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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 단체는 신의에 따라 성실히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여야 하며 그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29조 제1항

지난해 5월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임금·단체협약이 노사 합의로 체결됐다. 전해 11월 노사 간의 첫 상견례를 시작으로 대략 6개월 동안 교섭이 이뤄진 것이었다. 지난한 시간과 함께한 서경지부 조합원들의 교섭·투쟁 상황이 임금·단체협약에 녹아 있다.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임금·단체협약을 꼼꼼하게 읽어봤다. 특히나 단체협약은 그야말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장전이었다. 노조가 없던 지난 세월과 비교하면 현재 노동자들의 모습은 상전벽해다. 단체협약의 조항 하나하나는 간접고용 노동자로서 겪은 모진 고통을 반증한다.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불합리하게 겪어왔을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다.

또다시 시작된 집단교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상근자들과 조합원들이 9차 집단교섭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상근자들과 조합원들이 9차 집단교섭을 준비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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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경지부의 집단교섭이 또다시 시작됐다. 2015년 임금·단체협약이 체결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 교섭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번에는 서경지부 임금협약과 각 사업장 분회의 보충협약이 집단교섭의 주요 사안이다. 작년에 체결된 단체협약은 제외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의거하면, 단체협약은 2년 동안 유효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 9월에 만들어진 숙명여대분회가 서경지부 집단교섭에 처음 참가했다. 그렇다. 숙명여대분회의 상급단체인 서경지부는 청소·경비·시설 업종의 용역노동자들이 결성한 산별노조다. 대부분이 대학 사업장 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다. 현재는 서경지부에 소속된 17개 분회가 23개 용역업체와 한 공간에서 교섭한다. 올해로 여섯 번째 교섭이다. 광운대분회는 2013년에 서경지부 단체·임금협약의 교섭권을 얻어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교섭이다.

올해 서경지부가 내세운 임금요구안(청소노동자 기준)은 시급 7224원이다. 정부가 권장하는 시중노임단가의 최저 낙찰률 87.995%를 기준으로 결정한 것이다. 개별 분회의 현장 상황과 맞물린 사안을 담은 보충협약 요구안은 5차 교섭 때 각 용역업체에 전달됐다.

나는 지난 3차부터 이날(2월 18일) 9차 교섭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했다. 물론 참관한 것이었다.

교섭은 서경지부 소속 대학 사업장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그 때문에 매 교섭마다 서경지부 소속 대학 사업장으로 발걸음을 해야 했다. 이를테면 지난 4차 교섭은 광운대학교에서 진행됐다. 이날 9차 교섭 장소는 서울여자대학교였다.

교섭 장소는 그동안 용역업체가 물색해왔다. 하지만 하루 전이나 당일에 교섭 장소를 통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학 내의 강의실·회의실 대여가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학기 중일 때는 학생들이 사용하니, 이해가 됐다. 하지만 방학 때도 강의실·회의실 대여의 어려움을 주장하는 건 좀처럼 수긍하기 어려웠다. 방학 시기의 대학 교정은 한적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9차 집단교섭은 서울여자대학교 50주년기념관 425호에서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9차 집단교섭은 서울여자대학교 50주년기념관 425호에서 열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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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섭 시작 시간보다 일찍 서울여대에 도착했다. 교섭 장소인 50주년기념관 425호 강의실에 들어가니, 서울여대분회 조합원들이 교섭 준비로 한창이었다. 책상은 이미 교섭 대형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나도 조금 거들었다. 때마침 서경지부 조합원(교섭위원)과 상근자들도 하나둘 교섭 장소에 오기 시작했다. 교섭 장소는 회의 준비로 분주했다.

사용자 집단의 '성의 없는 교섭 태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이 9차 교섭 시작 전에 교섭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이 9차 교섭 시작 전에 교섭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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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시작 시각이 넘어섰다. 그럼에도 사측 교섭위원들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사실은 내가 참관한 지난 여섯 차례의 교섭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 시간에 교섭을 진행한 적이 거의 없다.

교섭 장소 바로 옆 강의실에 사측 교섭위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다. 그런데 왜 사용자집단은 늦은 걸까. 다름 아닌 교섭대표의 선출 때문이었단다. 갑작스럽게 사측 교섭대표가 사퇴한 게 이유였다. 공석인 대표 자리를 채우려고 시간을 꽤나 소비한 것이었다.

뒤늦게 사측 교섭위원들이 하나둘 교섭 장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 4차부터 8차까지 교섭대표를 역임한 ㄱ업체 관계자가 오늘은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띈다. 교섭대표가 바뀐 게 맞는 듯하다.

그런데 새로 선출된 교섭대표는 여태까지 교섭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은 ㄴ업체 관계자였다. 사측이 지금까지의 교섭 내용조차 숙지하지 못한 교섭위원을 대표로 선출한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이날만큼은 지난 교섭 내용을 알고 있는 ㄷ업체 관계자가 대표 대리로 교섭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다음 교섭 때부터 ㄴ업체 관계자가 정식으로 교섭대표를 맡는 것이다. ㄷ업체 관계자가 교섭대표 자격으로 앞자리에 앉아 있다.

