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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들어 뉴라이트와 새누리당 일각에서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을 자주 내놓는다. 2015년 광복 70주년 경축사는 물론, 올해 광복 71주년 경축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건국 67주년" "건국 68주년" 등의 발언을 통해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새누리당은 아예 건국절 논란이 계속되자 새누리당은 아예 '8.15 건국'을 당의 입장으로 공식 천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절대다수가 대한민국 국체 성립의 기점을 1919년으로 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거니와, 제헌 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한민국이 이어받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기에 새누리당과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는 '건국절 주장'은 반(反) 헌법적인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8.15 건국에 힘을 주고 있다. 그들이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와 그 이유에 대한 반론을 정리해보겠다.

1948년 발행된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관보'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을 대한민국 원년이 아닌 대한민국 30년으로 보았다. 이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해를 대한민국 원년으로 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1948년 발행된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관보'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을 대한민국 원년이 아닌 대한민국 30년으로 보았다. 이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해를 대한민국 원년으로 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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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세계사에서 자기 나라의 건국을 기리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거짓이다. 당장 미국만 보아도 '건국'을 기념하는 기념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건국의 기점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1776년 7월 4일로 보고 이날을 '독립기념일'이라 하여 크게 기리고 있다.

중화민국도 건국 연도는 1912년으로 보고 있으나 건국기념일은 존재하지 않고 중화민국 건국의 계기가 되는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10월 10일을 '쌍십절'이라 하여 건국기념일과 같은 의미로 기리고 있다. 우리나라만 건국을 기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 왜곡'이다.

둘,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일 뿐 실질적이지 않았다?

궤변이다. 제헌 헌법 제정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은 "우리나라의 민주정치제도가 남의 조력으로 된 것이 아니요, 30년 전에 민국 정부를 수립·선포한 데서 이뤄졌다는 것과 기미년 독립선언이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더 영광스럽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라며 대한민국 공화국 국체의 수립을 1919년 4월 13일로 공식 천명한 바 있다.

제헌 헌법 전문에도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하고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에 시작되었음을 못 박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임시정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독립운동가들은 한반도 13도 대표회의를 통해 수립한 한성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같은 해 13일 대한민국의 수립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다. 이들은 정부를 국내에 세우려고 했으나, 당시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외교와 군사 활동을 통한 국토 회복 및 정부 재건을 위해 상하이에 망명정부 형태로 대한민국을 수립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비록 망명정부 형태이긴 했으나,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임시헌법에 따른 정당 정치를 수행했으며, 1940년에는 광복군을 건군하여 항일 전쟁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임시정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위를 통해 알 수 있다.

1947년 대한민국입헌기념식 해방 이후에도 많은 국민들은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입헌 정치를 수행했다고 믿었다. 위 사진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 1947년 대한민국입헌기념식 해방 이후에도 많은 국민들은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입헌 정치를 수행했다고 믿었다. 위 사진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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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국가의 성립 요건은 영토·국민·주권인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 3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

역시 궤변이다. 위에서 말했듯, 독립운동가들은 3.1 운동 이후 대한민국 정부를 국내에 세우려고 했으나, 당시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외교와 군사 활동을 통한 국토 회복 및 정부 재건을 위해 상하이에 망명정부 형태로 대한민국을 수립한 것이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의 3요소가 없었던 샤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는 국가가 아닌가? 프랑스 공화국 역사에서는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를 엄연한 공화국의 역사로 포함하고 있다. 이들의 논거대로라면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는 프랑스 공화국 역사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넷,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스스로를 정부로 인식하지 않았다?

사실 왜곡이다. 일부 뉴라이트 세력은 위의 반문에 대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1년 건국강령을 반포했다, 이에 따르면 임시정부는 건국을 준비하고 있었단 것으로 임시정부의 수립은 건국이라 볼 수 없다"라며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강령을 반포하여 건국의 과정을 계획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 건국의 주체가 임시정부란 것이다.

건국강령에 나와 있는 복국, 건국이란 용어는 '임시정부가 주체가 되어 한반도로 복귀한 후,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만드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라 볼 수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설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보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식 정부가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어디 그뿐인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 전체와 부속 도서로 삼는 헌법 3조는 위헌이 된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 영토는 38선 이남으로 축소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탈북자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한국 정착을 지원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그 외에도 일본의 독도 야욕을 정당화시키는 합법적 근거가 된다는 점, 대한민국이 과거사에 대해 일본에 법적·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는 점,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분단체제가 영구히 고착화된다는 점, 친일부역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게 된다는 점, 대한민국을 건국 68년의 신생 독립국으로 전락시킨다는 점 등 갖가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헌법을 부정하는 건국절 주장을 한 국가의 여당과 대통령이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절대다수가 용인하지 않는 8.15 건국절을 끝까지 밀어붙여 역사전쟁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여 선대들의 얼굴에 침을 뱉을 작정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게시물은 필자의 블로그에도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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