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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조, 하윤정(노동당) 선거운동본부, 에볼라 의사 정상훈이 함께 마포지역의 야간알바노동자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야간알바노동자의 건강 실태조사 알바노조, 하윤정(노동당) 선거운동본부, 에볼라 의사 정상훈이 함께 마포지역의 야간알바노동자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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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알바노조와 '에볼라 의사'로 잘 알려진 국경없는의사회의 정상훈, 그리고 마포을에 출마한 알바들의 대변인 노동당 하윤정 선거운동본부가 야간 알바노동자를 만났다. 일명 '과로사회' 프로젝트. 이번 총선에서 야간노동을 하는 알바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실태조사다. 주로 수면장애와 우울지수를 체크한다.

내가 맡은 일은 서울 마포 망원역 인근의 야간사업장들을 방문해, 그 시간대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간단한 건강 관련 설문조사를 받아 오는 일이었다. 전날만 해도 이 시간에 학교 친구들과 술을 마셨는데, 이런 일로 술집들과 편의점들을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었기에 긴장되는 마음으로 설문조사 용지를 받아들었다. 새벽 2시의 망원역은 한산했다. 불이 켜진 야간 사업장들은 밤바다에 떠다니는 고기잡이 배마냥 드문드문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처음 방문한 몇 곳은 바쁘다며 설문조사를 거부했다. 말투가 문제인지, 노동당 점퍼가 너무 부담스러운지 걱정하며 한산해 보이는 한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재고를 채우던 알바노동자는 잠깐 시간을 내어 설문조사를 해주었다.

그는 특별히 건강이 나쁘지는 않다고 하며 빠른 속도로 항목들에 체크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신체적으로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물으니 그는 야간에 일해서 아프지는 않는데 취업이 안 되어서 아프다고 했다. 또다시 말문이 막혀 혹시 어디가 아프시냐고 물으니 그냥 취업이 안 되니까 몸이 안 좋다고만 대답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세 살 더 많아 보였다.

설문조사에 "취업이 되지 않아서 몸이 아픈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문항은 없었다. 병원에 가도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라는 진단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몸의 병에는 쉽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의 건강은 '만성 피로', '과로' 등의 증상으로 진단될 것이다.

그렇지만 증상의 진정한 원인인 사회의 병에는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 청년이 힘든 것은 이 사회의 병이다.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어디가 아프시냐고만 묻는 의사가 아니라, 왜 아프시냐고 묻는 사람이다. 왜 우리가 아파야만 하는지를 물을 준비가 되어 있고, 더 많은 삶들을 포함하는 우리의 정치가 필요하다.

한 알바노동자가 힘내라며 커피를 주었다.
▲ 응원의 커피 한 알바노동자가 힘내라며 커피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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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이 있었다. 설문조사가 야간노동자들의 건강상태에 관한 것이라고 하자, 그는 넉살 좋은 말투로 밤에 일하면 당연히 건강이 안 좋을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설문조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이런저런 말을 했다. 잠이 오지 않고, 다리가 아프고, 또 어디가 좋지 않고... 뒷면의 문항들에 체크하면서 그는 말이 없었다. 정신상태와 감정에 대한 문항들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항이 있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정신 상담을 받고 싶다고 썼다.

편의점에서 짧게 마주치며 본 삶의 모습들은 참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해맑게 웃으면서 아픈 곳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눈이 감기고 있는데 문제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공부를 하던 사람도, 핸드폰 게임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다들 새벽의 카운터 뒤에 서서 자신의 방식대로 '과로사회'를 살아나가고 있었다.

건강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바로 그렇게 묻는 '관계'라는 것이었다. 어제만 해도 나는 '갑'의 입장으로 학교 정문 앞의 술집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고, 손짓 하나면 메뉴판이든 음식이든 원하는 것이 대령되었다. 물론 나는 그 대가로 나가면서 돈을 냈다.

지금 우리의 삶은 그런 모습인 것 같다. 돈과 돈으로 연결되어, 어디에서는 돈을 가졌기 때문에 갑이 되고 필연적으로 어디에서는 돈 때문에 을이 된다. 손님으로 찾아갔더라면 나와 어제 만난 그들의 관계 또한 돈으로 묶인 갑과 을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만큼은, 비록 거절 당하고 쫓겨난 곳이 태반이었지만 잠시나마 그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을'과 또 한 명의 '을'로서 만날 수 있었다.

알바노조, 그리고 이번에 마포에 출마한 알바들의 대변인 하윤정이 그런 관계들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갑과 을이 아닌 을과 을의 관계들을 만들고, 밤과 낮을 지키는 노동자들을 만나 갔으면 한다.

저 하늘에 있는 의회, 그러니까 '갑'의 정당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을'로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 나가는 다른 '을'들을 만나길 바란다. 그렇게 을들의 관계를 견고히 쌓아 나가 언젠가는 세상의 '갑을'을 깨트릴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 길에 나도 한 걸음의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번 총선에서 도대체 누가 야간알바노동자의 눈치를 보며 선거를 할까? 이걸 기준으로 한 번 투표여부를 결정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희수 알바노조 조합원이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알바노조, #노동당, #하윤정, #야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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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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