사측의 모습에 서경지부 교섭위원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사측이 교섭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교섭대표를 선출한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용자집단은 교섭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사측의 교섭대표 선출 소동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그다음 사측이 모두 참석했는지를 확인했다. 원래 시작부터 사측 교섭위원이 교섭 장소에 왔는지를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성실히 참석'을 안 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교섭이 9차까지 열렸는데도, 참석률이 밑바닥인 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다음 교섭부터 교섭대표를 맡을 ㄴ업체가 그곳이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런데 오늘은 업체들이 교섭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나는 23개 용역업체가 교섭 자리에 모두 앉아 있는 걸 처음 본다.

교섭을 시작해도 문제였다. 집단교섭의 핵심인 임금은 논의조차 하기 어려웠다. 사용자 집단이 7차 교섭 때까지 사측 공통의 임금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묵은 임금 동결(청소노동자 기준 시급 6550원)의 다른 말이나 다름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6차 집단교섭 때 각 대학 사업장마다 개별교섭이 이뤄졌다.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은 대학 사업장의 개별교섭 순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6차 집단교섭 때 각 대학 사업장마다 개별교섭이 이뤄졌다.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은 대학 사업장의 개별교섭 순서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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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차 교섭 때는 아예 분회마다 개별교섭이 이뤄졌다. 준비 없이 교섭에 참석하는 사측 교섭위원들의 태도가 답답했던 박명석 서경지부 지부장(서경지부 교섭대표)이 개별교섭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개별교섭은 집단교섭 장소(덕성여자대학교)에서 대략 4시간 동안 이뤄졌다. 6차 교섭에 참석한 모든 용역업체들은 역시나 임금 동결을 주장했다. 보충협약에 넣을 요구 조항들은 모두 수용불가였다. 여태까지 전혀 진전이 없던 교섭이 개별 접촉으로 조금이나마 물꼬가 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온 용역업체의 의중을 이제야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7차 교섭 때는 다시 개별교섭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사측의 교섭 태도는 상당히 불성실했다. 8차 교섭에 이르러서야 청소노동자의 시급 100원 인상(시급 6650원)을 사측 공통의 임금안으로 내놨다. 경비·시설관리 직무는 6차 때부터 줄곧 최저임금(6030원)을 주장했다. 최저임금은 굳이 교섭을 안 해도 되는 임금 제시안이다. 도급계약을 맺은 원청과의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안이었다.

"이게 무슨 교섭이에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9차 집단교섭이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이뤄졌다. 노사가 교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9차 집단교섭이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이뤄졌다. 노사가 교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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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교섭이에요?"

서경지부 교섭위원의 외침이었다. 이날도 8차와 달라진 게 없었다. 지금하고 있는 이야기도 사실은 지난주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역시나 지난번 임금 제시안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세웠다. 정말 성의 없는 교섭이었다. 노동자들은 답답한 속내를 토로했다.

지난 교섭을 되돌아봤다. 사측은 매번 일주일이란 시간을 더 주면 임금안이 나올 듯이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순간을 모면하려는 꼼수였다. 다음 교섭 때 또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측은 시간을 적당히 보내려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측이 지난 8차안을 계속 고수하는 데 무슨 논의를 해야 하는 걸까.

노동자가 무슨 말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대표 말고 다른 위원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야기를 해도 아무 말이 없는 사측 교섭위원들의 모습에 모멸감이 느껴졌다. 교섭 자리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교섭을 하면 정회는 기본이었다. 약속한 정회 종료 시간을 넘길 때도 부지기수였다. 이를테면 교섭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측 교섭대표가 정회를 주장한 적도 있다. 사측끼리 모여 공통된 임금안을 만들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서경지부 교섭대표가 사측의 공통 임금안을 조율하라고 일부러 정회 시간을 더 연장해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원청과 상의 없이 임금안을 제시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 사측은 매번 핑계를 댔다. 주로 원청이 대상이었다. 원청 담당자에게 이야기해도 어떤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맞다. 원청과 도급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마땅히 제시할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용역업체에 일을 주는 사실상의 원청인 대학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청과의 관계를 이유로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모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처음 교섭에 참석하니 많이 생소해요. 3, 4차 교섭 때는 임금·단체협약이 금방 합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교섭에 나올 줄 알았던 사측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니, 어이가 없었어요. 우리를 너무 하찮은 존재로 보고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죠. 씁쓸하기도 하고요. 참 비애감을 느껴요."

숙명여대분회 심현주 분회장(서경지부 교섭위원)의 말이다. 아무 준비 없이 교섭에 참석한 사측의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밀려온다. 내가 생각한 교섭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닐곱 차례의 교섭으로 노사 간의 합의안이 도출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순진한 생각을 갖고 교섭을 참관한 것 같다. 섣부른 기대는 깊은 허탈로 이어졌다. 매 교섭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용자 집단의 교섭 태만은 정도를 넘어섰다. 지난 4, 5차 교섭을 함께 참관한 박아무개 씨(홍익대 재학)도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 혀를 찼다.

