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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불안도, 고향 마을 너무도 작아져버린 초등학교의 이야기도, 도시에서 폐지를 줍고 살아가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자동차 산업의 붕괴와 함께 망가져버린 디트로이트와 우리의 거제나 부산에서 예상되는 고민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이 모두 이 하나의 질문으로 집중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질문을 같이 고민하면 '우선은'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질문은 바로 이거다.

'아이 낳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오늘 같이 읽고 싶은 책은 바로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마을'로 소개되는 일본 호쿠리쿠 지역의 후쿠이와 도야마 시의 고민들을 담아낸 <이토록 멋진 마을>이다. 일본을 종종 가보았으나, 후쿠이 시도 호쿠리쿠 지역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되는 '호쿠리쿠 삼총사'인 후쿠이, 도야마, 이시카와는 너무도 멋진 마을이었다. 그들이 '멋진 마을'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에서 가장 빨리 중국에게 당한 곳'이라는 아픔으로 '바닥을 보았던' 게 큰 자극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석유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후, 석탄 채굴을 주업으로 하던 탄광마을의 쇠락과는 너무도 다른 그들을 만든 것은 어떤 마법이었을까? 그들의 마법에는 우리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을까? 책에 언급된 그들의 방식을 하나씩 옮겨본다.

[① 정책 선언]
고령화 사회의 위험성에 대한 각성 및 대책 수립 필요성에 대한 선언.

"미래의 고령화 사회를 짊어질 어린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1989년 10월 2일, 가이후 총리)

[② 정책 시행]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관리하고 육아의 안정감 극대화

"도야마에서 진행하는 '손자와 외출 지원사업(시내에 있는 가족공원, 박물관, 과학관, 민속자료관 등의 시설을 조부모가 손자나 증손자를 동반해 올 경우 입장료가 전액 무료인 서비스'을 저희가 베껴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렴요, 얼마든지 하세요. 이것은 고령자의 외출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손자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시의 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면 외출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집에 틀어박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걷다 보면 고령자의 건강 수명은 늘어나지요. 이것은 미래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요인이 됩니다. 게다가 손자를 데리고 가면 반드시 지갑 끈이 느슨해집니다. 고령자의 외출이 지역 경제에 공헌하는 셈입니다. 이뿐입니까. 외출하는 습관으로 노인은 건강해지고, 손자에게는 조부모 세대와 교류할 기회가 마련되는 것입니다."(모리시장/도야마 시)

[③ 도시 정비]
고령인구가 살기 적합한 콤팩트 시티의 설계를 통한 '편리한' 도시로의 변모

"(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가 조성의 근본 시각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도시 확대를 멈춰야만 했지요. 콤팩트 시티는 조닝(Zoning) 정책입니다. 도시의 확대를 막으면서,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편리함'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에요. 여기서 편리함이란 무엇일까요? 슈퍼마켓까지 걸어서 갈 수 있고, 병원이나 의원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공원, 도서관, 지역포괄 지원센터 같은 곳은 도보 몇 분 거리에 위치하도록 설계합니다. 이것이 편리함입니다." (모리시장/도야마 시)

[④ 도시의 재생]
향토애에 기반하여 구성원들이 끈끈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도시의 재탄생

"비전도 없었지만 향토애는 입으로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의 기능이 쓸데없이 교외로 확대됐고 중심부는 쇠록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리를 꽃으로 가득 채우고 경관을 깔끔하게 만들어가자 주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도시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야마 시의 어느 경영자)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거주 촉진을 위해 누군가에게 도야마에 와서 살라고 권한 적이 있습니까? 권유받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을 환경이 주변에 마련돼 있다고 보십니까?" (주류회사 '마스다주조점'의 사장 마스다 류이치로)

"만유인력의 법칙이지요. 자긍심이나 사랑 등의 에너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질량에 비례해 인력이 작동하고 사람이 모이는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지구 반대편까지 만나러 가겠지요?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콤팩트 시티 컨셉이 이를 좀 더 편리하도록 도와준 셈입니다." (덴카도의 가게주인 시게마쓰)

[⑤ 도시 재생의 결실]
20년째 행복도시 1위의 '후쿠이'의 탄생

'후쿠이 현의 세대 수입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맞벌이 비율이 전국 1위로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일하기 편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높은 보육원 수용률과도 관련이 있다. 합계특수출생률은 전국 8위이다. 여성 한사람이 생애에 1.61명 (2010년 기준)을 낳는다. 후쿠이현을 비롯한 호쿠리쿠 3개 현은 대체로 직장환경이 육아에 편리하다. 대도시권과는 반대다. 중소기업청은 이를 '호쿠리쿠 지역의 맞벌이를 통한 가치창조 모델'이라고 부르고 있다.' - p.183~184

"'행복'과 '희망'은 얼핏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행복한 사람은 지금 상태를 언제까지라도 이어가고 싶어한다. 그에 비해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느낀다. 지금 생활이 힘들지만 노력하고 견디어낸다면 반드시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희망이 싹튼다. 행복에 '계속'이 필요하다면, 희망은 '변화'를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겐다 유지)

[⑥ 도시 재생의 지속 가능성]
혁신 아이디어를 이용한 1위 기업의 탄생과 '10년 후 수업'

"지역 자체가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연결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에는 수 많은 1등 제품을 만들어내는 작은 기업들이 있어요.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면, 거의가 사장님이라고 대답합니다." (후쿠이현 상공회의소 데미즈 다카아키)

"부속중학교에는 10년 앞을 내다보며 도전하듯 수업을 하자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숙련된 교사는 그 노하우로 아이들에게 지식을 잘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그 지식이 쓸모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산업이 바뀌어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해진 것처럼, 지식전달형 수업만 받아서는 사회에 나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수업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만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교사도 협동해서 배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10년후 수업입니다."  (후쿠이대학교 부속중학교 교사 모리타선생)

이렇게 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호쿠리쿠 지역은 '망해가던' 제조업의 폐허를 단단히 딛고 일어섰다. 하지만, 저기서 얘기하고 있는 여섯 개의 단계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가?

