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대 투표를 '제대로' 독려하기 위한, 윤리적·정치적·경제적 태도

저는 이제까지 네 번의 선거(2010 지방선거, 2012 총선, 2012 대선, 2014 지방선거)를 치렀고 지난 9일 20대 총선 사전투표를 치른 청년입니다. 대학 4학년이고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삽니다. 사전투표는 9일로 끝났고 4월 13일 본 투표가 있으니 아직 투표 못 하신 시민들께서는 13일에 주소지 관할 투표소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내 투표소 찾기 클릭)

사실 저는 최근까지도 투표를 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요. 결국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투표해야할 이유를 찾았고 투표를 했습니다. 사전투표소에 저와 같은 청년들이 많이 줄을 섰습니다. '20대는 정치 무관심층'이라는 속설이 저는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평소 꺼내기 힘들었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볼까 합니다.

바로 20대 투표를 '제대로' 독려하기 위한 윤리적·정치적·경제적 태도에 대한 팁입니다. 저는 20대가 '정치 무관심층'이 아니라 '정치 고립계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고립을 풀려면 기성세대가 20대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시고 태도를 조금만 바꿔주시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20대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20대의 펀치.
▲ 투표 인증샷 20대의 펀치.
ⓒ 하지율

관련사진보기


[윤리적 태도] 20대 투표율이 높든 낮든, 동등한 인격체란 걸 '인정'해주세요

처음에는 인터넷에 속상한 괴담들이 떠돌아 투표를 하기가 싫었습니다. 가장 먼저 접한 괴담은, '프랑스 대학생은 투표를 많이 해서 등록금이 싼데 한국 대학생은 투표를 안 하니 정치인들이 신경을 써주겠느냐'는 훈계였습니다. 기분이 불편했습니다. 프랑스든 한국이든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학생 투표율 통계'를 조사할리는 만무합니다.

비록 '대학생=청년'이라고 착각이 있었을 망정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 대한 지적이라면 취지는 알겠더군요. 하지만 유럽 정치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투표가 세상을 극적으로 바꿀 것인냥 주장하는 게 역사적 진실에 비해 과장이란 걸 알 겁니다(물론 영국 상류층이 투표로 왕을 사형시키는 등 '드문 사례'는 있습니다). 프랑스가 등록금이 낮은 이유는 투표보다도 전통적으로 시민들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여차하면 거리로 뛰쳐나오는데 감히 대학을 영리화시키기 힘들죠. 요즘 프랑스인들은 '쉬운 해고 정책'에 반대해 광장을 점거 중입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투표라는 '하나의 길'만을 잣대삼아 훈계하는 건 '상당한 실례'가 됩니다. 청년 운동이 어려운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는 청년들도 꽤 있답니다.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청년이 투표도 시위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 아니냐?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안 하는지, 아니 '못 하는지'도 아셔야 합니다.

대학동 월세 큐브들입니다. 여기 청년들 많이 삽니다.
▲ 월세 큐브 대학동 월세 큐브들입니다. 여기 청년들 많이 삽니다.
ⓒ 하지율

관련사진보기


청년은 청년이기 이전에 청소년이었습니다. 청소년의 기억에는 '정치'는 거의 자리를 잡지 못 합니다. 늘 챗바퀴처럼 집과 학교를 오가기 바쁘고 주입식 교육을 받습니다. <사회> <정치> <윤리와 사상> <한국사> 이런 과목들에서 배울 수 있는 '민주주의'의 내용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한국사>가 역사적 경험이 담겨있지만 입시 경쟁을 닦달 받는 학생들의 당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한국사>도 곧 국정화 되겠죠?).

입시 경쟁을 묵인하거나 부추기는 건 물론 기성세대고요. 이렇게 한국의 대부분의 청소년은 정치적 잠재력을 부지불식 간에 제거 당합니다. 프랑스? 독일? 중등교육 당시 철학, 정치, 성인지 교육을 받으며 질문과 토론이 자유롭고, 자기 생각을 가진 다음 그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전략도 배우는 친구들입니다. 노사 협상 전략이나 시위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경험이 없는 한국 청년에게 어느날 갑자기 선거권 연령이 됐다고 무조건 '시민의 참여' 운운하며 투표를 하라고 훈계하는 건 꽤나 뒷통수가 얼얼한 일이랍니다. 시민의 자율성을 요구하기 전에(투표가 무조건적 의무라면 그게 자율인지도 논란이지만요) 자율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 어른들이 훈계 할 만한 일은 아닌 거죠. 오히려 미안해하고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저만 공감하는 건 아닌듯 합니다.

