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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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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혼 강변. 몽골 중부의 이 광활한 강변과 초지는 몽골 유목생활의 중심이다. ⓒ 노시경
넓은 국토면적에 비해 역사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몽골. 하지만 몽골제국의 옛 수도인 하르호린(Kharkhorin)은 옛 몽골제국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훌륭한 유적지이다. 나와 아내는 하르호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답사를 한 후 몽골 역사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하르호린을 뒤에 두고 우리는 몽골의 중앙에 자리한 아르항가이 아이막(Arhangai aimag)의 중심부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르호린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몽골 중북부를 시원스럽게 흐르는 오르혼 강(Orkhon gol)을 만났다. 하르호린을 관통한 오르혼 강의 물줄기는 에르덴조 사원(Erdene Zuu) 옆을 흐르는 인공수로를 통하여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하르호린 서쪽을 흐르고 있었다. 오르혼 강은 항가이(hangai) 산맥에서 발원하여 북동쪽 방향으로 흐른 후 러시아의 바이칼호로 유입되는 길이 1124km의 큰 강이다. 바이칼 호수에 잠시 머물던 이 강물은 예니세이(Enisey) 강이 되어 북극해까지 흘러 들어간다.

오르혼 강 연안을 둘러보니 광활하고 평탄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유목민들에게 식수와 함께 질 좋은 목초지, 그리고 주거지를 제공하는 강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몽골의 유목문화가 발달하고 몽골제국이 번성하였을 것이다. 오르혼 강 유역은 아시아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동서남북 교통의 중심지로서 돌궐과 위구르, 몽골 족 등 유목 민족의 거점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몽골제국의 수도 하르호린도 바로 이 오르혼 강 상류에서 일어난 도시이다.

동물들은 물 마시고, 사람들은 물놀이하고...
소풍 나온 가족. 온 가족이 함께 소풍을 나와 강변에서 즐거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노시경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는다는 이 강물은 날씨가 따뜻해지자 수량이 꽤 풍부한 강이 되어 있었다. 몽골 초원의 젖줄과 같은 강변에는 시원한 물을 마시기 위해 수많은 염소와 양들이 모여 있었다. 이 가축들은 사이 좋게 물을 나눠 마시며 이동하고 있다. 물도 풍부하고 목초지의 풀도 풍부하니 가축들이 살아가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도 없다. 가축을 가두는 울타리도 없지만 가축을 데리고 온 주인 가족들은 강변에 한가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편안한 풍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오르혼 강 연안에는 놀러 나온 가족들이 강변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다. 3대가 함께 놀러 나온 이 가족들은 몽골의 가장 좋은 계절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아예 물 속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가족들 뒤로 이들을 태우고 온 차가 보이는데 이 중 한 대가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차여서 눈길이 간다. 이 차도 한국의 여러 도로를 달렸을 것이고 이곳 몽골까지 와서 여행 온 한국사람을 만난 것이다. 나는 저 국산차가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차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원에 내리는 비. 우리가 가는 길에 갑자기 구름이 끼고 시원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노시경
아르항가이 아이막 안으로 들어서면서 우리 앞길에 갑자기 구름이 어둡게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슬비로 내리기 시작하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서 소나기로 쏟아졌고 이내 우리 차의 앞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SUV 차량 앞 유리창의 브러시가 열심히 움직이면서 빗물을 닦아내고 있다. 유리창 브러시 밖 먼 초원 끝에는 신기하게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몽골 초원을 가르는 바람은 유리창 사이로 스며들어와 '위윙'하는 소리를 계속 울린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몽골 초원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아내는 미국을 여행 중이던 딸이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딸에게 전화를 했다. 몽골의 빗속을 뚫는 차 안에서 아내가 미국에 있는 딸과 목소리 생생하게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세상이 참 놀랍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은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몽골의 바람소리에 놀라워했다.

"엄마, '윙'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무슨 소리야?"
"바람소리야, 몽골의 바람소리. 초원에 바람이 불고 있어. 바람소리 잘 들려?"
"엄마, 몽골 좋지? 거봐. 내가 꼭 가보라고 그랬잖아."

