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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매년 1회 이상 총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15조 제1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현장 운영위원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제작했다. 어느 조합원이 직접 정한 문구를 천에 쓰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현장 운영위원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제작했다. 어느 조합원이 직접 정한 문구를 천에 쓰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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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장 광운대가 시중노임단가 적용하라."

페인트를 묻힌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천에 써내려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현장 운영위원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제작했다.

현수막을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재료들부터 손수 준비해야 했다. 재료를 다 준비해도, 만드는 건 더 어려웠다. 우선 조합원들은 직접 정한 문구를 천에 썼다. 천 끝에 각목도 설치했다. 주워온 각목에 박힌 못을 빼는 것도 물론 청소노동자들의 몫이었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조금씩 거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현수막을 제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짐이었다. 옆에서 재료를 드는 게 전부였다. 모든 작업을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현장 운영위원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제작했다. 한 조합원이 천 끝에 각목을 설치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현장 운영위원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제작했다. 한 조합원이 천 끝에 각목을 설치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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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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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새벽 청소를 마친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학교 측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현수막'을 대학 교정에 설치했다. 설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높은 곳에 설치할 때는 사다리까지 필요했다. 한 조합원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현수막을 고정할 줄을 나무에 동여맸다. 다른 조합원들은 밑에서 사다리를 붙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현수막을 만들 때나 설치할 때 모두 조합원들의 장갑은 검게 변했다. 현수막 하나하나에 조합원들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현수막이란 게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이 깃든 것이다.

현수막이 교정 곳곳에 걸려 있다. 조합원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현수막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펄럭였다. 그때 바람에 휘날리는 문구 한 구절 한 구절이 광운대 구성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순간마다 광운대 구성원들은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는지.

졸업식, 야외 총회를 열다

"엄마, 이 건물이 제가 공부한 곳이에요."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만든 현수막 주변을 어느 졸업생이 가족들과 함께 지나간다. 교정을 둘러보는 듯싶었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 주변에 자리를 맡아둔 상인들이 꽃다발을 팔고 있다. 졸업생들 사이를 서성이는 사진사들도 눈에 띈다. 기상천외한 졸업 축하 현수막이 학교 곳곳에 걸려 있다.

"하나, 둘, 셋!"

졸업생들은 정든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을 기념 촬영으로 대신했다. 선배들의 졸업 축하 현수막을 들고 있는 후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졸업식 풍경을 담으려는 방송사 카메라도 있다. 학교는 점점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난 2월 23일 광운대학교의 졸업식 풍경이다.

"광운대학교 2015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신 졸업생 여러분의 영광스런 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2015학년 전기 학위수여식 훈사 중 일부)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관에서 2015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이 시작됐다. 같은 시간,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 앞 계단에서 총회를 개최했다. 그야말로 야외 총회였다. 광운대분회가 야외 총회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빨간 조끼를 외투 위에 덧입은 상태였다. 조끼에 적힌 문구들이 인상적이다.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 "원청이 책임지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최저임금 대폭 인상! 생활임금 쟁취!" 조끼가 청소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대자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야외 총회를 하고 있다. 최수연 분회장이 서경지부 임금협약의 교섭진행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야외 총회를 하고 있다. 최수연 분회장이 서경지부 임금협약의 교섭진행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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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가 시작됐다. 고민자 조합원이 총회 진행을 맡았다. 고 조합원은 정해진 식순에 맞춰 총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육성으로는 총회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학교 안이 졸업식 행사로 시끌벅적했기 때문이다. 확성기로 총회를 이어갔다.

최수연 분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현재 서경지부 임금협약의 교섭진행 상황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했다. 광운대분회가 속한 서경지부는 단체교섭의 결렬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신청한 상태였다. 파업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확성기로 최 분회장의 음성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의 벽에 막혀 뒤로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제대로 듣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최 분회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학사복을 입은 졸업생들도 총회 주변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조두환 서경지부 부지부장(고려대분회 주차직 대표)이 연대를 왔다. 광운대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씨도 재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총회에 함께했다. 확성기로 연대 발언을 했다. 먼저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게 어떻겠냐고 청소노동자들에게 제안했다. 이 씨가 "졸업을"이라고 선창하자,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동시에 "축하합니다"라고 소리쳤다. 곧이어 주변의 졸업생들로부터 "감사합니다.란 답변이 들려왔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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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학위수여식이 진행되는 동해문화예술관으로 갔다. 비마관에서 동해문화예술관으로 가는 길은 꽉 막힌 상태였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홍해의 기적'을 보듯 청소노동자들이 지나가는 자리가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인파 사이를 지나갔다. 그사이 졸업식 참석자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눈여겨봤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학위수여식이 진행 중인 동해문화예술관 앞에서 선전전으로 총회를 마무리했다.

