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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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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벌어지는 사드 논쟁은 그저 어떤 무기체계를 한국이 도입하느냐, 마느냐 하는 소규모의 논쟁이 아니라, 대한민국 내에서 정치세력 간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놓고 벌이는 한판 승부"다. 현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들여놓으면 "사활적 안보"가 확보되고, 그렇지 않으면 "사활적 안보"를 포기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안보, 건전한 남북한 관계의 유지, 평화통일을 위한 대비 등을 염려하는 국가의 지도자, 정치가, 혹은 정부의 고위관리라면 좀 더 큰 그리고 좀 더 장기적,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만 한다. 이것은 소위 국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고 의무다.

'정답'은 정해져있는데 대체 왜?

그런데 현 정부의 인사들은 무지한 것인지, 착각인지, 기만인지는 알 수 없으나, 4강과의 외교관계, 혹은 대북관계를 오직 억지이론(抑止理論, Deterrence model)에 입각해서만 바라보고 있다. 즉,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해라(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식의 사고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다(혹은 그런 식의 사고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기만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국제정치학자들이 정부관료들 중에 당연히 있고,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제관계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각(혹은 모델)이란 '억지이론(Deterrence model)'과는 다른 대안적 사고틀인 소위 '나선형 모델(Spiral model)'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국가들이 어떤 역사적 연유로 인해 일단 적대관계에 돌입하면, 결국 군비경쟁의 나선형(spiral, 즉, 악순환에 의한 나선형 진행 과정)에 빠져들게 되어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즉, 한 국가가 거액의 돈을 무기제조, 무기구입 등에 쓰더라도, 그 국가의 상대국(적대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상응하는 마찬가지의 군비증강에 몰입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둘 다 결코 더 안전해지지 못한다. 달리 말해, 군비경쟁은 두 적대국이 공히 더 강력한 무기를 갖는 결과만 초래할 뿐 "안보의 증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상태에 놓이게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루묵'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국가가 적대관계에 놓여있을 때, 일방이 상대방을 무기, 다른 강제적 수단 혹은 폭력으로 제압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는 안보딜레마 기제의 작동으로 인해 결국 장기적으로는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 더 현명한 방법은 적과의 화해(reconciliation)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그로 인한 여유분의 자원을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바람직한 '정답'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으로서 이미 국제정치학자들이라면 이는 다 아는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 혹은 정부의 인사들은 이 명백한 '정답'을 마치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첫째 이유는, 현 정부의 인사들이 북한이라는 꼴 보기 싫은 존재와의 자존심 싸움(그들은 민족 전체의 이익 보다 자신들의 자존심 싸움을 앞세운다)을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내가 현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혹시라도 북한에 대해 마치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몰아붙이거나 용공세력으로 몰아붙이지 말라 제발. 난 현 남한 정부조차 비민주적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정권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걸핏하면 '종북'이니 '용공'이니 하는 유치한 비난은 하지 말라.

두 번째 이유는, 현 정부의 인사들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활용하여 특정 정치세력의 결속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권 안보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안보, 더 나아가 남북한을 통틀어 한민족 전체의 공동안보(common security)를 생각할 수 있는 큰 시각을 가진 '참으로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현재 집권세력 내에는 없다.

혹은, 있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직언을 하지 않는다. 국가의 혹은 한민족의 백년대계를 진실로 걱정하는 지도자들이라면 결코 현재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고 소견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달 23일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무수단 미사일)의 시험발사 사진을 공개하며 무기 개발 수준을 과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지상대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며 관련 사진 수십장을 공개했다. 사진은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의 모습.
▲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0' 시험발사 사진 공개 북한은 지난달 23일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무수단 미사일)의 시험발사 사진을 공개하며 무기 개발 수준을 과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지상대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며 관련 사진 수십장을 공개했다. 사진은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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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의 꼬일 대로 꼬인 사드정국의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나는 그 해법, 즉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첫 걸음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을 이스라엘과 같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더 이상 '악의 정권'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시대착오적 3대 세습정권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역으로 내부결속에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적 상황'에서는 패러독스적 논리가 작용함을 명심해야 한다. 전략적 상황이란, 국가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이 반드시 애초에 '의도한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결과는 상대국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 측이 순전히 방어적 목적으로 군비를 증강해도 그것이 상대방의 대응적 군비증강을 초래한다면 애초의 노력은 '군비경쟁의 악순환'으로 인해 헛수고가 되고 마는 이미 언급한 '안보딜레마'가 그 대표적 예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사실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흔히 사용되는 경구 중, 예를 들면, '스스로를 높이려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고,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必生卽死, 必死卽生)', '배수진(背水陣)',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썩어야 새 생명을 얻는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등이 그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을 따르면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지만, 악을 선으로 대해 기존 상호관계의 패턴이 바뀌면 '윈-윈'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다. 씨앗이 죽어야 싹이 나듯이, 근본적 변화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며 양보, 희생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가능해진다. 겉으로는 지는 것 같은 행동이 결국은 함께 승리하는 길을 연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반도 비핵화의 첫걸음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다시 한 번 강조컨대, 국가 간의 전략적 관계에서는 패러독스(일견 모순적) 논리가 흔히 적용된다.

여기에서는, 대략적인 그림만 간단히 그려 보겠다. 일단, (1)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안보불안에서 먼저 벗어나게 해주고, 그런 연후에 (2) 핵 문제의 폐기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혹은 (2) 차후에 핵문제의 폐기 문제를 '반드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일단은 우리 측(미국, 한국)에서 (1)먼저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안보불안에서 먼저 벗어나게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북한이 그토록 끊임없이 원하고 주장해온 '평화협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점차적인 핵무기 폐기에 관한 협정'을 맺거나, 이미 북한이 사실상의 핵 보유 국가라는 엄연한 사실을 전제로 새로운 출구전략을 짜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내 생각의 핵심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처럼 남한이 중국, 러시아, 북한 모두를 적으로 돌려서 '끊임없는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 보다는 훨씬 현명한 정책이라고 나는 본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객관적인 현실에 근거를 둬야 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길 원하는 나라는 동북아지역에서 오직 북한뿐이었다. 그래서, 모든 국가들이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어서는 안된다" "되었어도 인정할 수 없다"식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변국들의 바람과는 달리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어쨌든 현재 북한이 이미 핵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따라서,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모든 정책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다분히 파격적인 생각이어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현재와 같이 남북한 관계(더 나아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관계)가 강대강(强對强)으로 치달아 전쟁, 그것도 핵전쟁의 위협으로까지 고조되는 것보다는, 북핵인정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리고 '일시적'인 북핵인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반도 핵 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분명 스스로 안보가 확보되었다고 느낄 때만 비로소 핵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런 장기적 전망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북핵 인정이 가까운 장래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북한의 최근 행태를 마음 깊이 용인하거나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윤태룡 기자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사드논쟁, #북핵문제, #핵국가 북한, #전략적 패러독스,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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