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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추억의 장소 하나씩은 있다. 내게는 '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이 글은 나의 가상의 친구 '월든'에게 도서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도서관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자전적 에세이다. - 기자 말

월든에게

안녕, 월든. 가을이 온 것을 더는 의심하기 힘든 어느 날. 나는 모교 도서관에 왔어. 예전에는 이곳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먹고사는 일 때문에 오는 것이 힘들었어. 이미 속세에서 깨지고 부서져 너덜너덜해진 마음 부여잡고 돌아온 패잔병을, 오랜 친구들인 책들만큼은 마치 다시 오리라 믿었다는 듯 익숙한 분위기로 반겨주더라고.

이 고요한 곳 한복판에 서면, 나는 마치 시공간이 정지하고 현실을 초월한 듯한 무한한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느껴. 이곳에서만큼은 빛보다 빠른 타키온 입자가 되어 시간 역행을 해 동서양의 옛 현자들과 대화를 나눠. 또한, 초모랑마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망할 수도 있고 GN-z11 은하보다 먼 미지의 영역을 탐험할 수도 있어.

나의 모교 도서관 철학/심리학 서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의 모교 도서관 철학/심리학 서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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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알파고보다 재주가 많은 AI가 등장할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있고 말이야. 미래에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월든 너도 혹시 생각해봤어? 이곳에서는 모든 상식과 주장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 허용돼.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의 경계가 참 덧없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오묘한 곳이지만...

서가의 구역과 구역이 나뉘고 또 구역마다 칸칸이 책이 꽂혀있고 각 권의 목차와 단락이 나뉘고 구절과 글자의 조합이 무한한 경우의 수로 펼쳐지지.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일까?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거야. 도서관에서 나의 정신이 해방되고 무한한 가능성을 얻는 이유야. 내가 어떤 책을 선택해 어떤 구절에 감동받느냐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릴 수도 있거든. 못 믿겠다고? 도서관에 얽힌 나의 추억들을 들려줄게.

도서관에서 만난 현자들

나는 180번대 서가에서 장자라는 철학자를 만나기 전까지 꽤 고지식한 사람이었어. 주관이 뚜렷했지. 하지만 장자는 내게 사람들의 생각이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려줬어. 삶과 죽음, 꿈과 현실 등의 구분까지도 임의적일 수 있음을 깨닫고 편견에 매몰되지 않는 태도를 조금은 가질 수 있었지. 한편 290번대 서가에는 부처님들이 계셔.

부처님들은 우주 삼라만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그것들은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기에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도와주셨어. 하지만 모든 중생이 결국 부처님들처럼 해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분간 아옹다옹 현실을 살아가겠지.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830번대 서가의 창백한 문학청년 카프카의 삶과 고뇌에 깊이 공감해. 카프카는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단말마처럼 글을 내질렀거든.

그가 생전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책은 우리의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라고 했던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후려갈기는 파괴력이 있지.

도서관은 서가의 구역과 구역이 나뉘고 칸칸이 책이 꽂혀있고 각 권의 목차와 단락이 분할된 채, 무한한한 경우의 수의 선택지를 인간에게 제시한다.
 도서관은 서가의 구역과 구역이 나뉘고 칸칸이 책이 꽂혀있고 각 권의 목차와 단락이 분할된 채, 무한한한 경우의 수의 선택지를 인간에게 제시한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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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아버지는 카프카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못마땅해했고 어떠한 말대꾸도 허용하지 않아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 카프카가 평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은 채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억눌린 의지와 내면의 갈등을 글로 승화시킨 이유야. 또한, 폐결핵으로 41세에 요절할 때까지 생계 유지와 작가라는 꿈 사이에서 동요했다고 해.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소외된 인간과 내면의 갈등, 고독을 다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

나 역시 한때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로 치면 정규군이 될까 고민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돈도 없었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도 맞지 않았어. 학부를 다닐 때 성적은 좋았지만 혼자 독서와 사색을 할 때야말로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는 최적의 시간이었어. 물론 306번대 서가의 짐멜이 알려준 것처럼 '학자 카스트'에 편입되지 않으면 인정받기 힘들다는 진실이 나를 무척 괴롭힌 것은 사실이야. 그때 나는 840번대 서가에서 카뮈를 만났어.

카뮈는 솔직한 사람이야. 인생에는 부조리가 가득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부조리에 반항하다 보면 간발의 순간이라도 자부심과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하거든. 어차피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살아있을 때 반항하며 사는 편이 그나마 무의미한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지. 카뮈의 지혜를 접한 후 나도 카프카처럼 짤막짤막한 글을 단말마처럼 내질러왔어. 사람들의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까지는 못 된들 뿅망치까지는 되길 바라면서 말이야. 문제는 어떤 부조리를 후려갈겨야 하느냐였어.

