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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면담하고 있다.
 지난 26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면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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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재임 기간인 지난 2011년에, 유엔이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이하 이행원칙)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앞선 글(관련기사: 유엔, 한국 기업의 인권 문제 살펴보러 방한)에서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연일, 반기문 사무총장의 한국 방문 소식과 그의 대권 도전 시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반기문 총장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은 이행원칙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인권보호 정책

반기문 총장의 참석으로 화제를 모은 지난 25일 제주포럼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기업과 인권 NAP(National Action Plan, 이하 NAP) 컨퍼런스도 열렸습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으로 번역되는 NAP가 뭔지 궁금하실 겁니다.

지난 1990년대에 국제사회가 각 국가들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UN차원에서 새로운 인권보호 장치를 만들기로 약속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와 NAP입니다. 한국도 당연히 이 약속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했고, NAP를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NAP는 정부차원에서 인권의 전 분야에 걸쳐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내놓는 것인데 무척 생소하실 겁니다. 4개년 계획으로 진행되는 NAP는 정부부처 간 조율을 거쳐 법무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인 건 당연합니다. 정부가 홍보도 안하고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니까요. 어쨌든, 이행원칙이 발표된 이후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업과 인권에 대한 NAP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3기 NAP를 한국정부는 시작해야 하는데,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한국정부도 기업과 인권에 대한 NAP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인권위는 현재 정부에 권고할 기업과 인권 NAP를 만들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제주에서 포럼을 개최한 것입니다.

문제는 인권위가 좋은 권고안을 만들더라도 한국 정부가 얼마나 인권위의 권고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란 것입니다. 한국정부의 끔찍한 기업 사랑은 설명 안 드려도 될 것입니다. 반기문 총장 재임시절에 만들어진 이행원칙에 따라 기업과 인권 NAP를 만들어야 국제사회에서 인권선진국으로 간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게 인권존중의 책임을 부여하는 NAP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제주포럼에서 제기된 해외한국기업의 인권문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영국의 NAP를 보면, 주로 초점이 제3세계에 진출한 영국기업이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행원칙과 NAP는 원래부터 사법체계가 잘 작동하는 본국보다는 개발도상국 진출 기업에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당장 국내에서부터 문제가 많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31일에 미얀마의 한 노동단체는 미얀마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http://www.myanmar-responsiblebusiness.org/news/under-pressure.html).

지난 25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 포럼에서 미얀마 활동가 뚜레인씨가 질문하는 모습.
 지난 25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 포럼에서 미얀마 활동가 뚜레인씨가 질문하는 모습.
ⓒ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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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권단체들은 한국정부가 NAP를 만들려 하고 있고,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방한하는 만큼, 이 조사보고서를 작성한 미얀마 활동가 뚜레인 아웅(Thurein Aung)씨를 초청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미얀마 기업책임센터(Myanmar Center for Responsible Business)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미얀마 기업책임시민센터는 미얀마 진출 유럽기업의 인권침해 예방을 위해, 영국과 덴마크 정부의 공동지원으로 설립된 곳입니다. 마침, 기업과 인권 NAP 콘퍼런스에는 주한 EU대표부와 덴마크 대사관에서도 참석하여 유럽 국가들의 기업에 관한 인권정책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뚜레인씨는 컨퍼런스의 질의 응답시간에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미얀마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NAP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만들기를 요구합니다. 한국 인권위는 해외진출 한국기업 인권문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뚜레인씨의 질문에 인권위는 해외진출 기업은 인권위의 조사 범위를 넘어가지만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아래 NCP)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은 OECD국가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뚜레인씨가 가져온 보고서에도 한국은 OECD 가입국가로서 OECD가 만든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한국기업들이 준수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역할을 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http://www.oecd.org/corporate/mne/)은 올해로 만들어진 지 40년이 됩니다.

OECD가입국가(34개국)를 포함하여 전 세계 46개 국가가 참여하는 이 가이드라인은 인권과 노동, 환경을 아울러 OECD국가 기업들이 준수해야 할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을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는데, 바로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 해당 기업 본국 정부에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한 진정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6개국 정부는 NCP를 설립해서 가이드라인 홍보 및 제기된 진정에 대한 조사와, 당사자 간의 중재, 그리고 위반기업에 대한 권고를 수행해야 합니다.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초국적기업들이 세계 어디에서건 문제를 일으키면, 각국 정부는 사법절차는 아니지만, 진정이 접수되면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토의 경계를 뛰어넘어 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해당 국 정부가 관여하도록 하는 이 가이드라인과 NCP를 한국기업도 당연히 준수해야 하고 한국정부도 설치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정부가 설치한 NCP가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한국NCP는 지금까지 약 15건의 진정을 접수 받아서 단 한 건도 제대로 된 조사나, 중재, 권고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는 한국NCP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노동계와 시민사회, 심지어는 기업도 배제하고 정부부처들로만 구성되어 운영됩니다. 2013년도부터 민간전문가를 포함시켰다고는 하지만 산업정책연구원과 KOTRA, 한국표준협회와 같은 정부 유관기관들은 민간을 대표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권이나 노동에 대한 전문지식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2011년에 인권위가 한국NCP 운영을 개선하라는 권고까지 내린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한국NCP에 대한 평판이 나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국NCP에 대해서 국제사회 관련 전문가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그들은 한국NCP가 16년 동안 단 한 건의 진정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왜 한국은 모든 좋지 않은 OECD 통계에서 수위를 달리는 것도 모자라서, OECD국가로서의 중요한 책임인 NCP도 이렇게 부끄럽게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요?

차기 NAP에서는 NCP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2015년 열린 G7 정상회담 모습
 2015년 열린 G7 정상회담 모습
ⓒ 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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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독일에서 개최된 G7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https://sustainabledevelopment.un.org/content/documents/7320LEADERS%20STATEMENT_FINAL_CLEAN.pdf)에 이행원칙은 물론, NCP 강화 약속이 포함될 정도로, 기업의 인권 문제는 국가 지도자라면 숙지하고 있어야만 하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반기문 총장뿐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한국 지도자라면 이행원칙이 무엇인지, OECD가이드라인과 NCP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문제를 다룰 때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아마 제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은 생소한 용어들이 너무 많아서 힘드셨을 겁니다. 세계는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데 한국 정부와 기업, 언론은 이 문제를 마냥 외면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NAP나 NCP를 하는 시늉만 해도 되었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이제는 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발 책임 있는 모습을 좀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017년부터 시작되는 NAP에서 반드시 NCP의 개선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멀리 미얀마에서 한국기업의 인권문제를 알리려고 한국까지 찾아온 뚜레인씨 부터, 유엔의 수장으로서 이행원칙 이행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반기문 총장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가 한국에게 기대하고 요청하는 사항입니다.

국가인권위는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에 NCP 개선을 권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공은 한국 정부로 왔습니다. 언제까지 국제사회에서 한국 NCP가 나쁜 평가를 받아야만 할까요? 한국정부가 NCP를 잘 운영하면,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인권 침해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책임을 이행한다는 의미에서라도, 한국 NCP의 개선이 포함되고 이행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NAP가 제정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대 국회도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을 세워주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태그:#유엔, #인권기준,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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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 창립이래로 인권과 평화에 기반을 둔 국제연대 사업을 통해 해외한국기업감시 및 민주주의와 인권연대활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감시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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