최근 <경향신문>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점집단면접을 실시했는데, 청년들이 더 나은 사회의 조건으로 '청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는 복지 시스템'을 꼽았다고 합니다(관련 기사: "노력만큼 알아달라".. 불평등에 지친 청년에게 필요한 건 '인정'). 결국 청년이 성장해온 맥락을 인정하지 않고, 훈계부터 하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못 합니다.

[정치적 태도] 선출직공무원은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서울 관학구 대학동 사전투표소 안내판.
 서울 관학구 대학동 사전투표소 안내판.
ⓒ 하지율

관련사진보기


청년의 성장 맥락을 만약 선출직공무원이 무시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이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나쁩니다. 투표 얼마 전에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에서 2011년에 종영한 '프레지던트'를 패러디해 제작한 홍보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홍종학 의원이 청년들에게 "국회의원은 그냥 국민이 아니라 투표하는 국민이 만드는 겁니다. 표도 주지 않는 국민을 위해서 정치인들이 발로 뛸 이유가 있겠습니까?"라고 훈계하는 내용입니다(관련 기사: 더불어민주당의 '20대 개새끼론'이 이상한 이유).

홍 의원은 청년 실업은 청년이 만든 것이라며 "권리 위에 잠자는 사자는 보호받지 못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무책임합니다. 청년의 성장 맥락을 무시한 채 자율적 주체 역할을 하라고 훈계할 뿐더러, 홍 의원 자신이 바로 '청년이 자율적 주체로 설 수 있는 조건' 자체를 이미 마련했어야할 책임이 있는 선출직 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건 '표를 준 국민'일지 모르지만, 당선된 의원은 국민 일반을 위해 존재합니다. 유권자와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시비를 가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훈계는 지양해야 합니다. '의정활동 중 어떤 어려움 때문에 교육과 청년 복지 문제를 많이 챙기지 못 해 미안하고, 앞으로 더민주가 이러저러한 대안을 추진해볼테니 한 번 믿고 지지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렇게 말해도 표를 줄까말까입니다.

4월 9일 사전투표소에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선 청년들.
 4월 9일 사전투표소에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선 청년들.
ⓒ 하지율

관련사진보기


저는 야권 지지층이고 더민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을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지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저조차도 잠시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20대 개새끼론'은 불쾌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멸감을 감내하면서까지 후보를 국회에 밀어넣은들 앞으로도 자신들의 게으른 잣대대로 청년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투표 직전까지도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 굳게 닫힌 문을 다시 두드린 건 정의당과 원외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지인들이었습니다. 언론에서 잘 보도도 안 해주고 스피커가 작아서 관심도 못 받는 그런 정당의 당원들, 그런데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이상을 지켜온 그런 '바보'들 말입니다. 어차피 선거철 정당 공약들은 다 화려해도 정작 그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당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바보들은 관심도 못 받는데 꾸준하게 정책 토론을 하고, 집회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진정성'에 괜시리 마음이 짠 해져 결국 사전투표소로 나갔습니다. 제가 사는 대학동은 청년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근처에 서울대가 있고 무엇보다도 '고시촌'이라고 해서 고시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전투표소에 와보니 반갑게도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사전투표는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외지에 나와있는 청년들에게는 참 편리한 제도입니다. 청년들이 투표하러 나온 계기는 각각 다를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훈계' 받고 대오각성해 나오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 봅니다. 저는 투표해야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냈고 한 표는 현실에, 한 표는 이상에 투표했답니다.

[경제적 태도] '투표하고 뭐 사먹었다'는 인증샷이 훈계보다 백배 낫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에 따르면, 사람들은 '훈계'의 대상이 되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캠페인에 시민들을 참여시키려면 '시민의 의무'를 강조하며 명령하는 것보다, '넛지'라는 섬세한 설득의 기술을 쓰는 게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개입',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20대 개새끼론' 같은 훈계는 윤리적으로도 옳지 못 하며, 정치적으로도 나쁜 대화 방법이며, 경제학적으로도 비효율적인 접근입니다. 투표를 하고 하숙집에 올라가는 길에 까치분식에서 떡볶이를 사먹었습니다. 페이스북에 '다음 선거 때는 좀 더 맛있는 거 사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투표 인증샷과 분식집 사진을 올렸더니, 평소보다 많은 '좋아요'를 받았답니다. 넛지가 먹혀들었을까요?

어차피 정치란 게 꿈을 실현시키는 과정이라면, 꿈꾸는 본성을 가진 인간은 '정치 무관심층'일 수 없습니다. 단지 남의 꿈이 아닌 자신의 꿈을 꿔볼 기회가 없었던 '정치 고립계층' 만이 있는 게 아닐까요?


태그:#총선, #투표, #선거, #4.13 총선, #사전선거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