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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갈린 우리 한민족(조선민족)이 분단된 지도 벌써 72년이 훌쩍 넘었다. 서글픈 일이다. 나는 사실, 실로 "서글픈"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나이 또래나 세 딸들은 아마도 내가 느끼는 이 "아린" 감정에 좀 낯설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미 타계하신 1928년생 아버님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이시고, 생존해 계신 1932년생 어머님은 황해도 신천 출신이시다. (황해도 구월산 근처의 신천은 6.25 전쟁 중  남북 양쪽이 몇 차례씩이나 서로 번갈아 가면서 차지하는 바람에 좌우익 쌍방이 참혹한 죽음을 주고받은 곳이다.) 1.4 후퇴 때, 23세이셨던 아버님은 부모님(나의 조부모님)과 헤어져서 남동생 하나를 데리고 월남하셨고, 19세이셨던 어머님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조카딸을 등에 없고 월남하셨다(외할머니와는 평생 헤어졌다).

나의 부모님이 결국 인천에 정착하셨기에 그곳이 결국 나의 고향이 되었다. 어머님께서 내가 어렸을 적 언젠가, 인천에 정착하신 이유가 통일이 되면 빨리 고향 땅을 밟고 싶어서라고 얘기하신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도 그 말씀을 듣고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에게 통일은 관념적이고 거시적인 민족·국가의 일만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실제적이고 미시적인 문제로 피부 속 깊이 그리고 마음까지 후비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몇 가지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 아린 마음이 내가 인천에서 출발하여 건대 연구실에 도착하는데 2시간 10분이나 걸리는데도 서울로 이사하지 않는 한 이유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만 그렇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특히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동안 국민들의 입에 강제로 물려졌던 보이지 않는 재갈이 풀려 통일에 대한 열망도 봇물 터질 듯이 번져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북핵 문제로 인한 냉각된 분위기 때문에, 남북관계에서 실질적이고도 가시적인 진척은 아직 별로 없지만, 북핵위기 국면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면 분명 파도와 같이 몰려올 수도 있을 통일열망을 예상하면서, 사실 좀 염려되는 바가 있다. 그게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1960년 4.19 민주화 학생시위로 7.29 총선에 의해 제2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봇물과 같이 터져 나왔던 백가쟁명식의 통일논의가 정치적 혼란을 일으켜 북의 침략을 다시 불러올 것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남로당 이력과 관련하여 군부 내에서 출세의 길이 막혔던 박정희 일당이 반공을 기치로 이끌었던 군부세력이 쿠데타에 성공했다. 물론 그런 일이 앞으로 또 다시 되풀이 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통일열기가 가열되면 분명 국내의 보수세력들은 북한위협을 빙자하여 다시금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의 초점은 통일논의에 있어서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논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최근 진보진영의 통일논의를 보면, 분열을 넘어 서로 적대시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이지만, 민주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수용해야 할 원칙이 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음에 동의(agree to disagree)한다"는 원칙이다.

현재 소위 진보진영 내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다: [무작위로] (1)북미간 평화협정 우선 체결, (2)주한미군 철수, (3) 남북한 동시중립화, (4)단계적 중립화통일(즉, 남한만의 중립화 → 북한만의 중립화 → 남북한 동시중립화), (5)연방제 통일방안, (6)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7)한반도의 비핵화 등등. 그 밖의 통일담론으로는 (8)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9)독일식의 흡수통일, (10)기능주의적 통합이론, (11)햇볕정책 등등이 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한다면, (12)무력통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통일방안들을 놓고 본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학술회의, 시민단체 모임, 신문지상, 시사잡지, 인터넷 싸이트 등을 통해서 국민적 대토론을 벌여야 한다. 단, 자기랑 견해가 다르다고 적대시하고, 미워하고, 왕따시키고, 욕하고, 모욕하고... 이래서는 안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반드시 이성적 토론이어야지, "agree to disagree"의 민주주의 원칙을 깸으로써 통일논의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정말로 또 다시 찾아온다면, (좀 황당한 가정일 수는 있지만) 북핵위협을 빙자하여 제2의 박정희가 또 다시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다!

자기가 생각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새로운 생각'에 처음으로 노출되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다르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틀렸다', '비정상적이다'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사회•정치현상은 인간이 애초에 '의도한 결과'와 '의도치 않은 결과'의 결합("섞어 찌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에서는 (실험실과 같은 상황이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인과관계의 연속적이고, 복잡하게 꼬이기까지 한 실타래와 같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기가 '의도한 (또는 예상한) 결과'가 아닌 '의도치 않은 (또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부닥치게 되면 그에 대해 일종의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사실 이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가 '의도한 결과'만을 기대하지, '의도치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에 맞닥뜨리게 되면 깜짝 놀라서는, 후자에 대해 [(1)존재함을 아예 부정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2)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미미하다고 폄하거나, 아니면, (3)그냥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무시해도 된다]고 딴전을 부린다.

특히,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 또는 사회의 변혁방법을 놓고 서로 대의명분(大義名分/cause)을 내세우며 2개 이상의 세력이 다투는 경우에, 사실(혹은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자기 측에 유리한 정보만 걸러서 전달하면서 현실을 무시·왜곡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시키면, 장기적으로 그 운동(movement)은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 무시했던 부분이 더욱 더 큰 문제로 부각되어 반격의 물결로 돌아올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태여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끌어들이 필요도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적어도 장기적으로 '통일의 대업(統一의 大業)'에서 단기적 이득을 위하여 토론자들 중의 다른 목소리(혹은 소수견해)를 적대시해서도 사실을 왜곡해서도 절대로 안된다.

완전한, 무한대의 자유토론, 그것만이 백가쟁명의 통일담론이 이성적 논쟁에 의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훌륭한 대의명분을 갖고 목표를 향하여 운동(movement)을 할 때에, 소수의 의견을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근거 없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행태는 반드시 진보진영 전체의 패배로 귀착될 것이다. 국내외를 통틀어서 '통일 꼬레아'를 열망하는 진보세력들은 내부분란에 휩싸여 대의를 그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고, 제2공화국 시절을 되돌이켜 보면서 또 다시 역사를 도둑맞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태그:#진보적 통일운동, #평화협정, #의도치 않은 결과, #백가쟁명, #중립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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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국제정치 전공), 건국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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