300번대 서가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린 정치사상가들의 전쟁터야. 이중 마르크스라는 두각을 나타내는 센 놈이 하나 있지. 그는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대로라면 이제 그만 도서관 밖으로 나가야 했던 거야. 나는 꽤 순진해 이 말을 잠시 믿었지만 몇 걸음 못 가 지금의 세상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사상가들은 여전히 전쟁을 이어가며 그의 진단을 보완 중이지만, 물질만큼이나 사람들에게는 꿈도 중요하다는 다른 생각을 하는 베버라는 사람도 있지. 이런 생각도 꽤 일리가 있어. 월든, 너는 물질과 정신의 교차점에 무엇이 있을지 혹시 알아?

자본주의, 과학기술도 윤리의 영역까지 식민화할 수는 없다

모교의 연못, 청룡탕.
 모교의 연못, 청룡탕.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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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나는 그것이 '감정'이 아닐까 싶어. 호네트라는 철학자의 생각처럼,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온 진짜 원동력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신의 존엄성,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분출시킨 감정, 욕구였던 순간이 더 많았거든. 물론, 인정투쟁은 왜곡된 방향으로 흐를 위험도 있지. 호네트의 스승의 스승이었던 아도르노도 사람들의 감정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다 보면 조작당할 위험을 폭로했어. 뭐든 부작용이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비판이론가'들이라 해. 하지만, 요즘은 수정주의 비판이론가들이라 불리는 사회학자들도 등장했어. 얘네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가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된 지식 상인의 성격이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봐. 또한, 당장 자본주의를 어쩔 수 없다면, 비판이론가들처럼 노골적으로 반항을 부추기기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편이 실용적이라 보는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어. 세상에는 여전히 자본주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영역들도 있거든. 예를 들면 '도덕' 같은 거. 수정주의 비판이론가들은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공장식 축산 같은 체제는 엄연히 자본주의의 부산물이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이것들을 거부하는 방법 밖에는 윤리적인 해결책이 없어.

채식주의에 찬성하든 반대하는 어떠한 윤리학자도 공장식 축산 만큼은 선뜻 옹호하지 못해. 수정주의 비판이론가들은 사실과 가치(당위)를 혼동하는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얼마간 구속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곧바로 그 구속을 용인하는 것이 좋다던가 나쁘다던가 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란 것이지.

수정주의 비판이론가들이야말로 자신들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과학철학적 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거야.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월호처럼 침몰할까? 아니면 전문가들의 모호한 태도가 오히려 해방을 지연시키는 것일까? 통찰을 얻으려면 빅데이터 분석 특히 사회연결망 분석 같은 신기술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어. 물론 이런 기술들이 소수 집단에 의해 독점당하거나 시장과 적극 결탁하는 것도 늘 경계해야지.

랑시에르나 부르디외 같은 사회학자들이 정치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잉여 인간들과 학벌·학위 같은 중산층적 문화 자본을 얻는 과정에서 배제된 빈곤 계층을 상기시켜준 교훈처럼, 보통의 대중들도 기술과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게끔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여. 내가 월든 너를 찾아온 것도 생각을 듣고 싶어서야.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네를 찾아가 통나무집을 짓고 독서를 하고 밭을 갈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 한기찬 옮김 / 소담출판사 / 2002 / 1만3800원)  '월든'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스 주 콩코드 마을 근처 호수 이름이다. 또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가을까지 위 책 표지의 글귀와 같은 이유로 월든 호숫가에서 생활하면서 깨달은 지혜들을 기록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 한기찬 옮김 / 소담출판사 / 2002 / 1만3800원) '월든'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스 주 콩코드 마을 근처 호수 이름이다. 또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가을까지 위 책 표지의 글귀와 같은 이유로 월든 호숫가에서 생활하면서 깨달은 지혜들을 기록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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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소로처럼 너를 직접 찾아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워. 다만, 이렇게 도서관에서나마 잠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뻐. 소로가 숲으로 떠난 것처럼 나는 도서관을 찾아온 것이지. 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무한한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야. 또한, 학문적 명성이나 물질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지.

이곳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은 수많은 지은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 너는 이들이 책을 출판하고 대중에게 내놓았던 본질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책들은 당장은 출판 시장에 구속되더라도 결국은 인류의 문화유산, 훌륭한 벗으로 남아 도서관의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지. 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책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야.

생각해보면,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만 하는 관념 덩어리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대학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검증 안된 사람이라고 비난받거나, 돈 때문에 글을 쓰려는 것 같다는 의심을 당하거나 등등 힘든 시비에 휘말릴 때도, 언제나책들 만큼은 내게 신뢰를 보내며 자리를 지켜줬어. 책들은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도 섣부른 낙인을 찍지도 않는 좋은 친구들이었어. 내가 어떻게 책들을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이 도서관 전체가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맥락과 역사를 알고 묵묵히 존재로 증명하잖아.

월든.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도 너만큼은 믿어. 내게 다시 한 번 길을 알려주지 않을래?


태그:#중앙대학교, #중앙대, #도서관,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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