중학교 때 선생님, 친구들과 먼저 몽골 여행을 다녀온 딸은 엄마에게 몽골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천했었다. 딸 덕분에 아내도 몽골 여행에 나서게 되었는데, 딸은 엄마가 자기처럼 몽골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아내도 나무와 숲이 전개되기 시작하는 아르항가이의 풍경에 넋이 나가 구경하다가 전화를 해서 한껏 기분이 고무되어 있었다. 나는 옆에서 아내와 딸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아름다운 곳에 딸이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가 그치자 몽골 특유의 새파란 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든 푸르고 푸르고 푸른 하늘이 계속 나타났고, 비가 갠 하늘은 더욱 말끔하게 푸르렀다. 푸른 초원은 초록색과 연한 연두색의 싱그러움으로 변해 있었다. 싱그러운 초원을 보며 차가 달리니 나의 몸과 마음은 평화를 얻는다.

싱그러운 초원을 달리니 몸과 마음에 평화가...
망아지 무리. 후일 몽골의 초원을 내달릴 유목민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 노시경
초록빛 초원 위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망아지들이 줄에 매여 있었다. 우리는 눈빛이 너무나 온순해 보이는 이 망아지들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차를 멈췄다. 사람들보다 훨씬 힘이 센 말들이 줄에 매여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백색의 작은 망아지들의 순결한 모습은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우리 SUV 차량의 운전을 맡고 있는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 어린 말들이 한꺼번에 이곳에 매여 있지?"
"이 어린 말들은 어미 말들 눈에 띄는 곳에 모여있다가 각자 자기 어미 말들에게 가게 되지. 어미 말은 자기 새끼를 보면 자연적으로 젖이 더 많이 돌거든. 망아지가 어미 말의 젖을 조금 빨기 시작하면 망아지를 조심스럽게 끌어낸 후 말 주인이 어미 말의 젖을 손으로 짜기 시작하는 거야."

"어미 젖을 마음껏 빨지 못하는 망아지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아? 잠깐 반항하다가 다시 줄에 매여 온순하게 있는 망아지들이 너무 애처로운데?"
"말 젖은 모든 몽골인들의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니 어쩔 수 없어. 망아지들에게도 다시 시간을 줘서 말 젖을 먹게 해. 말 주인이 말들을 늑대로부터 보호해주고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도록 보호해 주니 말들이 주인 곁을 떠나지 않는 거야."

망아지들 뒤로 말발굽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린 기수 2명이 초원 위에서 말과 한 몸이 되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말 2마리가 달리고 있지만 땅이 울리는 소리가 초원 전체에 퍼지고 있다. 영화에서 들었던 말발굽 소리는 이곳 초원에서 들리는 웅장한 말발굽 소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어린 기수의 질주. 이 꼬마들의 말 타기 스피드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 노시경
이 어린 기수들은 매년 7월에 열리는 몽골 최대의 전통축제인 나담(Naadam) 축제에서 벌어지는 말 달리기 시합을 연습하고 있는 어린이들이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들이 자유자재로 말을 잘 타는데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은 도저히 꼬마 기수들이 모는 말의 스피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내 눈앞을 지나간다. 몸이 가벼운 어린 기수들을 태운 말은 내가 사진 찍는 속도를 비웃으며 벌써 저 멀리로 멀어져 간다. 말과 어린 기수는 푸른 하늘과 맞닿은 초원 너머로 사라져 갔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쳉헤르(Tsenkher)로 향했다. 쳉헤르가 가까워지자 눈앞에 드디어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표지판도 없는 길이기에 운전만 잘 한다고 통과할 수 없는 길이다. 길을 잘 아는 몽골 기사들도 항상 길가에서 현지 게르 주인들에게 길을 묻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의 비포장 도로는 비로 인해 개울 물이 불어나면 길이 없어지기도 한다. 내 친구 몽골 기사도 개울을 만나자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개울 물이 가장 얕은 곳을 찾아 다닌다. 이 개울을 건너면 쳉헤르로 가는 지름길이 연결된다.
초원의 개울. 비가 많이 오면 개울이 넘쳐서 차를 타고 건너기 어려워진다. ⓒ 노시경
숲으로 가는 길. 초원이 사라지고 깊은 숲 속으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 노시경
우리 차는 수심이 가장 얕은 여울목에서 개울 물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 자갈 위에서 기우뚱거리며 물을 건넌다. 개울 건너편에 도착하자 물을 먹은 차가 마치 기침을 하듯이 캑캑거리며 물을 토해낸다.

