절차를 정해놓는 것이지, 왜 어떤 비밀을 주고받아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비밀제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군사비밀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친구와는 말 자체를 섞지 않고 일체 관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특히 한일관계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향후 일본과 일체의 군사관계를 단절하겠다고 한다면 모를까,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전쟁을 일으킨 전과가 있는 일본을 상대함에 있어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 필요성만을 이유로 들어 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미 한국은 유럽연합(EU) 및 32개 국가와 33건의 군사정보보호 협정 또는 약정을 맺고 있다. 일부에서는 러시아와도 했는데, 일본과 협정을 맺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하지만, 나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이유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러시아와는 2001년 무기거래와 통상확대가 주된 이유였고, UAE의 경우는 원전수주와 관련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유명해진 특전사 '아크'부대 파병 등 군사지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밖의 다른 나라들과도 그때 그때 여러 필요에 따라 체결하긴 했지만, 지금은 협정을 체결한 대부분의 국가들과 실제 군사비밀 교환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이처럼 한일 사이의 협정을 다른 국가들과 맺은 협정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당면한 주변 안보환경이 복잡하다. 국방부가 북핵 미사일 위협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북핵 미사일 위협이 해소되고 나면 협정은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의 의도보다 일본이 이 협정을 통해 어떠한 이득을 얻으려 하는지, 어떤 의도로 맺으려는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어지러운 정치상황 속에서, 과연 이 협정이 계속 지켜질 수 있을지 우리 스스로도 의문인 협정을 일본이 서둘러 강행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몹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그 시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으로 SLBM 정보를 받겠다고?

국방부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이지스함, 레이더, 정찰 위성, 항공기 등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뛰어난 군사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지난 2014년 체결한 한-미-일 군사비밀보호양해각서(MOU)에 따라 미국을 통해야만, 그것도 한 달 후에나 받아볼 수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협정을 맺어 관련 정보를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그러한 정보의 전달 자체를 보장하고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협정은 단순히 자신들이 지닌 군사정보수집수단이 공개되고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보를 주고받는 데에도 형평성이 우선된다. 준만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다 받을 수도 없고 일본이 주지도 않는다. 과연 미국이 지금까지 왜 한 달이나 걸려서야 일본의 군사정보를 넘겨주었을까 잘 따져봐야 한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시간이 걸렸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달리 보면 한일 간 정보의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일본이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우수한 군사정보 수집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보수집위성 5기에 우리 동해 쪽으로 탐지거리 1000㎞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상 초계기(77대)를 보유하고 있고, 또 이지스함 6척과 조기 경보기 17기 등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이렇게 기술적 능력만을 가지고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북핵 미사일 정보가 넘쳐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비하이다. 인공위성 정보의 경우 이미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더나 조기경보기의 경우에도 지리적 근접성때문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 북한이 광명성 등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에도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매번 먼저 접촉해 왔다.     

최근 국방부와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위협 정보와 관련해 일본의 정보수집능력이 탁월하다며 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SLBM이 과연 남쪽을 공격하기 위한 것인지도 의문이고, 지금 협정을 서둘러야 할 만큼 SLBM 위협이 시급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SLBM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일본의 수상함정이나 잠수함의 음파탐지기나 해상초계기(P-3)가 우리의 해상작전구역이나 항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와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본으로부터 북한 잠수함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 자위대 군함과 잠수함, 항공기가 우리의 바다와 하늘을 활보하도록 용인하겠다는 것인가? 정보수집능력이 탁월해 자신들은 제공받을 정보가 없는 일본이 지금 같은 외교능력을 상실한 한국정부에 맞장구치며 무리하게 협정을 체결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은 아닐까?

정녕 매국의 길을 갈 것인가

독립유공자유족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민주주의국민행동,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53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한일군사협정 재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 시민사회단체 "한일군사협정 추진 중단하라" 독립유공자유족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민주주의국민행동,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53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한일군사협정 재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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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군사정보보호라는 순수한 필요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가 재개된 것은 지난 4월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으로 시작됐고 9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본격화 됐다. 결국 미국과 일본이 우리의 다음 정권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현 정권 안에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정보소통의 통로가 아니라 이를 통해 양국 간 군사교류협력이 보다 확대되고 강화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미 2015년 미일 신안보가이드라인에 있는 집단자위권을 통해 일본은 한반도사태에 개입할 근거를 만들어두었다. 결국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일본인 자위대의 유사시 한반도사태 개입을 염두에 두고, 거추장스러운 법적 족쇄를 제거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의 필요와 이해가 더해진 것이다. 중국의 확대와 미국의 약화 속에 미국을 대신해 지역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담당할 일본의 자위대를 보통 군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인정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한 지역 MD체제에 행동대원의 역할을 수행할 외곽국가인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정리를 선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 해부터 이어져 온 일본군 위안부 합의, 한반도 사드배치 결정,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결국 한 몸통일 수밖에 없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단순한 정보교류의 차원을 넘어 MD체계의 편입과 군사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군사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외교, 안보, 통일 문제 전반에서 포괄적으로 고려하고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과 한미일 군사네트워크 강화는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미소 냉전시대처럼 편 가르기와 일방적인 줄서기가 재현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한미동맹이 중국을 상대로 들이댄 첫 번째 칼날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표면적으로는 한일 사이의 일이지만 실제로는 한미동맹이 중국에 던진 두 번째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자위대 문제를 포함한 일본의 군사적 확대와 지역 내 미일 안보구도가 확고해지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열어서는 안 될 지역 안보의 판도라 상자, 지옥문을 열게 될 수 있다. 중국의 반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역시 사드처럼 반통일이고 매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동엽 기자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입니다. 이 글은 <한반도의 아침>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군사정보보호협정, #군사정보, #GSOMIA, #국방부, #미사일방어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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