그렇지 않다. 우리도 매번 구호를 외치고, 정책을 실행하고 그것을 통해 결실을 얻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절대 쉽지 않다. 과연 후쿠이나 도야마에는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책을 읽어가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집중력'의 부재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를 얘기하는데, 보육비 지원에 대한 방법론에 매달려 논쟁을 낭비하는 것은, 흡사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에 대고 욕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논쟁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뜻이 아닐수도 있는데 너무도 쉽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률은 현재 세계 최저수준인 1.3명 (2012년 기준)이다. 일본보다 낮아진 지 오래되었다. 이대로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가능한 논쟁인가?
▲ 대한민국 출산률 추이 우리나라의 출산률은 현재 세계 최저수준인 1.3명 (2012년 기준)이다. 일본보다 낮아진 지 오래되었다. 이대로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가능한 논쟁인가?
ⓒ 세계은행/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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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위에서 정리해 놓은 여섯 단계는 우리에게도 결코 먼 얘기가 아닐 것이다. 노인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고, 마을을 되살려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느끼도록 하면, 아이들은 늘어나고 외부인은 찾아온다. 호쿠리쿠 지역의 사례가 그것을 얘기해 주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 오바마대통령이 미국 국영 라디오인 NPR을 통해 유명 코미디언과 대담을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대담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전략'이 무엇인가를 물었고, 오바마는 '단순하게 목표만을 얘기한다'며 대답했다. 그 대답이 너무도 시원하고 단호해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은 오로지 국민에게 그 정책을 펼치는 목적에 대해서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통해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그것이 국민에게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수 많은 스태프 조직의 지혜를 짜낸다고 했다.

우리는 왜 '목적'에 집중하는 정책을 들을 수가 없는가? 무상급식이, 무상보육이 필요한 이유가 '아이 낳기 좋은 대한민국'이라면 그 '목적'에 대해서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우리가 이리도 오랜 세월 세계 최저 출산율(2012년 기준 1.30명)의 오명과 인구소멸국가 1호라는 불안감에 떨지는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젊은이들의 유쾌함,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 모든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마을도, 이런 모습일 수는 없을까요?
▲ 텐진 주변의 공원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젊은이들의 유쾌함,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 모든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마을도, 이런 모습일 수는 없을까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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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콤팩트 시티를 얘기하면서 저자가 예시를 들었던 도시가 미국의 포틀랜드와 일본의 후쿠오카였다. 운 좋게도 두 도시를 모두 방문했고, 두 도시 모두 '대도시답지 않은 아늑함'을 느낀 바 있다. 도시의 확장을 추구하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주거지를 도시 밖으로 내보내며 구도심이 폐허로 내팽개쳐지는 우리의 많은 도시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9월 초, 주말을 이용하여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쾌속선으로 세 시간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가끔 '일본'을 느끼고 싶을 때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찾을 때마다 '인구 150만의 대도시가 어쩌면 이리도 아늑한가'가 궁금했는데, 그 답이 바로 '콤팩트 시티' 개념에 의한 조닝 (Zoning) 콘셉트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후쿠오카 시 역시 다른 대도시의 재생 정책과 동일하게 대기업을 유치함으로써 도시를 키우고자 했단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제철소였으나, 절대적으로 후쿠오카에는 '물'이 부족하였다고. 게다가 1978년의 대가뭄을 거치면서, 도시는 대형 공장의 유치 계획을 전격적으로 철회하고, 개발 억제형의 '제어 능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도시'를 설계하게 된다. 도시를 억지로 키워서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내쫓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좁은 도심의 내부에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도록 바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후쿠오카는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깝고 (하카타역까지 시내버스로 10분에 채 걸리지 않는다), 도시의 중요 시설들 간에 대중교통(지하철 & 버스)으로도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카타 항, 하카타역, 텐진역의 주요 위치까지 모두 도보로 20분 내에 이동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대략 비슷한 동선이 나온다고 한다. 왜냐하면, 도시를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곳'으로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텐진역 앞의 공원에서 이 책 <이토록 멋진마을>을 읽으면서 공원을 평화롭게 채운 사람들을 바라보니, 과연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차보다는 대중교통이, 도보나 자전거가 편리한 도시이고, 주말의 공원을 평화롭게 채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가진 일본이 맞나,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우리의 도시 재생, 지방 재생의 개념도 이런 '지속 가능성'에서 시작할 수는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책정보: <이토록 멋진 마을>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김범수 옮김 (황소자리)



이토록 멋진 마을 -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 김범수 옮김, 황소자리(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이토록 멋진마을, #후쿠이 시, #지속가능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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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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