나는 지난 7차례의 교섭 자리에 왜 앉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아까웠다.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문구는 허울 좋은 말이었을까. 아마도 사측은 '성실한 교섭 참석' 자체가 '성실한 협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는지. 그런데 '성실한 교섭 참석'조차 하지 않는 업체를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노동조합법 제30조 제1항을 보면,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는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

'성실한 교섭'의 필수조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이 4차 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교섭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4차 교섭은 광운대학교에서 이뤄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이 4차 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교섭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4차 교섭은 광운대학교에서 이뤄졌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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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대안까지 준비해서 교섭에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사측은 원청과 논의해봐야 한다고 시간을 좀 달라고 버텨요. 그런 건 교섭하기 전에 미리 조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럴 거면 왜 나온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원청이 직접 나와서 협상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6차 교섭 때 광운대분회 변선영 사무장(서경지부 교섭위원 대리)의 이야기다. 광운대는 청소 업무를 용역업체에 위탁했다. 그 결과 광운대와 용역업체는 민법상 도급 계약을 맺은 상태다. 교섭에 참석한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대학 사업장이 청소·경비·시설관리 업무에 도급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비용과 노무관리 때문일 것이다.

'정장을 입은 용역업체 관계자'가 '작업복을 입은 용역노동자'의 임금 깎기에 혈안인 이유는 뭘까.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용역업체가 도급 단가를 싸게 적어낸 결과다. 대학들은 청소·경비·시설관리 업무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낮은 도급 단가를 내놓은 회사를 결정한다. 이런 구조는 경비·청소·시설관리직의 저임금을 고착화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네 노동 구조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이유는 혹시나 노사문제에 휘말리는 걸 사전에 차단하려는 원청의 방책이 아닐는지. 원청이 노사 문제 앞에서 이른바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민법상의 도급 계약을 체결하면 사실상의 원청인 곳은 노사 문제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진다. 도급은 원청이 위탁한 용역업체가 실질적으로 업무 지시를 하기 때문이다. 원청은 이 명분을 갖고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긴다. 청소·경비·시설관리 등에서 도급 계약이 난무하는 이유다. 도급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모든 책임을 합법적으로 전가하는 제도나 다름없다. 지금도 '진짜 사장, 가짜 사장'의 문제 앞에 서경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서 있다.

"노동자와 용역업체 간에 협상안을 도출해 나가야 하는데, 뒤에서 방관하고 있는 대학(원청)이 앞장서지 않는 이상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려울 거예요. 이게 간접고용의 폐해죠.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해석하는 겁니다.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해야 하는 이유예요. 지금 교섭은 그냥 형식적이에요. 조정도 노사 간의 간극을 좁히는 절차가 아니라 파업권을 얻으려는 하나의 수순에 불과하고요."

박명석 서경지부 지부장의 이야기다. 이런 구조를 구실로 원청인 대학이 교섭 창구에 나오지 않는 데 어떤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을는지. 노사 간의 '성실한 교섭'이 이뤄지려면 원청, 하청, 노동자가 함께 만나야 한다. 원청 없이 하청업체와 노동자가 협상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더 이상의 교섭이 어려울 듯했다. 교섭은 금방 정회됐다. 정회 후에도 사측은 "새롭게 협의된 안이 나온 게 없다."며 기존 임금 제시안을 고수했다. 서경지부 교섭위원들이 이야기를 해도 역시나 묵묵부답이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사측의 무성의한 교섭 태도는 계속됐다. 지루한 공방만 이어졌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파업 전야' 앞에 서 있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5차 집단교섭이 진행 중이다. 5차 교섭은 경희대학교에서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5차 집단교섭이 진행 중이다. 5차 교섭은 경희대학교에서 열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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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집단교섭 결렬을 선언합니다."

박명석 서경지부 지부장이 마침내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사실은 사용자 집단이 교섭 결렬을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의 사측 교섭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집단교섭은 이날 부로 끝났다. 이제 다음 순서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것이다. 노동쟁의 행사 전 단계다. 우리나라가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단계에서 서경지부와 사용자집단 간 합의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단다. 조정까지 결렬될 경우 서경지부 조합원들은 쟁의의 행사가 가능해진다.

이제는 교섭 결렬과 조정 실패, 파업 결의는 하나의 관례처럼 굳어졌다. 박명석 지부장이 이야기하듯 교섭은 파업의 명분을 축적하는 단계란 생각이 든다. 올해도 노동자들이 지루하고 지난한 교섭을 아홉 차례나 이어간 이유였을까. 사측의 교섭 태도를 보면, 합의가 이뤄지는 게 기적이다. 지금도 어려운데, 단체협약에 들어갈 조항 하나를 만드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지난 아홉 차례의 교섭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사측의 무책임한 교섭 태도에 절망감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는 사측의 모습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성실히'의 조건은 도대체 무엇일까. 현실적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적인 문구인 것 같다.

노동자들이 집단교섭을 하는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교섭을 직접 참관하니, 노동자가 살기 힘든 환경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제 곧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노동자들은 '파업 전야' 앞에 서 있다.


태그:#집단교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민주노총, #서경지부, #용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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