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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정황이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동력이 사실상 멈춰선 지금, 책임총리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야3당은 바로 다음 날인 9일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했다. "대통령의 완전한 2선 후퇴 없는 국회의 총리 추천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입장은 미묘하게 변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아래와 같이 밝혔다.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에게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을 이양하고 사실상 2선 후퇴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저희가 장외 퇴진운동에 나서지 않겠다,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러자 손석희 앵커는 "외치는 해도 상관없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우 대표의 답은 이랬다.

"정상회담은 아무래도 나라의 정상이 하셔야 되지 않겠는가? 이해찬 전 총리 말을 들어보니 총리 신분으로는 정상회담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8일 <JTBC뉴스룸>에 출연해 더민주의 입장을 밝혔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8일 <JTBC뉴스룸>에 출연해 더민주의 입장을 밝혔다.
ⓒ JTBC뉴스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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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하되 외교·국방권은 계속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인 9일 더민주의 입장은 보다 강경해졌다. 추미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내치든, 외치든 자격이 없다"라면서 "세세한 권한을 따질 때도, 총리 후보를 거론하면서 갑론을박 할 때도 아니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무릎을 꿇으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책임총리 제안과 야3당의 거부, 그리고 더민주의 입장은 미세하게 갈린다. 청와대는 총리 임명 카드로 시간을 끌면서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이에 맞서 더민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응 강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이런 대치 국면이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치 동력 상실한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도착하고 있다.
▲ 국회 방문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도착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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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외치, 즉 외교·국방을 계속 박 대통령에게 맡겨야 하는지 따져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업무 자체의 특성 그리고 한반도의 지정학정 위치나 현 정세를 감안해 보더라도 박 대통령은 속히 외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 무엇보다 더민주 등 야권은 외교·국방에서 대통령을 배제시키는 데 정치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먼저 외교 측면에서 살펴보자. 외교는 각국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 사이에서 이뤄지는 정치 행위다. 과거 절대군주가 군림하던 18세기나 19세기와 달리,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가 대의제 민주주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도 없지 않지만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뿐 실제적 권한은 의회와 내각이 행사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본다면, 어느 나라든 정부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면 외교 무대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강대국의 지위를 얻었다. 미국은 여세를 몰아 국제연맹에 가입해 국제문제에 개입하려 했다. 당시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부정적이었다. 여론 역시 윌슨의 국제주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고립주의, 즉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면 안된다'는 정서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윌슨은 직접 나서 국민을 설득하려 전국을 순회하다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미국 없는 국제연맹은 유명무실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비극을 낳은 원인이 됐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1월 첫째주 5%까지 추락했다. 전통적 지지기반이던 대구·경북의 지지율도 한 자리수를 기록했다. 지지기반이 궤멸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외신, 연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대서특필

최근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르 몽드> BBC CNN NHK 등 주요 외신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한국판 라스푸틴'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자신이 세운 신흥종파를 영세교라고 불렀다. 1975년 그는 박근혜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혼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혜를 받았다. 그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2007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의 외교 전문에는 최태민이 당시 박 대통령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 <르 몽드>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부당이득 등에 얽힌 소문, 심지어 섹스 등 TV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스캔들에 휘말렸다. 한국판 라스푸틴과 '팔선녀'라 불리는 수상쩍은 모임에 관한 이야기도 나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산업화를 이뤄낸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말 많고 탈 많은 자신의 임기 중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워싱턴포스트>

"한국 검찰은 지난 달(10월) 26일, 최순실의 자택 등을 압수 수색했다. 이 사건은 박 대통령의 정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최씨 부녀와의 연결고리야말로 박 대통령이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에 정권 차원의 금기다." - <산케이>

외신들의 어조는 한결같이 냉소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뇌를 조종하는 만평까지 실었다. 이런 와중에 박 대통령의 외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트럼프 시대가 열렸다... 지금, 박근혜로는 위험하다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9일(미국 현지시각) 뉴욕 힐튼호텔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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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으로 8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제치고 제45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한미 관계에 큰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후보 유세 도중 한국의 심기를 건드릴 민감한 현안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는가 하면, 지난 4월에는 "우리는 국가부채가 19조 달러(약 2경2000조 원)이고, 곧 21조 달러가 되려는 상황에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라면서 한반도 분쟁 발생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7월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언급하며 "나는 우리 노동자를 해치거나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해치는 어떤 무역협정에도 서명하지 않겠으며 대신 나는 개별 국가들과 개별 협상을 벌이겠다"라는 말도 했다.

트럼프가 새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상, 정부는 새 대통령의 공약에 맞서 우리의 국익을 관철할 대응책 마련이 절실해졌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연설문은 물론 외국순방 때 자신이 입을 옷마저 최순실에게 의지했음이 최근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런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과 민감한 통상 현안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수 있을까?

이미 외교부는 오는 1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을 결정했다.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책임총리와 거국내각 구성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해결하기 바란다. 그러나 외교·안보·국방에 관한 권한을 박 대통령이 계속 행사하도록 할 수는 없다. 이미 박 대통령은 12.28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 민감한 안보현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국내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더 이상 박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행사하면 안된다.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가 합심해 가장 먼저 박 대통령의 외교·국방권부터 정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우 대표에게 바란다. 지금이라도 외신에 보도된 한국 관련 기사를 열심히 챙겨 보고 생각을 바꾸시기를 간곡히 권고한다.


태그:#우상호 , #트럼프, #JTBC뉴스룸, #윌슨,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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