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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0월 2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0월 2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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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이여, 캐다나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Refugees, Welcome to Canada)."

현지시각으로 지난 10일,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토론토 공항을 찾았다. 레바논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시리아 재정착 난민 1진 163명을 맞이하는 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트뤼도 총리의 환영사 내용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내용이라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 밤 이분들은 난민으로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이 터미널을 나설 때는 캐나다 영주권자로 걸어나갈 것입니다."
"캐나다는 피부색·언어·종교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난민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세계에 보여줄 것입니다."
- <뉴욕타임스> 12일 자 기사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에게 환영을 받은 시리아 난민들" 중에서

이는 트뤼도 총리가 '재정착 제도'(resettlement)를 통해서 공약을 실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과거 "수년 동안 전쟁의 참화에서 피난처를 찾는 2만5000명의 시리아 난민이 캐나다에 정착하도록 보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캐나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최근 미국의 분위기와 현격히 다른 행보다. 미국에서 일부 주가 국제사회의 여러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난민의 재정착에 반대하거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들의 입국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적대적인 메시지가 퍼지는 것과 선을 그은 셈이다.

지난 10일 캐나다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1진을 환영하는 <토론토 스타>의 1면 사설 갈무리
 지난 10일 캐나다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1진을 환영하는 <토론토 스타>의 1면 사설 갈무리
ⓒ 토론토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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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국제사회에 감동을 준 이유는 트뤼도 총리의 적극적인 환영뿐만 아니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는 총리가 발언한 당일 1면 전체를 할애해 시리아 난민을 위해 아랍어가 병기된 감동적인 환영 사설을 게재하였다.

이런 소식들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SNS상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한국 누리꾼의 글은 캐나다 환대에 대한 큰 감동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사실 쏟아진 공유는 짙은 부러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난민을 환대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한국사회에 대해 얼마 만큼의 자부심을 갖고 그들에게 이곳을 소개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 말이다.

23일 한국에 찾아올 난민을 어떻게 환영할 것인가

아직 언론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으나, 대한민국에도 같은 방식으로 난민들이 도착할 예정이다. 버마에서 오랜 내전으로 인해 난민캠프로 피신해 살아오던 소수민족 난민 4가족이 오는 23일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대한민국은 오랜 검토를 거쳐 세계에서 29번째로 재정착 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올해부터 매해 30명 한도 내에서 난민 재정착을 위해 3년간의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정책의 적합성을 평가한 후 2018년부터는 정식 형태로 이행할 계획이다.

1951년 체결된 난민 협약으로 '난민의 지위를 부여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난민협약 체약국에 도착하여 난민 신청을 하고 심사를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 하나다. 또 유엔 난민기구에 난민 신청을 하고 유엔의 추천을 거쳐 재정착 제도 시행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고 살게 하는 것이 다른 방법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전자만 시행해왔는데, 앞으로는 후자도 시범사업 형태로 시행하게 된다.

물론 난민의 지위는 법적인 것이고, 정책적인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언론에서 통상 '난민수용'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협약난민의 경우, 난민신청을 받아 심사하는 것은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며, 위임 난민에 관한 재정착 난민수용 여부만 정책적인 고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난민 수용'으로 보도된 유럽발 기사들이 대체로 '입국을 허용하여 심사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고 '난민 지위 확정'은 아닐 수 있으므로 해외 언론의 기사를 읽을 때도 맥락에 주의해야 한다.

난민 위기와 관련해서 재정착 제도 자체와 방법·시행시기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잇따를 수 있다. 하지만 재정착 제도의 시행은 우리 앞에 놓인 두 가지 측면에서 분명 중요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첫째로, 대한민국 정부에 주어진 기회이자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난민 재정착 제도의 시작은 오랜 분쟁 속에서 새로운 평화를 찾아온 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정부가 '환영한다'고 공식적으로 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다. 대한민국이 지난 1994년에 난민제도를 시행한 이래 올해 10월 말까지 1만3888명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의 위험이 있다'며 난민신청을 했다. 그중 531명이 난민 인정을, 894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찾게 된 531명의 난민 인정자들에게 '환영한다'라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전한 적이 없다.

