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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청년들은 모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청년들이 작당하기에는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흙수저를 들고 태어난 20대는 취업난 때문에, 자녀가 있는 30대는 보육난 때문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비정규직이지만 월급이라도 나오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벅찹니다. 청년들이 모여서 뭔가 일을 꾸미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지방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저는 지방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서울 집중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입니다. 청년들이 넘쳐나기라도 합니다. 지방의 청년들은 서울 같은 대도시로 빨려들어 갑니다. 대학을 찾아, 직장을 찾아 살던 지역을 떠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충남 지역 소재 대학교 졸업생 중 충남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는 비율은 23.6%(2014년 기준)입니다. 4~5명 중에 한 명 정도만 충남 지역에 남습니다. 전국 최하위입니다.

시민 후원으로 '청년기금' 700만원 마련

처음으로 실시된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에 12개 청년 모임이 지원했다.
▲ 청년커뮤니티 상호평가 심사 처음으로 실시된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에 12개 청년 모임이 지원했다.
ⓒ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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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척박한 땅' 충남 지역에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충남시민재단(아래 시민재단)은 지난해 후원행사를 비롯해 뜻있는 시민·지역 사업가들이 동참한 모금을 통해 '청년 공익활동 지원 기금' 700만 원을 모았습니다.

시민재단은 이 기금으로 '청년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의 5개 청년 모임에 각각 100만 원씩 지원하고, 월례모임 및 졸업식 행사를 비롯한 운영비로 200여만 원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사업에 12개 청년 모임이 지원했습니다. 지원 모임 간 상호평가를 위해 12개 모임 소속 청년들이 지난해 12월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충남 지역에도 재미있는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이렇게 다양한 줄 처음 알았습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농촌 지역에서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살아가는 20대 초반 시골 청년들, 농활 갔다가 인연을 맺은 마을 어르신들의 풍물모임을 지원하겠다는 대학생들, 요즘 또래들은 꿈이 없다며 다른 청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일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보겠다는 대학생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갔던 20대 젊은 청년들이라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으나 최종적으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제가 소속된 모임은 기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20대의 젊은 후배들의 기회를 뺏은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참고로 우리 모임 구성원은 모두 30대 중반입니다).

최종적으로 ▲ 지역의 이야기를 글·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드는 '생활창작집단 끌 미디어소모임'(제가 소속된 모임입니다, 홍성군) ▲ 문화행사 등으로 원도심의 활성화를 돕는 '천안원도심사람들' ▲ 클래식 공연을 펼치는 대학생들의 현악 4중주 MUSIK QUARTET(무지크 콰르텟, 천안시) ▲ 농촌 지역 소외계층과 함께 하는 청년봉사단체 '농촌애'(아산시) ▲ 아동·청소년을 비롯해 지역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젊은 학부모들이 뭉친 '인권모임 꿈틀(서산시)' 등 5개 모임이 선정됐습니다.

"청년들의 만남이 시너지 효과 낼 것"

충남 지역의 5개 청년 모임에 각각 활동비 100만 원이 지원됐다.
▲ 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지원 사업 1기 모임 청년들 충남 지역의 5개 청년 모임에 각각 활동비 100만 원이 지원됐다.
ⓒ 길익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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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공모사업에 비하면 100만 원은 큰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기 위해 이제 막 모임을 구성한 청년들에게는 큰돈입니다. 사무실이 없어 커피숍을 돌며 회의를 하던 청년들에게는 커피값이 될 수도 있고, 공연장을 빌리지 못해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청년예술가에게는 대관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민들이 마련한 기금인 만큼 정부 사업과 같은 형식적인 정산 절차가 없어 청년들이 모임 활동을 하는 데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행정적 규제는 청년들의 자유로운 상상을 가로막기 십상이지요. 선정된 5개 모임은 지난 7일 아산YMCA 회의실에서 첫 모임을 열고 기금 사용 기준을 함께 마련했습니다.

5개 모임은 매월 한 차례씩 각자의 지역에서 전체모임을 기획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셈이죠. 천안·아산·서산·홍성 등 인근 지역의 청년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인근 지역의 청년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그 지역을 찾아가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충남시민재단 김지훈 집행위원장은 시민들이 마련해준 기금을 바탕으로 지역 청년들이 모이면서 서로의 활동을 엮여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지역의 청년 활동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 지도 몰랐습니다. 지역의 청년들을 발굴하고 네트워킹하는 것이 이번 사업의 목적 중 하나 입니다. 이 사업을 계기로 청년들의 모임이 지역 속으로 퍼져나가고, 청년들의 만남이 시너지 효과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아마도 모여서 자율적으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요?"

부러웠던 서울 청년정책, 우리도 한다

지난해 9월 서울혁신파크 청년허브의 한 회의실에서 '마을청년을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서울의 청년활동가들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 서울 청년허브 지난해 9월 서울혁신파크 청년허브의 한 회의실에서 '마을청년을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서울의 청년활동가들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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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재단의 '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은 서울시의 '청년참' 사업과 닮아 있습니다. 시민재단도 서울시의 청년사업을 벤치마킹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청년허브'를 방문했을 때 서울에 사는 청년들이 부러웠습니다(서울에서 홍성으로 귀촌한 저로서는 서울생활이 부러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3인 이상 청년이 모이면 10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참' 사업은 매월 새로운 청년 모임을 선정합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있는 청년단체에는 100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활' 사업도 있습니다.

지원 규모보다 더 부러운 것은 '청년허브'라는 공간과 그곳의 분위기였습니다. 뜻이 맞는 청년들끼리 모여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연상케 했습니다(혁신적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는 점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이런 공간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서울과 다르게 중소도시 및 농촌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곳이어야 하겠지요.

다행히 충남에서도 올해부터 청년 사업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연말 충남도의회는 '충청남도 청년 기본조례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입법예고안에 첨부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충남도는 ▲ 청년커뮤니티 지원 ▲ 청년사람책도서관 ▲ 지역순회 청년장터 등의 청년지원사업을 실시하기 위해 3억 원의 사업비를 내년 1차 추경에 편성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충남청년허브(가칭) 조성과 관련해 "중장기 검토를 요하는 사항이므로, 이번 추계에서는 일단 배제"한다고 밝힌 부분은 아쉽습니다. 

충남도가 본격적으로 청년 사업을 시행하더라도, 시민 기금을 통한 청년 지원 사업은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재단 김지훈 실행위원장은 "공공영역에서 지역 청년을 위한 시업이 확대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공공영역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을 발굴하고 이 사업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민간영역에서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민재단의 청년커뮤니티 지원 사업은 추후 지자체가 추진할 청년정책의 마중물이 될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1기로 선정된 청년들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래도 청년들끼리 모였는데 재미있겠죠? 자주 모이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요? 지역에서 청년들이 더 크게 작당 한번 해봅시다.


태그:#충남시민재단, #청년커뮤니티, #청년정책, #생활창작집단 끌, #청년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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