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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 시대 어른, 부모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년 전 '세월호 사고'와 '흙수저 금수저'의 운명론에 이어 매년 계속되는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 이제는 '헬조선'이라는 입에도 담기조차 싫은 표현이 난무하는 이 땅에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

지난 5월 29일 일요일. 저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축구선수를 꿈꾸는 중1 아들과 함께 중계동 수암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습니다. 이제 중학교 기숙사 생활도 3개월째. 주말에는 집으로 오지만 엘리트 선수만이 살아남는 험난한 세계로 아이를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애처로운 마음이 듭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학교 공부를 통한 경쟁을 하지만 운동선수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학교에서 축구 연습을 했지만 일요일에도 또다시 운동장을 찾게 됩니다.

유난히 더웠던 이날 아침, 저는 아들을 한의원에 데려가 침도 맞게 하고 미용실도 데려가 머리 깎는 걸 지켜보면서 말없이 곁에 있었습니다. 부모 마음은 다 같은 거 아니겠어요. 최근 뉴스를 통해 터져 나오는 강력범죄 속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야 할까, 또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까, 많은 걱정 속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하지는 못해도 최소한이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공부에 한창인 중고등학교 축구광 동네 형들이 운동장을 찾았고 곧 아들과 형들이 어울려 미니 축구시합을 열었습니다. 동네 형들의 축구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축구광답게 조금은 서툴지만 다양한 기술을 시도하며 유쾌하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시…. 운동장 울타리망 너머에서 어른 4~5명의 대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2만원 내놔! 돈 달라구!"

처음에는 어쩌나 큰 목소리였는지 싸우는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바로 옆이다 보니 공을 차던 아이들도 멈춰 서서 모두 쳐다보게 됐습니다. 한참을 지켜보니 어른들이 서로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축구를 하던 아이들을 불러서 뭔가를 물어보는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면서 아이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에 맞은 차 사진. 공에 맞은 곳을 잘 찾지 못해 세 번이나 촬영했다.
 공에 맞은 차 사진. 공에 맞은 곳을 잘 찾지 못해 세 번이나 촬영했다.
ⓒ 임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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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기 차가 축구공에 맞았는데 누가 그랬는지 책임을 묻고 그에 대한 보상 조치를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앞에서 큰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라 저는 그들을 순수하게 바라볼수만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부모의 입장이 돼 살피게 됐습니다. 혹시 아이들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는 게 아닌가 싶어 일단 휴대전화로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공에 맞았다는 곳이 잘 보이지 않아 연거푸 세 번 촬영했습니다. 차주는 박아무개씨였는데, 그의 명함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유명 개그맨 대표가 있는 연예기획사 매니지먼트 관계자였습니다.

차 주위에 있던 박씨의 친구가 "왜 아저씨가 끼어드냐"라고 묻길래 저는 "운동장에서 공 차는 아이들 중에 내 아이가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들이 차에 흠집을 낸 아이를 찾아 보상을 받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빨리 제 명함을 주곤 전화하라고 한뒤 일단락지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누가 공을 차서 차를 맞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어느 부모라도 저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우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제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차주 박씨가 보내온 견적비 자료.
 차주 박씨가 보내온 견적비 자료.
ⓒ 박아무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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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적비 사진으로 보내왔습니다. 저는 지인인 동대문경찰서 관계자에게 전화해 보니 "그냥 애들 공 차는데 차를 세워 놓고 아이들한테 수리비를 요구하는 것이 참 그렇다"라면서 저렴하게 수리할 수 있는 수리센터를 가르쳐줬습니다. 저는 차주 박씨에게 그곳에 가서 수리 받으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박씨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왜 저쪽에 가서 수리를 해야 하나요?"라고 답했습니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그럼 보험 처리한다고 해봐, 그렇게 한다면 정말 견적비가 그렇게 나온 게 맞을 거야"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바로 차주 박씨에게 "보험처리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박씨는 "네, 알겠습니다, 접수번호주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제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수리비를 아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차주 박씨게 견적서를 받은 마포 수리센터와 제가 소개한 수리센터(동대문 쪽에 위치)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박씨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누가 공을 찼든 부모된 입장에서 수리비를 지불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박씨가 조금 양보해 저렴하게 수리받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박씨의 생각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차주 박씨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차주 박씨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 임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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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위분들 중에선 '주차된 곳도 따져 보고 견적서 보낸 곳도 따져 보고 실제로 그 애들이 찼던 공인지도 모르지 않냐'면서 '그쪽에서 알아서 증명하게 내버려두지 뭐 때문에 명함을 줬냐'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그 상황에서 모른 척하거나 알아서 찾아보라고 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예상컨대, 아이들 기억 속에 행복한 일요일 오후에 대한 추억이 얼룩질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저는 차주의 요구대로 그 수리센터에 돈을 보낼 생각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님들과 지혜를 나누고 싶고,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수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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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사물에 대한 본질적 시각 및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옳고 그름을 좋고 싫음을 진검승부 펼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살아있다는 증거가, 단 한순간의 아쉬움도 없게 그것이 나만의 존재방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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