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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지리산 지장암입니다. 지리산에 서기로운 기운들이 감돕니다.
 전남 구례 지리산 지장암입니다. 지리산에 서기로운 기운들이 감돕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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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오늘 뭐하세요? 통도사 가요."
"벗이랑 구례 화엄사 지장암에 갑니다."
"무슨 일로?"
"식혜 만들었다고 가져가래. 그래 겸사겸사."
"저도 끼워주세요."
"오후 1시까지 절 앞으로 오세요."

지장암, 급작스럽게 가게 됐습니다. 동행한 스님의 벗은 차 안에서 "아픈 부모님의 병을 물로 다스리기 위해, 물이 좋다는 지장암 물을 뜨러 가기 위함이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물통을 바리바리 실었대요. 스님은 "친구가 얼굴은 우락부락해도 마음 하난 비단결"이라고 칭찬입니다. 부모님을 위한 자식 된 도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효(孝), 모든 일이 출발점이지요. 

지장암 마당에 대봉이 주렁주렁, 황홀한 주황빛

지리산 지장암 올벚나무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지리산 지장암 올벚나무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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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암 마당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대봉의 주황빛이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지장암 마당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대봉의 주황빛이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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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올벚나무가 보입니다.
 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올벚나무가 보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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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신스님, 지장암에선 무얼 눈여겨 봐야 하나요?"
"올벚나무와 스님이지요. 지장암 올벚나무는 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인 것을 증명하는 나무입니다. 일본 벚나무는 300년 이상 자라지 않는데, 지장암 올벚나무는 수령이 400여 년 가까이 됩니다. 일본이 요 지장암 올벚나무 때문에 원산지 주장을 못하고 있지요."

원산지 논란을 뿌리째 뒤집는 벚나무가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귀한 정보였습니다. 이런 소개는 아무에게나 들을 수 없지요.

큰 절집, 스님과 동행하면 좋은 게 있습니다. 절에 대해 자세히 소개받는 것 외에 입장료 받는 매표소 지날 때 무사통과라는 겁니다. 얼마 되지 않는 입장료를 내지 않는 소소한 통쾌함이랄까. 물론 이 통쾌함은 뒤에 불전함 시주로 보시합니다만 괜히 기분 좋습니다.

화엄사 불이문을 지나, 사찰 입구에서 계곡 쪽으로 접어듭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화엄사와 지장암으로 나뉩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고요를 넘어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무아의 세계에 들어 온 기분이랄까. 속세에서 뒤숭숭한 마음 다잡아 수행하긴 딱입니다. 이런 곳에서 수행하면 금방 해탈할 거 같은 느낌입니다.

지장암 마당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대봉의 주황빛이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비가 내린 탓에 물기까지 있어, 엉뚱한 상념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선녀가 목욕 후 햇볕 아래에서 물을 말리는 듯합니다. 또한 이 아름다움은 감을 따 먹고 싶은 충동을 가시게 합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간사한 마음을 다스리게 합니다.

"이거 아무나 못 마십니다... 식혜 한 사발 드세요!"

식혜를 준비하는 이정 스님과 맛있게 먹는 혜신 스님입니다.
 식혜를 준비하는 이정 스님과 맛있게 먹는 혜신 스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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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장암 법당입니다.
 지리산 지장암 법당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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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장암 이정 스님께서 만드신 곱디 고운 식혜입니다.
 지리산 지장암 이정 스님께서 만드신 곱디 고운 식혜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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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저 왔습니다. 두 분은 지장암 법당에서 절하고 오세요."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법당을 나와 지리산 풍경을 봅니다. 지리산, 과연 명산입니다. 비가 그칠까 말까한 시점이어서일까. 지리산, 서기로운 기운을 감추지 못하고 군데군데 서기를 뿜어냅니다. 땅의 온도와 대기 중 온도 차가 많이 나는 곳에서 피어오른다는 연기 혹은 구름을 보면, 저는 상서로운 곳으로 판단합니다. 이는 확인되지 않은 직감일 뿐입니다만, 대개 이런 곳은 산삼이 묻혔거나, 명당 터라는 생각입니다.

