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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이라고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앞뒤가 모순된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며칠 동안의 말이 그렇다.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이 상황을 오히려 빨리 수습할 유일한 길이라며,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안철수 전 대표. 그런데 대통령이 새로 지명한 임종률 경제부총리의 인사청문회가 급하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럽다.

경제는 하루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철수 전 대표의 설명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적 위기 못지않게 경제적 위기 상황이다. 이럴 때 올바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나갈 수 있는 경제 수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시가 급하다는 위기만 앞세워 경제 수장만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치와 무관한 경제정책도 있을 수 없거니와, 지명된 임종률 내정자가 적합한 인물인가 회의도 들기 때문이다.

경제가 급하니까 위기극복 위해 힘 모으자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 들어서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십시오!", "당신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며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 안철수 "박 대통령 즉각 물러 나십시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위해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 들어서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십시오!", "당신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며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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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8일 국회를 찾았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환담에서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서 내각을 통활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어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어렵다, 수출부진이 계속되고 내부적으로 조선 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는데 어려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국회가 나서달라는 주문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찾아 총리 추천을 부탁한 것은, 불통이라는 지탄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그간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새로운 모습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인식은 진부하다. 위기감의 조성과 당부만 있었지 제대로 된 진단이나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국회의 총리 추천 요구가 대통령의 2선 후퇴 의지인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 정작 중요하고 그래서 실망스러운 건 정경유착으로 경제를 나락으로 빠트린 일말의 책임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내수침체. 수출부진으로 대변되는 경제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세계적 불황도 무시할 수 없는 외적 요인이고, 이명박 전 정권의 기업하기 좋은 정책도 결과적으로 기업을 허약체질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 정권에 있다. 권력과 자본의 검은 거래· 정경유착은 4년 내내 위기를 키웠고, '헬조선'에 청년과 노동자 그리고 서민의 삶을 가두어왔다. 정책적 실수가 아니라, 정권과 비선 실세와 자본의 결탁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행위가 국가경제, 국민경제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것이다.

창조경제·규제혁파·노동개혁 등 경제 정책이라며 화려하게 내걸었던 용어들은 권력과 자본의 거래 물품에 지나지 않았다. 경제 성장론·부동산 정책·일자리 정책 등 박근혜 정권 4년 내내 걸어온 경제 정책 중 어느 것 하나 재벌 자본과 대립한 적이 없다.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정책도 없었다. 최순실과 비선 실세들은 정경유착의 기획자였고 대통령은 뒷배경이었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은 정경유착의 충실한 집행자였을 뿐이다. '최순실에 의한, 권력과 재벌을 위한, 박근혜의 거짓 경제' 이것이 창조경제의 드러난 실체다.

정경유착의 집행자, 심부름꾼이 된 경제 관료들

정경유착의 피해자는 검은 거래에 끼지 못한 중소기업들과 평범한 국민들이다.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권력과 거래를 시도했고, 오너의 구속을 피하고 사면받기 위해 수십 억을 헌납했다. 법치주의 유린이다. 200여억 원을 낸 삼성그룹,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을 보면서 이재용 3세 승계을 위한 거래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많다. 200여억 원도 모자라 최순실 딸의 승마에 거액을 투자한 삼성. '말 밥 먹이려고, 국민들 밥그릇 빼앗다'라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시급한 경제 현안을 위해서라도 경제관료 만큼은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은 틀렸다. 어려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대통령 말도 설득력이 없다. 작금의 경제 위기는 경제 수장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권력과 재벌을 위한 경제 정책과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정경유착의 집행자 역할을 한 경제부총리를 바꿔서 위기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궤변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기 전에 경제 위기를 불러온 정경유착에 책임지는 자세가 먼저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엄중한 상황속에서 여야는 하루빨리 정국안정으로 민생 살리기를 위해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며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전형적인 민생팔이 억지다. 안철수 대표의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 제안이나 대통령이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하는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한반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공약이나 지금까지 해왔던 말에 비추어 본다면 긍정보다 부정의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보호무역주의는 내수보다 수출에 비중을 둔 우리경제의 적신호가 틀림없다. 트럼프가 공언했던 한미 FTA 탈퇴나 보복적 수입관세 부과, 환율 조작국 지정은 우리나라에 치명적 대재앙을 안길 수도 있다. 가뜩이나 침제된 수출과 경색된 내수시장,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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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제수장의 역할이 절실할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경유착의 심부름꾼, 집행자 노릇이나 하던 기존의 경제부총리와 다를 바 없는 경제관료가 수장이 된다면 오히려 위기만 키울 뿐이다. 또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던 경제정책을 존속시키고, 정권에 검은돈이나 찔러주고 특혜를 받아 시장을 장악하던 기업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내수 진작이나 수출 경쟁력 강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정경유착 범죄를 덮고 위기 극복을 위해 힘 합치자는 메시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고, 허약한 기업의 체질을 바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대적 요구로 읽어야 한다. '최순실에 의한, 권력과 재벌을 위한, 박근혜의 거짓 경제'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경제'로 바꾸어 내야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정경유착의 범죄를 적당히 봉합하고 또다시 기업중심의 창조경제에 온 국민이 매달리느냐, 아니면 정경유착의 범죄를 단죄하고 국민중심·국가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재편하느냐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부의 정경유착의 범죄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전후가 같을 수는 없다. 국민들의 활로가 어딘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태그:#국정농단, #트럼프, #안철수, #경제부총리,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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