개울을 건넌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개울가에서 쉬면서 가끔 다른 차가 개울을 건너는 모습을 보니 몽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오프로드 스포츠의 한 장면이다. 나와 아내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발을 개울 물에 담그고 쉬었다. 발가락 사이로 개울에 쌓인 진흙이 파고 들어오면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차를 타고 지나쳤으면 모를 몽골 초원의 싱그러움을 발로 느껴본다.

다시 시동을 건 차는 영화 속 초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개울을 건너자 끝없는 초원지대는 사라지고 깊은 숲이 우거진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몽골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아르항가이 일대의 삼림 지역이 펼쳐졌다. 그리고 몽골에서 귀하게 볼 수 있다는 노란 꽃, 빨간 꽃이 조용한 풀밭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솔개 무리. 솔개들이 굴 밖으로 나온 땅다람쥐 조름을 잡기 위해 하늘을 선회하고 있다. ⓒ 노시경
아르항가이라는 이름 중 '항가이'는 숲이 많은 지역을 말한다. 왜 이 지역 이름에 '항가이'가 붙었는지는 직접 와보니 바로 이해가 된다. 넓게 펼쳐지는 '항가이' 안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잘 펼쳐진 숲 속의 길을 따라서, 혹은 숲 속에 길을 만들면서 우리 차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우리 차가 숲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우리 차는 머리를 들이밀고 숲 속을 구경하고 있었다.

풀밭 우거진 구릉을 지나자 잣나무 울창한 숲이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놀랍게도 수십 마리의 거대한 솔개 떼가 운무를 헤치며 천천히 선회비행을 하고 있다. 솔개 떼의 낮은 비행은 아름다우면서도 조용하다. 솔개들은 마치 하늘이 자신들의 독차지인 양 하늘을 장악하고 있다. 솔개가 이토록 많은 이유는 솔개의 먹이가 되는 땅다람쥐, 조름이 이 구릉지대와 숲 속에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개의 저공비행.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땅을 응시하고 있다. ⓒ 노시경
땅다람쥐 조름. 조름이 굴 밖의 세상을 관찰하다가 다시 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 노시경
하늘에 뜬 솔개가 마치 정지비행 하듯이 멈춰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이다. 놀라운 스피드로 하늘을 향해 치고 올라간 솔개는 다시 저공비행을 하며 먹잇감을 찾고 있다. 사람보다 수십 배나 시력이 좋은 솔개는 넓은 면적을 빠른 속도로 스캔하고 있다. 굴 밖으로 나온 조름이 잠시라도 방심하며 초원 위에 머무른다면 망원 렌즈 같은 솔개의 눈에 걸려 바로 사냥감이 될 것이다. 솔개는 날개를 기울인 채로 낮게 떠서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지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릉 지대에는 조름의 집인 작은 구멍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마침 우리가 가는 차 밖으로 땅다람쥐, 조름이 앞발을 들고 서서 우리를 쳐다본다. 설치류이지만 참 귀엽게 생겼다. 이 녀석은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넓은 초원에 오랫동안 나와있으면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이 조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름은 하늘을 뒤덮은 솔개들을 보더니 이내 뛰어서 자기 굴로 들어간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잘 순환되고 있는 몽골의 생태계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내 마음 속은 풍성한 자연의 보고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차는 몽골의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섰다. 서늘한 바람이 숲 속을 흐르고 있었다. 작은 새들이 전나무 가지 위에서 울고 있었다. '소리개'라는 이름답게 솔개가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다. 마치 말소리같이 들리는 솔개의 울음 소리가 계속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오르혼강, #아르항가이,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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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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