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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휴식이다. 주 6일의 노동 후 맞는 휴식. 꿀같다. 좀 더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전날 셰어마스터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호주의 인터넷 환경은 웹서핑 용도로만 쓸만하다. 한국처럼 온라인 게임을 한다든지 동영상 시청을 맘껏 하기에는 별로다. 속도도 느리고 끊길 때도 많다.

게다가 데이터가 유료이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없다면 데이터는 금방 소진된다. 그나마 와이파이 존이 시드니 전역에 깔린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빠름의 미학'을 즐기는 우리에 비해 호주는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 부유층일수록 도시와 멀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산다. 그만큼 조용하고 한적함을 즐긴다고 할까. 해변가를 따라 지어진 집은 대부분 가격이 비싸다. 몇 평 안돼 보이지만 장소와 한적함이 공간을 대신한다고. 시티에서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왜 지하철이 없냐고 묻자 친구가 말했다.

"지하철 들어오는 것도 반대했어. 들어오면 복잡해진다고."

조금 불편해도 조용함을 택하는 느낌이다. 초고속 인터넷도 마찬가지. 물론 돈이 많이 든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초고속 인터넷이 없더라도 할 것이 많다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트레인이나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과는 다르다.

워홀러들의 무덤?

스트라스필드 기차역.
 스트라스필드 기차역.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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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침대와 붙어 있는 나를 깨우는 건 휴대전화 진동. 친구다.

"뭐하냐?"
"그냥 있지."
"나와 밥 사줄게."

밥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침대는 들러붙은 껌딱지를 흔들어 뗀다. 샤워부스로 들어가 몸을 씻는다. 날씨가 화창하다. 발걸음은 경쾌하다. 쉬는 날, 친구를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친구를 보기로 한 곳은 스트라스필드.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다. 워낙 '악명'을 많이 들었던 곳이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워홀러들의 집결지라는 이곳은 다른 말로 워홀러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스트라스필드 가면 한인들과 놀기 밖에 더해?"

현재 사는 집을 물려준 친구의 말.

"호주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한인이야."

내심 스트라스필드의 전경이 궁금했던 차였다.

버스가 우선입니다

버스를 타기 전 커피를 구입했다. 이곳에서 커피는 주식과 같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아메리카노'는 이곳에서 '롱 블랙'으로 불린다. 후덕해진 지갑이 '아이스 롱 블랙'을 선물한다. 버스를 타고 시티로 이동한다. 페리만 타다가 처음으로 타본 버스. 커다란 창문 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 곳곳에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발갈라는 부촌으로 유명하다. 바다에 요트가 정박해 있다.
▲ 창문으로 바라본 바다 발갈라는 부촌으로 유명하다. 바다에 요트가 정박해 있다.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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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느끼며 바깥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했다.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급정거를 한 모양. 버스기사는 승객들을 안심시키더니 앞차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버스는 도로에서 존중받는 교통수단이다. 버스가 먼저 양보를 받고 전용 차선도 존재한다. 이곳에서 운전을 하겠다고 하자 셰어마스터가 말했다.

"버스 조심해요. 버스랑 부딪치면 진짜 큰일나요. 웬만한 경우는 버스가 다 이겨요."

도로가 좁고 버스의 회전 반경도 커 옆에 붙어가는 것도 부담. 회전을 하는 경우에는 버스에 붙어 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런 버스 앞에 끼어들다니. 한참을 이야기하던 버스기사는 별 것 아니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운전대에 앉는다. 다시 버스는 출발한다.

한인들의 집결지, 스트라스필드

친구를 만났다. 교통비 9호주달러가 빠져나간다. 호주는 거리 비례로 요금을 낸다. 고정된 요금인 우리나라에 비해 비싼 편이다.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일 수 있지만 대중교통만 이용하기에는 다소 비싼 느낌이 든다.

"그래도 8번 대중교통 카드(오팔)를 찍으면 그 주에는 어딜가든 공짜니까."

대중교통비가 비싸다고 투덜대자 3년째 호주에 거주하는 친구가 말했다. 그는 이 제도를 이용해 먼 거리를 이동했다고 한다. 어차피 무료니까.

스트라스필드에 내렸다. 이곳은 작은 한국이다. 곳곳에 한글 간판이 보인다. 왜 이곳에 한국인이 많이 살까?

"학군 좋고 교통 편리하고. 한국인들은 그게 중요하잖아. 그러니까 이곳에 사는 거지."

호주인들은 학군이나 교통보다는 편히 휴식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는 교육과 출퇴근을 고려해 집을 고른다면 호주인들은 휴식과 여유를 고려한다고 할까. 씁쓸하다.
한인식당을 찾았다. 간만에 신당동 떡볶이를 시켰다. 2인분에 28호주달러. 떡볶이를 대략 한화 3만 원 주고 먹는 셈이다. 그래도 한국의 정취를 간만에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값을 지불한다. 여기에 소주 2병까지. 여기서 소주 가격은 10불에서 15불 사이. 물 건너온 양주(?)이기 때문이다.

노스시드니에서 몰디브 한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다시 일어선다. 오늘은 한국에 귀국하는 친구와 이곳에서 영주권을 준비하는 또다른 친구를 함께 만나기로 했다. 그 친구는 노스시드니에 산다. 집을 렌트했다. 이곳에서 집을 렌트한다는 것은 최소 학생비자란 의미이기도 하다. 학생비자가 아니면 렌트할 수 없다. 비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걸린다. 론(loan)이며 부동산이며 워홀러보다는 학생비자가 낫다. 비자 기간만큼 렌트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양한 와인이 있다. 20불이면 괜찮은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
▲ 바틀샵 다양한 와인이 있다. 20불이면 괜찮은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
ⓒ 백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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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 바틀샵(Bottle Shop)에서 와인 좀 사와."

호주에서 술은 지정된 바틀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일반 슈퍼나 편의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술을 판매하는 절차가 꽤 까다로운 과정이라 간혹 음식점에서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BYO'라고 해 술을 들고와 컵값을 내고 마시는 방법이 있다. 허가가 나지 않은 집에서는 주로 쓰는 방법. 노스시드니의 친구집으로 가면서 바틀샵에 들렸다. 각종 술이 즐비하다. 특히 와인이 많다. 20호주달러면 꽤 괜찮은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친구 집으로 가니 여자친구와 함께 있다. 그도 서류상 결혼한 상태. 한국에서부터 사귄 오래된 연인이다. 비자 문제도 있고 결혼할 생각이어서 겸사겸사 서류상 먼저 결혼했다고. 이곳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비자가 묶이게 된다. 영주권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면 영주권자의 비자로 묶이게 되는 것. 간혹 영주권을 원하는 한인들이 영주권자와 결혼해 영주권을 획득하는 것을 두고 이곳 한인들은 '대박'이라 칭한다.

요리를 하는 친구라 여러 음식들이 즐비하다. 호주에서 자주 먹는 살몬(연어)을 이용한 샐러드. 고가의 고기로 통하는 '와규'까지. 입이 호사를 누린다. 절정은 직접 만든 모히또. 진한 향과 술에 밤이 무르익어 간다. 그렇게 한국으로 가는 친구와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워홀러, #모히또,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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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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