"이거 아무나 못 마십니다. 식혜 한 사발 드세요."

영광인 줄 알라는 게지요. 비구니 스님을 향해 합장합니다. 식혜 마시는 거, 영광인 줄 안다는 게지요. 식혜 맛이 밋밋합니다. 입안을 자극하는 양념이 쏙 빠진 탓입니다. 대자 대비한 부처님을 만난 맛입니다. 식혜 만들어 중생에게 나눠주신 부처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스님, 법명이 어찌 됩니까?"
"법명은 알아서 뭐하게, 이정입니다."

지리산 명산에 앉아 도 닦은 마음은 넉넉할 거 같은데, 자연과 달리 까칠합니다. 그런데도 식혜를 나누는 걸로 봐선 따뜻한 마음 가득하단 걸 눈치챌 수밖에. 이정 스님은 "뭔 식혜를 다 찍냐?"고 타박하면서도, 이왕이면 예쁘게 찍히라고 오방색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수줍은 듯 입을 감춰 활짝 웃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우시던지. 부처님이 따로 없습디다. 이래서 올벚나무와 스님을 눈여겨보라고 주문했나 봅니다.

장엄한 꽃들의 세계, 여기가 화엄세상? '올벚나무'

지리산 지장암 올벚나무입니다. 외과수술 흔적이 뚜렸합니다. 벚나무 원산지 논란을 잠재운 증거라고 합니다.
 지리산 지장암 올벚나무입니다. 외과수술 흔적이 뚜렸합니다. 벚나무 원산지 논란을 잠재운 증거라고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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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올벚나무는 어딨어요?"
"이리 오세요."

혜신 스님께서 총총걸음으로 앞섭니다. 요사채를 돌아서니 큰 바위가 보입니다. 바위 옆, 동백나무 사이 돌계단을 오릅니다. 계곡 물소리가 들립니다. 석축에 핀 이끼와 나무의 푸르름이 서방 세계에 온 듯합니다. 그것도 잠시, 좁은 사이 길을 오른 스님이 큰 나무 앞에 멈춰 섭니다. 올벚나무 앞에 서기까지 1분 쯤 걸렸습니다. 올벚나무, 외과수술 흔적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나무 높이는 15m, 둘레는 5m 정도랍니다.

"화엄사 올벚나무 - 천연기념물 제38호, 수령 350년 추정

화엄사 계곡에는 유난히 올벚나무가 많은데, 조선 효종 시절인 1650년 경 북벌을 꿈꾸던 왕의 뜻을 본받아 벽암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벚나무 껍질을 벗겨 활을 만드는데 썼기 때문이다. 이곳 스님들은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열반 세계에 도달하는 나무라고 하여 피안앵(彼岸櫻)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올벚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벚나무로 알려져 있다."

올벚나무 앞, 안내판에 쓰인 내용입니다. 1650년 경에 심었다니, 올해로 수령이 375년 되었네요.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봐도 벚나무 원산지에 대한 소개는 없습니다. 대범하게, 굳이 그런 내용까지 쓸 필요가 있겠냐는 거죠. 스님들께서 "열반 세계에 도달하는 나무라고 하여 피안앵(彼岸櫻)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더 재밌습니다. 열반을 향한 구도자의 간절한 열망이 전해지는 거 같습니다. 스님, 올벚나무에 대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곳 화엄사 계곡 일대는 올벚나무가 많습니다. 벽암선사께서 북벌을 꿈꾸던 효종의 뜻을 받들어 활, 창, 칼자루 등으로 만들기 위해, 목재가 단단한 벚나무를 전략적으로 심은 군사용 숲이었지요. 이 올벚나무는 당시 심었던 것 중에서 살아남은 두 그루 중 하나입니다. 한 그루는 약 80년 전, 절을 중수할 때 베어서 목재로 사용했답니다."

