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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말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태어난지 보름만에 중국으로 건너간 용우는 백일때부터 중국 여행을 같이했다. 돌 무렵 지우자이고우를 간 용우(왼쪽), 울란보통 초원을 갔을 때(가운데). 2008년 귀국후 잠시 다녀온 푸투오산에서 용우(오른쪽)
▲ 내가 중국을 읽는 사이에 성장한 용우 태어난지 보름만에 중국으로 건너간 용우는 백일때부터 중국 여행을 같이했다. 돌 무렵 지우자이고우를 간 용우(왼쪽), 울란보통 초원을 갔을 때(가운데). 2008년 귀국후 잠시 다녀온 푸투오산에서 용우(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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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인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 1998년 9월 말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대학교 때 다른 친구들이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했을 때, 나는 러시아어를 선택했다. 좋아했던 도스토옙스키나 고리키 같은 작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러시아 대신 중국이 팔자에 들어있었던 터. 그때 중국행은 창지앙(長江) 대홍수를 극복하는 중국 사람들을 취재해 르포기사를 쓰는 것이었지만, 더 큰 목적은 내가 중국에 도전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100년 만에 홍수를 만나 수천 명이 희생된 창지앙 주변 사람들은 묵묵히 그 고난을 극복하고 있었다. 낯선 외국인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무엇가를 해주려 하는 순박한 사람들은 내 고향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옆 사람과 엉덩이를 까고 큰 일을 보는 문화에 내가 잘 적응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렇게 닷새 가량 여정에 내가 둘러본 중국이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는 점은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1년 후 결혼과 더불어 완전히 중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인생여정을 시작했다. 2001년 잠시 귀국해 서울서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급히 시골로 갔는데,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신 거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믿어준 사람인 아버지가 떠났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 집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 아름다운 봄꽃이 만발해 있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아버지를 모시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새로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해 가을, 어머니와 역시 남편을 잃은 이모가 잠시 중국으로 여행 오셨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베이징으로 여행 가서 만리장성 케이블카를 기다리는데, 안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 생겼대."

용우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다음해 여름방학을 맞아 아내는 아이를 낳을 겸 한국으로 향했다. 나는 몇가지 일이 있어 폭염 속 중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안(西安)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었다.

눈물이 나서 화장실에 가 세수를 하고 돌아와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일주일 후 귀국해 안산 처남집에 있는 안사람과 용우를 만났다.

비행기가 신생아에게 안좋다는 말 때문에 우리 가족은 배를 타고 톈진으로 돌아왔다. 기억할 수 없지만 타고난 역마살이 있는 우리 가족은 100일 정도부터 중국 여행을 다녔다. 돌 즈음에는 8시간 걸리는 지우자이고우(九寨溝)행 버스를 타기도 했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여행을 잘 버텼다.

이후 우리 가족은 여행사를 창업하면서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이사했고, 베이징에서 몇차례 이사를 한 후 2008년에 완전히 귀국했다. 귀국 후 잠시 칩거하며 살다가 2010년부터는 중국 전문가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두 달에 한번 꼴로 중국을 다니면서 중국 일을 해야 했으며, 2015년 말에 공직생활을 벗어나서 다시 중국 전문컨설턴트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여행사 하다 2008년 완전 귀국, 중국 전문가로 공직생활 시작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은 한 때 10만명이 거주했던 코리아타운이다. 한국 음식점이 많은 4구(위쪽) 상가 건물. 최근 중국 대기업의 오피스가 들어오며 집값이 턱없이 몰라 한국 사람이 이곳을 떠나고 있다. 사진은 왕징에 들어선 소후 사옥
▲ 그간에 변모한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은 한 때 10만명이 거주했던 코리아타운이다. 한국 음식점이 많은 4구(위쪽) 상가 건물. 최근 중국 대기업의 오피스가 들어오며 집값이 턱없이 몰라 한국 사람이 이곳을 떠나고 있다. 사진은 왕징에 들어선 소후 사옥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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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난 후 생긴 가장 큰 소명의식은 우리나라에 중국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고 바르게 중국을 알리는 것이다. 사람이니 만큼 이런 생각을 완벽히 실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공정함을 중시하는 첫 직장과 글쓰기를 배운 탓에 나름대로 이런 자세를 가져왔다고 자부한다.

중국에 건너간 후부터 시작한 다양한 글쓰기와 방송 참여, 책, 강연 등을 통해 나는 중국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런데 내가 중국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근 18여년의 시간 동안에 중국은 너무 많이 변했다.

2000년 전후만 해도 종이 호랑이 취급을 받았던 중국은 지금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과학기술이나 우주기술까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가 감지할 여유도 주지 않고 중국 스스로가 급속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가 변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변화에 별 관심이 없다. 2004년 여행사를 시작하고 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차이홍 중국어의 중국 캠프였다. 보통 8박9일 정도 진행했던 이 캠프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들이 왜 중국을 알고, 중국어를 배워야만 하는 지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오전에는 중국어를 배웠지만 오후에는 다양한 문화체험, 여행을 통해 중국을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때로부터 12년 정도가 흘렀으니 그때 캠프에 참여했던 중학생은 이미 사회에 들어갈 나이가 넘었다. 그때 아이들이 중국을 제대로 알고, 중국어도 더 잘 익혔다면 지금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많을 것이다.

필자가 서른에 중국을 만나고, 중국어를 익히고, 중국을 바탕으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관심의 대상이다. 이번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중학교 2학년인 용우는 물론이고, 다양한 이들에게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중학교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글이지만 이 글은 중국에 관한 통찰력(INSIGHT)를 키우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간 필자는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황사 예측 같은 다양한 전망과 분석을 했다. 그 가운데 부동산 예측처럼 중간에 관점을 바꾼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영역은 나름대로 제대로 중국을 읽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의 변화는 워낙에 놀라워서 전문 지식이 없는 분야는 이제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가령 최근 중국의 급속한 금융시스템의 변화, O2O(온·오프라인연계)시장의 발전, 우주기술의 변화 등이 그 예다.

이런 분야는 우리나라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멀리 달아나고 있는 분야다. 국가 대 국가로 중국은 이미 우리나라를 경쟁국으로 보는 범위를 넘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 또 중국 같이 거대한 국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위험 요소도 되지만 거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30여 차례 쓸 이번 기획은 중학생 정도의 독해 능력을 갖춘 이가 중국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통찰력 있게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만큼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또 내부 이야기는 필자가 만났던 것을 기초로 하는 만큼 상당히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필자가 제시하는 길을 쫓아서 가다보면 나름대로 정확하게 중국을 이해하고, 자신이 중국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2017년은 한중 관계에서 큰 곡절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드 문제로 불거진 한중 갈등을 지혜롭게 넘기느냐 아니면 파국으로 가는가가 중요하다. 또 수교 이후 중국 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한국기업들에게 미래를 살아가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시금석 위에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 앞에는 한국이 미래에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가의 문제도 달려있다.

이번 연재의 전반은 위에 말한 전제들을 기초로 쓰인다. 가볍게 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중국 사고의 전반을 뒤집어 본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결국 다양한 토론을 통해 이 이야기가 완료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태그:#중국, #왕징,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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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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