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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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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엔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엔군이 지켜준 나라에서 탄생한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가 이룬 성취를 상징하는 것 같기에 그렇습니다. 2016년엔 한국은 유엔의 주요기구인 인권이사회와 경제사회이사회 의장국도 맡게 됐습니다. 이는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인권문제를 포함한 유엔의 활동들은 국내 언론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유엔은 한국사회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친숙한 국제기구입니다. 그렇지만 유엔이 기업의 인권문제도 다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의 탄생 배경

지난 2011년 6월, 유엔인권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The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Implementing the United Nations "Protect, Respect and Remedy" Framework, 이하 이행원칙)"을 통과시킵니다.

왜 유엔에서 기업의 인권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일까요? 바로 기업의 힘이 국가를 능가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민주주의와 법치가 확립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일수록 초국적기업들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부패한 정부는 초국적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해서 자국민들의 인권침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기업과 함께 인권침해의 공범이 되어왔습니다. 국제사회의 심각한 인권문제로 등장한 기업의 인권문제를 유엔차원에서 어떻게 개입 할지를 두고 1970년대부터 선진국과 개도국, 시민사회와 기업사이의 긴 논쟁이 있었고, 결국 이행원칙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행원칙은 "보호, 존중, 구제"라는 세 가지 축으로 기업의 인권문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는 기업으로 인해 발생되는 인권침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법적인 의무가 있고, 기업은 자신들의 활동으로 인해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인권실사(Due Diligence)를 실시할 인권 '존중'의 책임이 있으며, 국가와 기업은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적절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어떤 기업이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의 경제자유구역에서 공장을 운영한다고 합시다. 이 경제자유구역은 투자유치를 위해서 노조결성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노조원들을 해고했습니다. 한국 기업은 현지법에 따라 해고를 했는데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행원칙에 따르면, 한국기업은 인권존중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위로공단> 속 캄보디아 노동자 모습. 캄보디아에서 한국기업들이 저임금으로 현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위로공단> 속 캄보디아 노동자 모습. 캄보디아에서 한국기업들이 저임금으로 현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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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행원칙에서 말하는 '인권'은 유엔과 ILO 및 OECD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된 인권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무력화하는 법을 운영하는 현지국가는 물론이고, 한국기업 역시 국제사회가 인정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설령, 법적인 책임이 없더라도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심지어 한국 정부도 한국 기업이 노조파괴와 같은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 때, 인권침해 예방 교육 및 인권침해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제한과 같은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 이행원칙의 취지인 것입니다.

물론, 이행원칙에 따르지 않은 한국 기업의 책임을 촉구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 회사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행원칙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틀'과 논의의 '방향'만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엔이 방향을 정하면 결국 이 방향대로 국제사회의 규칙은 바뀌어 갑니다.

실제로 기업과 관련된 국제기구들과 국제기준들이 이행원칙에 근거하여 개정되고 신설되었으며, 유엔 회원국들도 앞으로 기업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할 때에, 이행원칙을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실효성 있게 이행원칙을 각 국가가 적용시켜 나갈 것이냐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기업에게 인권존중의 책임을 묻는 있는 시대가 다가온 것은 분명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행원칙은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에서의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기업에 의해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국가가 효과적으로 국민을 보호하고 있나요? 이행원칙이 발표된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할 뿐입니다.

그나마 이를 적극 홍보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이행'원칙'을 이행'지침'으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칙과 지침 중, 어느 것이 안 지켜도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의 방한

유엔은 이행원칙을 발표하고 이행원칙의 확산과 이행을 담당하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Working Group on the issue of human rights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 and other business enterprises, 아래 실무그룹)을 2011년에 신설했습니다. 이 실무그룹은 지역 대표성의 균형을 이룬 5명의 독립전문가로 구성되고 3년 임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실무그룹이 5월 23일부터 6월1일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분은 현재 실무그룹 의장을 맡고 있는 단테(Dante Pesce)씨와 아도(Michel K. Addo)씨입니다. 단테씨는 칠레의 저명한 사회운동가로 기업의 인권책임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며, 아도씨는 가나 출신으로 영국 엑세터(EXETER)대학교에서 국제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도씨는 작년 5월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초청으로 이미 한국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인도·우즈베크 정상 방한 환영... 이면에 숨은 진실)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방한을 알리는 트위터 사진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방한을 알리는 트위터 사진
ⓒ 유엔 최고인권대표 아시아 지역사무소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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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그룹은 국가 방문을 통해, 해당 국가의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이행원칙을 이해하고 이행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이행원칙을 이행하지 않는 사례들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고 해당 국가와 기업들에게 해당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현안이 되고 있는 노동조합 탄압, 직업병 발생, 독성 화학물질 판매, 하청 노동 문제, 해외진출 한국기업문제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에 관한 정부,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피해자들을 만납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할 실무그룹이, 약 10일간의 한국 방문 후에 어떤 내용을 인권이사회에 보고할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실무그룹의 한국방문 보고서는 한국 사회가 기업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줄 권위 있는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무그룹의 방한에 대한 기대

유엔의 활동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습니다. 인권침해, 전쟁, 기후변화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엔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인류가 공유하고 지향해야할 원칙들을 만들어 왔고, 그 원칙들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엔의 권고가 강제력을 띄는 것이 아닐지라도 각 국가들이 마냥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유엔으로 상징되는 인류의 상식과 양심의 힘 때문입니다.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무그룹의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단테 의장은 한국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력과 수출기업을 가진 국가 중의 하나이며, 주요 글로법 기업들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본국이다"고 묘사하였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아시아에선 두 국가뿐인 OECD 회원국이자, 일본과 중국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국가인권위원회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선거를 통해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금방 풀려나지만 노동자들은 단식과 고공농성을 선택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이 실무그룹이 예상했던 한국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할지도 궁금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않는 한국기업들이 수두룩한데,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인권문제는 어떻게 실무그룹이 받아들일지 암담해집니다.

제126주년 세계노동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한 유성기업지회 아산공장 조합원들이 고 한광호 열사 영정을 들고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고 한광호 열사 영정 들고 거리로 나선 유성기업 조합원 제126주년 세계노동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한 유성기업지회 아산공장 조합원들이 고 한광호 열사 영정을 들고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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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한국의 현실을 실무그룹이 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경제 살리기'나 '낙수효과' 대신에 인류가 지키기로 약속한 인권이란 기준으로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실무그룹이 방한하는 기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을 방문합니다. 막바지에 다다른 유엔사무총장 임기의 '유종의 미'를 한국방문을 통해 거두려는 것 같습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군 중 하나인 반 사무총장의 지지율도 한국 방문 이후에 더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유엔이 한국기업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방한했다는 소식은 얼마나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실무그룹의 방한에 대응해온 15개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방한 기간 동안 한국 정부와 기업의 인권문제를 실무그룹과 한국사회에 알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도 여러 문제들에 대해 기고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6월 1일로 예정된 실무그룹의 공식 기자회견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목소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유엔, #한국 기업, #인권 문제, #인권 침해,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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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 창립이래로 인권과 평화에 기반을 둔 국제연대 사업을 통해 해외한국기업감시 및 민주주의와 인권연대활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감시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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