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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마친 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수만명 시민 "박근혜 하야" 청와대로 행진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마친 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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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무섭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현직 대통령의 서슬 퍼런 권력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탄핵'과 '하야'란 여론에 밀리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 한 방송사의 특종 보도에 의해 불쑥 튀어나온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쌓였던 수많은 직무수행의 실패가 결국 터져 나온 것이다.

전 사회적으로 시국선언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의 '현상'이다. 시국선언으로 최고 권력층에 일갈하는, 교수, 학생, 시민단체들의 그 양심적 목소리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실제적 퇴진 여부를 떠나,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하야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다. 이 시국선언들과 시민들의 저항이 대통령의 퇴진과 더불어 이끌어 내야 할 과제가 있다. 배후에 최순실이 있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라 해도, 어쨌든 대통령의 왜곡된 정책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병행되도록 해야 한다.

[과제①] '과거' 정리하기 

밝혀져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권력의 실체를 밝히는 것만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세월호 진상규명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사고 당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이제 짐작이 간다고 말한다. 생떼같은 아이들과 시민들이 왜 죽어가야 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또 학교 현장의 국정역사교과서 강행이 이제는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권력자의 부당한 역사 조작의 기획에 동조했던 집필진 등 지식인과 교육부 관료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점이다.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합법'의 틀에 갇혀 어쩔 수 없다며 국정화교과서 실무 작업을 진행한 그들은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도 그리 했을까.

한편 '사드' 배치 문제는 어떤가. 일단 대통령의 퇴진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기지 조성 등 사드 배치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실무 역시 그대로 놔둘 일이 아니다. 외교, 안보 영역의 기밀도 최순실에게 흘러들어갔다고 하는 마당에 한반도가 화약고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단지 일개 민간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과제②] '저항'의 의미 돌아보기 

지난 달 10월 29일 서울에서 벌어진 박근혜 퇴진 집회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해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지난 달 10월 29일 서울에서 벌어진 박근혜 퇴진 집회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해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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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탐욕스러운 5년의 임기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고 평가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부당한 권력을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등 민심의 거대한 '봉기' 이후였다. 그때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던 권력층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이후 정제된 대안으로 방향을 잡지 못했을 때 결국 흩어지고만 사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사를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시민들의 '저항'이 본의 아니게 굴절된 채, 그 권력이 유지되는 양상을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이승만을 하야시켰던 4.19 혁명이 불과 1년 뒤 친일군인 박정희의 쿠데타로 인해 빛이 바랜 것을 보라. 그런데 그 독재자가 김재규에 의해 사망한 뒤 권력은 (다시 박정희 못지않은) 전두환에게 돌아가고 만다. 또, 그 뒤 전두환에 대한 강한 저항은 다시 6.10 민주항쟁을 낳았지만, 그 과실로 얻은 대통령 직선제는 결과적으로 전두환의 지원자였던 노태우같은 사람을 후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고 말았다. '저항'으로 독재자를 몰아냈으나, 또다른 독재자가 반복해서 등장했던 역사를 보라. 

까딱 잘못하다가는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최순실, 아니 '박근혜 게이트'가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작금의 국가적 위기를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드는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을 법도 한데, 이러다가 기존의 권력 시스템 속에 무늬만 바뀐 정치인들의 '어부지리'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한 기존의 권력 집단이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귀국 후 휴식을 취한 최순실이 곰탕과 더불어 '여유 있게' 검찰 조사를 받았고, 청와대에 압수수색하러 간 검찰은 압수와 수색은커녕 청와대와 '사이좋게' 조사 자료만 건네받았다.

조선일보가 조선일보답지 않게 '박근혜 하야'에 열을 올리는 것에서 느껴지는 당혹감은 또 어떤가.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포스트 박근혜'는 얼마든지 있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읽힌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국정역사교과서'를 강행하겠다고 말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 여기에 우병우가 물러난 민정수석 자리에, BBK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던 최재경 변호사가 등용된 것 역시 개운치 않다.

그러나 오직 민심만은 이 모든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 '하야'가 국가의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민심을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제 1야당은 위기의 시국에 응당 해야 할 책무를 뒤로한 채 정치 지형의 재편 등 차기 권력의 셈법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현 시국은 더 위태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 스스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태세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반사 이익을 위해 시민들을 상대적으로 가만히 있게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노한 민심 역시 정책 결정의 주요한 변수임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박근혜의 권력 연장은 '저항'의 연장을 낳는다는 점에서 권력 집단에게도 괴로운 일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코 짧게 멈춰질 것 같지 않은 이 '저항'이, 앞서 언급한 그 현대사의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동반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과제③] 새로운 사회의 '방향' 설정하기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회의 상을 설정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노출했고, 정치적으로 국가 행정시스템 붕괴에 따른 국정농단을 가져왔다면 해답도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경제적 차원에서 현행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래서 의미 있다.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부에 '삥을 뜯겼다'고 표현하곤 하지만 대기업이 그로인해 얻은 반사이익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가해자(정부) - 피해자(대기업)' 프레임일 수 없는 이유다.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전경련을 위시한 대기업들이 정부와 결탁해 만들어 낸 성과연봉제며 공공 분야에 대한 민영화 추진,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사실,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한 자본주의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 사이 대다수 노동자인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 진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자본주의가 지배층의 권력 놀음과 결합하면서 괴물이 되어 서민의 삶을 짓밟게 된 것이 사실 현 사태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저항'은 왜곡된 한국사회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개헌 등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겠으나, '개헌'을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언급하는 바람에 정치적 의도가 들통나 버렸다. 당분간은 현 사태를 해결한 뒤에나 정치 체제의 개선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통령 퇴진의 전제 하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보수를 자처하나 사실은 극우 파시즘적 면모로 권력을 잡고자 하는 세력과, 진보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진보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세력에 대해 시민들의 철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서민의 삶의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민주주의 사회의 구현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정치 놀음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세력일 뿐이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 후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차원에서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것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저항'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것 이상의 준비가 없게 되면 분노 표출의 집단적 카타르시스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존의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에 또다른 독재자가 출현했던 것과 같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반복'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에 "대통령 퇴진과 더불어 해야 할 일(2016.11.01)"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을 보완하였습니다.
이광국 기자는 전교조인천지부 정책실장입니다.



태그:#박근혜 퇴진, #최순실, #촛불집회, #하야,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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