아래에서 본 올벚나무입니다.
 아래에서 본 올벚나무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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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벚나무를 보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꽃 피는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에 대한 감흥은, 친한 아우인 여행작가 김종길님의,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아름다운 표현을 빌리겠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는 땅에서 두 줄기로 크게 갈라져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땅속 깊숙이 제 몸을 박고 뭇 생명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하늘을 향하고 있는 올벚나무를 보니 언뜻 지장보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어머니와 가엾은 중생들을 위해 전 재산을 내어주고 그도 모자라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주고 정작 자신의 알몸을 땅속에 갈무리한 지장보살(地藏菩薩).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처럼 올벚나무는 장대했다.

철수개화(鐵樹開花)라고 했던가. 문득 쇠처럼 검은 올벚나무에 핀 벚꽃이 신이하게 보였다. 이 나무가 혹 쇠나무가 아닐까. 쇠나무가 꽃을 피운 것은 아닐까. 분별심을 버리고 만법을 하나로 보고, 생사를 초월하는 무차별 평등의 절대적 경지에 이르면 쇠나무에서 꽃이 핀다고 했지 않은가. 고개를 들었다. 건너편 화엄사는 온통 꽃들의 축제이다. 장엄한 꽃들의 세계, 여기가 곧 화엄세상이다."

'대불정능엄신주', 지니고만 있어도 신기한 효험이...

꿈속에서 선물받았던 능엄경을 이정 스님에게『대불정능엄신주』로 받게 될 줄이야!
 꿈속에서 선물받았던 능엄경을 이정 스님에게『대불정능엄신주』로 받게 될 줄이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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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탁자와 이정 스님입니다.
 차 탁자와 이정 스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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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스님께서 직접 싸인까지 해주신 『대불정능엄신주』입니다.
 이정 스님께서 직접 싸인까지 해주신 『대불정능엄신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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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사람이 다 있대."

비구니 스님의 염화미소 띤 얼굴을 찍으려 요것저것 주문했더니, 밉지 않은 타박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선물 받은 차 탁자 사진 예쁘게 찍어서 보내게 잘 찍어 주세요!"라는 주문입니다. 이정 스님, 제 요구에 따박따박 임하는 걸로 봐선 이심전심입니다. 맛있는 식혜 주신 답례요, 예쁘게 사진 찍으려는 마음이 합해진 게지요. 마음 같아선 맑고 투명한 스님의 정신을 있는 고대로 담고 싶은데, 너무 큰 바람이지요.

"제가 선물 하나 드리겠습니다."

스님, 안주셔도 되는데. 이정 스님, 식혜면 됐는데. 스님, 지장암 곱게 가꾸신 것 자체로 선물인데. 스님의 굳이 주시겠다는 마음 거부하면, 아리랑에 나오는 가사처럼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날까봐 곱게 받기로 합니다. 이정 스님, 책꽂이에서 주섬주섬 책 한권 꺼내 듭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대불정능엄신주>입니다. 지니고만 있어도 신기한 효험이 있을 겁니다."

아뿔싸! 무릎을 탁 쳤습니다. '능엄경'이라니. 3년 전인가. 황당무계한 꿈을 꾸었었습니다. 당시 꿈속에서 누구에겐가 받았던 게, '능엄경'이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선물을 받으면서 '능엄경' 책 이름 기억하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래, 사람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후, 지인에게 능엄경 구해 달라 부탁했는데, 지금껏 감감무소식. 이랬던 사연마저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정 스님께서 능엄경을 함축했다는 '능엄신주'를 들이미신 겁니다. 놀라웠습니다. 스님께 이 사연을 말했더니, 더욱 반깁니다. 그러면서 "이 능엄신주는 원본에 가장 맞는 해석까지 일일이 찾아 풀이하면서 만들었다"고 설명하시대요. 암튼, 스님과 시절 인연이 진작부터 예정돼 있었던 게지요. 그뿐만 아니라 스님께선 고맙게 능엄신주에 사인까지 직접 정성을 담아 해주셨습니다.

"임현철 불이 처사님, 날마다 행복하소서!"

온 세상에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길...
 온 세상에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길...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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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리산 지장암, #이정스님, #올벚나무, #능엄경, #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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