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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광복절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지 73주년이 됨과 동시에 이 땅에 민주 정부를 세운 지 70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으레 독립 몇 주년을 맞이하게 되면 지난 세월 동안 우리나라가 이룩한 업적을 기념하고 헌법 정신에 우리가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여야겠으나, 지난 십여 년간 8.15는 역사적 성찰의 장이라기보다는 건국절 제정 찬반이라는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악용돼 왔다.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인터넷 극우 매체를 중심으로 이승만 재평가 및 건국절 제정 옹호 기사가 올라오는가 하면 지난 9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대표로 있는 자유포럼은 건국 70년 세미나를 열어 1948년 건국론을 지지함과 동시에 이승만을 국부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의 학술회를 가졌다. 광복절 당일에는 건국 70주년 기념식이 국회의원 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건국절 논쟁은 건국 시기 규정의 문제로까지 비화하면서 역사 전쟁을 더욱 가속화했고, 그 과정에서 국정교과서로 대표되는 역사 국정화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다. 십여 년을 넘게 끌어온 이 논쟁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독립정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외국

돌로레스의 함성 삽화 멕시코는 1810년 9월 16일 미겔 이달고 신부가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린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 돌로레스의 함성 삽화 멕시코는 1810년 9월 16일 미겔 이달고 신부가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린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 EM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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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돌로레스의 함성'(Cry of Dolores)이 외쳐진 1810년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한다. 지난 2010년 9월 16일에는 독립 200주년 행사도 성대히 치렀다. 그런데 이날은 멕시코가 정식으로 독립국을 선포한 날이 아니라 미겔 이달고라는 신부가 돌로레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독립전쟁을 주장하며 성당의 종을 울린 날이다.

이달고 신부는 돌로레스라는 마을에서 성당의 종을 울리며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전쟁을 벌일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주민들을 규합하여 스페인인들을 처단한 뒤 멕시코 시티로 진격하였으나 스페인군에게 크게 패하였고, 종국에는 이달고 신부가 당국에 체포, 처형되면서 돌로레스의 함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장군 등 여러 독립운동가의 주도로 독립전쟁이 재개되었고, 여러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스페인의 진압으로 무산되고 만다.

스페인이 독립을 성취한 것은 1821년 8월 24일 코르도바 조약으로 스페인이 멕시코의 독립을 허용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멕시코는 스페인 본토인에 대항해 독립 의지를 표출한 돌로레스의 함성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였다.

한편 북유럽의 노르웨이의 경우, 1814년 5월 17일을 '제헌절'이라는 국경일로 기념, 경축하고 있다. 이날은 스웨덴의 식민 지배에 저항해 노르웨이의 민족주의자들이 헌법을 만들어 독립 정신을 표출한 날이다.

노르웨이는 1814년까지 덴마크와 동군연합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영국-스웨덴-덴마크 3국 간의 전후 처리 조약(Treaty of Kiel)이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은 유럽 전쟁 당시 프랑스에 가담했던 덴마크 왕국의 영토 중 노르웨이 강역을 스웨덴에 할양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노르웨이 주민들은 각계 대표를 선출한 뒤 오슬로에서 독립국 노르웨이의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선포하게끔 했다. 이날이 바로 1814년 5월 17일의 일이다. 그러나 헌법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웨덴은 노르웨이를 침략해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기에 이르렀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 10월 26일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르 2세가 노르웨이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면서이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독립국을 세운 1905년이 아닌 헌법을 제정하여 독립정신을 처음으로 표출한 5월 17일만을 기념한다.

멕시코와 노르웨이 이외에도 프랑스, 중화민국,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정식으로 독립, 건국된 날과는 별개로 독립정신을 처음으로 선창한 날을 최고 국경일이자 국가의 기원으로 기념하고 있다. 실질적인 국가 기능이나 건국 시점에 골몰하는 것이 아닌 나라 세우기의 첫 과정과 정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정신 이은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헌법은 1948년 제헌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이념을 건국 정신으로 삼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금번 헌법을 제정하여 수립하고자 하는 정부는 기미년에 삼천만의 민의에 의하여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재건하는 것"이라고 말한 헌법 초안자 유진오 박사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헌법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을 3.1운동과 임시정부로 잡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폭력적 지배를 부정하고 3.1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지속해서 항쟁한 '국가의 역사'가 있음을 알리려 한 것이 첫째 이유였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미국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 경험을 축적해 온 것이라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정부 수립 직후 법정 연호를 논의하던 당시 '대한민국 연호'가 아닌 '단기'를 주장하던 측에서도 1948년이 '대한민국 30년'임을 부정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건국 시기에 구애 말고 3.1운동의 헌법 이념 되새길 때 

'대한민국 100년'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여 1919년 이후의 독립운동과 건국과정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멕시코, 노르웨이와 같이 국가의 기원 연도와 실제 국가의 독립 연도가 다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와 레지스탕스의 사례처럼 임시정부를 법통 정부로 받들면서도 다른 독립운동 진영을 함께 기릴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시기를 획일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건국의 정신을 옳게 알고 기념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 자세일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우리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헌법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였는가? 외려 헌법의 정통성을 흔들려는 뉴라이트 진영의 건국 시기 촌극에 휘말려 우리가 진정으로 기념해야 할 대상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잇는 우리 정부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의 헌법 이념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내년을 어떤 감상으로 맞이할지 함께 논의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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