입학식,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서 있는 바로 앞 건물(동해문화예술관)에서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펄럭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서 있는 바로 앞 건물(동해문화예술관)에서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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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기적을 만드는 '나비효과=광운효과'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해문화예술관에 현수막이 펄럭인다.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동해문화예술관으로 들어간다. 오늘(지난 3월 2일) 입학식 행사에 참석하는 신입생들이다. 따뜻한 봄볕은커녕 차가운 겨울바람이 신입생들을 맞이한다. 신입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시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졸업식 때처럼 대자보가 적힌 조끼를 입은 청소노동자들이 또 눈에 띈다. 대자보가 전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빨간 조끼에 쓰인 글에 궁금한 듯 눈길을 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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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의 손에는 팻말이 들려 있다.

"진짜 사장 원청 우리 문제 해결하라!"
"임금 동결 웬말이냐. 생활임금 보장하라."
"진짜 사장 광운대가 시중노임단가 적용하라."
"최저임금 8.1% 인상인데, 청소노동자 임금 동결하라구?"
"밑바닥 노동자들 고용승계 보장하라."

청소노동자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팻말로 표현한 것이다. 팻말의 문구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청소노동자들은 입학식장에 들어가는 신입생들에게 "입학을 축하한다"라고 인사했다. 어디서인가 "힘내세요"란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저게 사실이야?"라면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신입생도 눈에 들어왔다. 팻말에 적힌 문장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학생들도 있다. 길을 지나가는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춘 채 팻말의 문구들을 바라본다.

학생들은 입학식 장소인 동해문화예술관으로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업을 들으려고 강의실로 가는 한 재학생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양복을 입은 광운대 교직원이 청소노동자들 주변에 서 있다. 팻말을 들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사이로 갑자기 광운대 총장과 각 단과대 학장들이 지나간다.

청소노동자들이 팻말을 들은 이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진짜 사장 원청 우리 문제 해결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한 조합원이 "진짜 사장 원청 우리 문제 해결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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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일한 사람이랑 이제 갓 들어온 사람이랑 임금이 같아요. 우리 같은 용역노동자의 임금은 모두 평등한 거죠. 숙련도 따위는 절대로 임금에 포함되지 않아요. 호봉은 꿈도 못 꿔요."

최수연 분회장의 이야기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왜 저임금을 받아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최수연 분회장이 이야기하듯, 청소일은 "밑바닥 노동"이란 인식 때문일까.

청소노동자들의 복지 환경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쉬는 것부터 고역이다. 청소노동자 휴게실 대부분은 계단 밑 창고이거나 물탱크실에 있다. 인간이 살기조차 힘든 공간이다. 위생시설(목욕·세탁시설)은 꿈도 못 꾼다. 근무복과 작업화는 청소 일을 하는 데에 부적격하다. 회사로부터 제공 약속을 받은 노동조합 사무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지경이다.

"간접 고용된 노동자의 삶은 참 비참해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면 대학(원청)과 업체(하청)가 서로 탓하기 바빠요.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정당한 권리조차 보장받기 힘들어요.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고통일까요?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정당하게 권리를 누렸으면 좋겠어요."

광운대와 하청기업이 서로 탓하는 건 도급 계약의 결과다. 광운대와 계약을 맺은 하청은 원청의 허락 없이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한다. 청소 업무를 하청에 위탁한 원청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발뺌한다. 이런 모습은 간접고용 노동자라면 겪어야 하는 숙명인 걸까.

"노조가 없었을 때 우리는 노예 같은 삶을 살았어요. 무조건 참고 견뎌야 했죠. 지금 들어온 신입생들은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 잘 모를 거예요. 그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예요.

그렇게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정말 힘겹게 노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가 만든 노조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광운대분회가 간접고용 노동자만으로 구성돼서 그런가 봐요. 청소노동자들이 법적으로는 용역노동라고 해도, 광운대에서 일하는 만큼 학교의 구성원이잖아요. 구성원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청소노동자들의 선전전은 그야말로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40여 명의 조합원들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보기와 다르게 수많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에 조금이나마 함께 연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광운대분회 청소노동자들의 입학식 선전전은 모두 마무리됐다. 현재의 도급계약 구조라면 앞으로도 또 '뫼비우스의 띠'처럼 팻말을 들어야 한다. 헤어나기 힘든 늪 같은 현실의 반복이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청소노동자들이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다. 노동자로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이제는 광운대가 학교의 또 다른 구성원인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직접 해결하는 '광운효과'를 일으킬 때다. 그러나 '광운대의 날갯짓'은 아직 요원한 듯싶다.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이다.


태그:#광운대 청소노동자, #야외 총회,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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