5%도 되지 않는 난민 인정 확률을 뚫고 협약과 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얻은 난민들에겐 사실 쫓아내지 않겠다는 취지의 난민인정 증명서 한 장과 국민에 준하는 일부 권리가 형식적으로 부여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대부분 경계인으로 지내고 있다.

이래서는 과연 대한민국으로부터 난민이 얻는 '보호'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재정착 제도를 통하여 수용하는 난민들은 협약 난민들과 달리 직접 대한민국 정부가 선발·심사·재정착 과정까지 적극적으로 주도해서 시행한 결과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더욱 환영의 목소리를 공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23일 난민 입국은 한국 정부에도 좋은 기회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대한민국이 난민인정 심사를 수행한다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니라, 피난처를 찾아온 그들에게 '환영한다'고 직접 대화를 건네면 어떨까. 국가가 행정 형태로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인도주의적인 제도 중 하나인 재정착 제도는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다. 또한 동시에 난민인정 업무를 시행한 지 20년이 넘어 재정착 제도를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정부로서도 뜻 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게시된 안내문.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방법에 관해 나와있다.
▲ 인천공항 입국장에 게시된 난민신청 안내문 인천공항 입국장에 게시된 안내문.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방법에 관해 나와있다.
ⓒ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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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한국사회에 주어진 기회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듯 '강함에 대한 동경'과 '약자를 향한 경멸'이 한국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나와 동질성을 느끼지 못하는 타자는 끝과 목적 없는 경주 속에 등장한 잠재적 경쟁자일 뿐이다. 경쟁자 중에서도 이주자에 대한 경멸의 시선은 더욱 가혹하다. '헬조선'에서 살아가던 대한민국 국민들마저 좌우 막론하고 '너희는 이곳에서 아무런 권리가 없으니 어서 돌아가라'며 이주자를 냉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정착 난민 제도의 시작은 이런 한국사회에 '타자를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환대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사건이 된다. 과연 우리는 피난처를 찾아온 난민들에게 '왜 헬조선에 왔느냐'고 비아냥거릴 것인가, 아니면 '함께 이곳에서 더 평화롭고 나은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자'고 환영하는 얼굴을 보여줄 것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하고 타자를 환영하며 이웃을 환대하는 것. 인류 역사상 오래된 능력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종종 잃어버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같은 기회와 책임은 한국사회 내 여러 언론에도 해당한다. 그간 수많은 국내 언론은 올 한해 전례 없는 난민의 증가 추세 속에 난민을 '해결해야 할 문제', 혹은 '골치 아픈 사건'으로 보도하는 쪽에 가까웠다. '피와 살, 그리고 이야기를 지닌 인간'에 관한 일로 주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따라서 한국 언론에도 선택지가 놓여 있다. 과연 23일 전후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재정착 난민 제도가 시행되었다', '난민 문제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다'와 같은 건조한 보도들로 난민을 '사건의 객체'로 격하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환영한다'고 목소리를 낼 것인가. 정말 중요한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공식적인 난민 환영, 한국에도 새로운 전환점 될 것

난민들은 결코 얼굴도 이야기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가 행정의 일방적인 객체로 소비할 사람들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에도 한국사회에도 타자를 향한 환대를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것은 다소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과 전환점이자 기회라는 것도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오랜 피난 생활을 떠나 한국사회에서 평화로운 삶을 꿈꾸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사회에 도착할 가족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가 취할 자세는 과연 그들을 면전에서 '난민 이슈'에 관한 이야기 거리로 소비할 것인가, 난민을 주체로 여기고 직접 인사를 건넬 것인가.

새로운 이웃에게 환영의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2015년 12월 23일, 한국을 찾은 난민들이 한국 땅을 밟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 새로운 피난처로 삼은 대한민국에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그 일을 짧은 환영 인사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가 썼습니다.



태그:#재정착난민, #난민, #환영, #시리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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