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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하루 전.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점심식사. 비록 몇 개월 안 됐지만 같은 동료였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다. 내 상사였던 슈퍼바이저 형들이 나왔다. 가기 전이라고 밥 한 끼 얻어먹는다.

"이 자식이 말이야. 일을 참 더럽게 못 했어!"
"아, 형!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요."
"잘해야지 임마!"


일하며 못했던 말들로 빼곡히 채운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간다. 일에 대한 아쉬움과 에피소드가 식당을 메운다. 한 사람은 회사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대우가 더 좋다고.

"진짜 다 정리하고 들어가려고 했어. 돈을 벌어도 영주권은 요원하고."

30살. 불안하다. 호주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둥둥 떠돌 것 같은 느낌. 한국이든 호주든 선택의 때가 왔었다. 그를 구해준 게 지금의 회사라고.

"학비도 대주고. 일도 예전보다 더 좋은 걸 주더라고. 한 번 더 해보게."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 이번 기회가 사그라지면 한국과 호주에서 표표히 떠다니게 될지 모른다.

"잘 될 거예요. 형."

잘 되길 바라며 다시 짠.

"나도 이제 다른 곳에서 일하니까. 비자만 해결되면 좋겠네."

457비자(호주에서 영주권을 받기 위해 거치는 비자 종류 중 하나)를 바라며 식당으로 잡을 옮기 또 한 사람이 말한다. 그는 이제 비자 심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형이야 똑 부러지게 하니까요."

다시 짠. 빈 술잔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고, 밝은 앞날을 바란다.

24시간 팬케이크 집을 가다

팬케이크 집은 록스에 있다. 서큘러 키에서 가깝다. 꽤 유명한 곳이라고.
 팬케이크 집은 록스에 있다. 서큘러 키에서 가깝다. 꽤 유명한 곳이라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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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낮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눈을 붙이니 어느새 오후 11시. 같이 저녁을 먹자던 룸메이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한다.

"얼마나 마신 거냐."

낮술로 소주 5병을 마셨다. 남자 세 명이 먹었지만 낮은 역시... 두 손 모아 사과 한다. 그때 걸려온 전화. 셰어마스터다.

"나가자."
"어딜요?"
"마지막인데 팬케이크 먹으러 가게."


나른해진 몸으로 격렬하게 저항해보지만 등짝 스메쉬에 일어난다. 투덜거리며 옷을 입고 나온다. 집 앞에는 미리 불러놓은 픽업차가 있다.

"네. 금방 가겠습니다."

팬케이크 집에 가면서 전화가 걸려온다. 한인이 운영하는 픽업차 업체가 수십 개라고. 그런데도 수요가 꾸준히 있다. 어떤 수요가 가장 클까.

"대부분은 출퇴근으로 쓰이죠."
여기서 출퇴근은 룸살롱과 같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무료로 그들을 출퇴근시키는 대신 술을 마시고 집에 가야하는 손님들을 이 업체들에 소개해준다. 일종의 상부상조.

"차가 모자랄 때는 다른 업체에게 토스하기도 해요. 우리가 받기도 하고요."

그는 가는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팬케이크 집은 록스에 있다. 서큘러 키에서 가깝다. 꽤 유명한 곳이라고. 팬케이크와 등갈비 맛이 좋다고 한다. 자리 잡고 앉는다. 꽤 사람이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을 처음 본다. 지금껏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봤지만 주유소나 휘트니스 클럽을 제외하곤 처음이다.

"팬케이크랑 립스 주세요."

주문을 하고 먹는다. 팬케이크는 맛있다. 적절한 시럽과 아이스크림까지. 식사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달콤하다. 밀가루 맛이 많이 나 팬케이크를 즐기지 않았지만 이곳은 예외다. 립스는 생각보다 별로. 질기다. 돼지고기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식당 내부는 나무로 꾸며져 있다. 꽤 오래된 건물인 듯 벽 한쪽에 역사가 기입돼 있었다. 출입문은 앞, 뒤로 있다. 앞으로 가면 도로가 나오고 뒤로 가면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이 나온다.

"유람선이 여기 오면 꽤 머물잖아. 그때 나와서 먹고 가는 곳이야."

귀국하다

즐겁게 먹고 잠시 눈을 붙인다. 어느덧 갈 시간이다. 짐을 싸고 나온다. 마지막이라고 생필품을 채워줬다. 샴푸며 고양이들 간식이며. 같이 시간을 보낸 고양이들과 작별을 한다.

"몸조심하고 한국에서 보자 아들아."

같이 동거동락했던 아버지가 악수하며 말한다. 한인들의 정이란. 세어마스터가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며 같이 나선다.

타운홀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룸메이트, 세어마스터와 함께 하는 시드니에서의 식사.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곳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시드니를 한껏 담는다. 공항에 도착했다.

"무게 초과네요."

아뿔싸. 짐을 너무 많이 담았다. 10kg이 넘었다. 재빨리 짐 정리를 다시 한다. 손에 들고 갈 것들이 늘었다. 세어마스터가 투덜거린다.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손 가는데."

아쉬움이 가득하다. 꾸벅 인사를 하고 게이트를 넘었다. 시드니의 밤은 아름답다. 수놓아진 것 같은 불빛. 이륙하는 비행기 속에서 잠을 청했다.

비선 실세 농단이 한창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던 시기. 역사와 함께 돌아간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현실이 됐다. 그렇게 귀국했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태그:#호주, #시드니, #귀국, #공항,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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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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