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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슛포러브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들.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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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빼빼로 데이이자 농업인의 날이며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이었다. 우리 학교 운동장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골대를 향해서 힘껏 공을 차기 위해서다. 수많은 광고지가 학교를 뒤덮었고 캠코더는 두 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동식 칠판 하나와 총 여덟 개의 책상도 운동장에 나와 있었다.

맑은 날도 아니고 심지어 보슬비도 내리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이쯤 되면, 일을 꾸민 범인이 궁금하다. 그런데, 모든 일의 범인이 바로 5학년 우리 반이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있어야 해요."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꿀 수 있어야 해요."
"친구랑 놀 수 있어야 해요."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해요."

때는 지난 도덕시간. 우리는 '인권'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 나라의 '어린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물었다. 아이들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어린이라면 꼭 가져야 할 인권들이었다. 운동장에 나와 뛰어 놀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나의 미래를 꿈꾸고, 친구랑 놀 수 있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들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어린이라면 가져야 할 '인권'들이 맞아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렇지 못한 어린이도 있어요. 어린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져야 할 인권인데 말이죠."

아이들은 곧바로 우리의 반대편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어린이들을 떠올렸지만 나는 더 가까운 우리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이유로 '소아암'에 고통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였다. 소아암은 완치율이 80%에 달하지만, 높은 치료비용과 긴 치료기간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타까운 병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동 질병사망원인 1위가 바로 소아암일 정도다.

우리는 소아암 어린이들이 운동장에 뛰어 나와 놀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미래를 꿈꾸고, 친구랑 놀 수 있기를 바랐다. 어린이들이 얼른 나아서, 어린이라면 가져야 할 인권들을 찾아주고 싶었다. 도덕시간 몇 시간을 더 활용해 소아암 어린이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캠페인을 해보자는 것에 우리 반 모두의 뜻이 모아졌다. 우리가 목표로 한 캠페인은 사회적 기업 Bekind의 '슛포러브 캠페인'이었다.

아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소아암 어린이 돕기 캠페인'

슛포러브(Shoot for Love) 캠페인이란?

 슛포러브 캠페인
 슛포러브 캠페인
ⓒ Be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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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포러브 캠페인은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즐거운 기부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한 해 전국 곳곳에서 게릴라 축구장을 만든 뒤 지나가는 사람들이 페널티킥에 참여하여 1골을 넣을 때마다 기업에서 5천 원을 소아암 어린이에게 기부하도록 하여 5000골 성공, 5명의 소아암 어린이를 도왔다. 올해는 양궁과녁을 축구공으로 맞춰 획득한 점수에 만 원을 곱한 금액이 소아암 어린이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전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혀 유명 축구 선수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고 있는 캠페인이다. 축구공 하나로 사람들에게 소아암도 알리면서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또, 캠페인의 결과로 치료비까지 지원해주는 말 그대로 '착한' 캠페인이다.

우리는 일단,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캠페인을 알리고,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서 학교 친구들이 소아암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며 소아암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 우리가 모은 희망을 전달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아울러, 캠페인은 전 과정이 촬영되어 Bekind 기업에 보내질 예정이었다. 혹시나, 우리의 캠페인 활동이 실제 기부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날짜는 11월 11일 수요일. 수요일에 3, 4, 5, 6학년이 모두 5교시에 끝나기 때문에 사람을 모으기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시간은 방과 후 오후 1시 40분. 슛포러브의 올해 버전처럼 양궁과녁을 만드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지난해 버전인 페널티킥을 활용하기로 했다. 얼추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자마자 아이들은 각각 홍보부, 촬영부, 준비부로 나누어졌다. 선생님인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홍보부는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고지와 캠페인 당일에 나누어줄 안내장을 제작하기로 했다. 당장 광고지부터 붙여야 한다며, 내 컴퓨터를 사용해 광고지를 먼저 만들어버리겠다고 했다. 딱히 갈 곳이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컴퓨터 하나에 모여들어 광고지를 만드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마, 당일에는 발로 뛰며 학교 안에서 직접 캠페인 홍보를 할 계획인 모양이었다. 목표는 150명이라고 했다.

홍보부의 횡포(?)로 쫓겨나 찾아간 촬영부는 '진행팀'과 '카메라팀'으로 다시 세분화되어 있었다. 진행팀은 캠페인에 앞서 취지를 설명하고 캠페인을 마치고 오는 몇몇 학생들의 인터뷰도 진행할 모양이었다. 진행을 볼 아이들 대본 카드를 만든다며, 대본 제작에 열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학교 방송반에 가서 빌려왔다는 카메라는 카메라팀의 테스트 용도로 벌써 사용되고 있었다.

마지막, 준비부. 준비부는 캠페인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였다. 캠페인에서 사용될 축구공, 책상, 칠판 등을 직접 구하고 골대에서 공을 막아줄 골키퍼까지 섭외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축구공은 지난 1학기 우리 반 아나바다 장터로 벌어들인 반 수익금으로 하나 장만하기로 했단다. 책상, 칠판 등도 미리 빌릴 수 있는 교실의 선생님께 양해를 직접 구해가며, 당일에 잠시 빌려 쓰고 돌려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또, 골키퍼는 우리 학교에서 자율축구부 5학년 대표를 맡고 있는 친구에게 쉬는 시간에 벌써 부탁해두었다고 했다.

역시나 나 없이도 착착 잘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 녀석들 진행속도가 아주 빠르다. 곧 학교 곳곳에는 우리 반의 11월 11일 슛포러브 캠페인 광고지가 붙었고, 마트에서 3만3000원을 주고 샀다는 축구공도 도착해 있었다. 또, 매일 방과 후에는 진행팀과 카메라팀이 리허설을 하며 서로 합을 맞추고 있었다.

기부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모두 고생했다 얘들아

 공 하나에 담긴 메시지
 공 하나에 담긴 메시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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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1월 11일,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대로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자, 우리가 이제까지 준비한 인권프로젝트가 시작될 거야. 여기까지 열심히 해준 촬영부, 준비부, 홍보부 모두 고생 많았어. 비록, 우리가 목표로 하는 150명을 채울 수 없더라도 우리 초등학교 친구들이 소아암에 대해 알게 되고, 희망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 자기 준비물들 잘 챙기고, 이제 나가자!"

준비부, 홍보부, 촬영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학교가 끝난 1, 2학년 친구들은 벌써 공을 차겠다며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기다리던 오후 1시 40분,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교장 선생님의 첫 골로 우리가 직접 만들고 계획한 슛포러브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캠페인은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우리가 처음에 계획했던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간인 2시 10분에 막을 내렸다. 우연하게도 11월 11일에 열렸던 우리의 인권프로젝트에는 '111명'이 참가해주었고 '65골'이 성공되었다. 물론, 우리가 목표로 했던 150명에는 많이 모자란 숫자였다.

또, 아쉽게도 우리가 제작한 슛포러브 캠페인에서 넣은 소중한 65골은 지난해 버전이었던 까닭에 기부로까지 이어질 수는 없었다. 나도 아이들도 또, Bekind도 모두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미 나와 아이들은 우리가 목표로 했던 '학교 친구들이 소아암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소아암 어린이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모은 희망을 전달하는 것'을 이루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아암 어린이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아이들은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발로 뛰어 다녔다. 테이프 하나 들고 광고지를 붙이러 다녔고, 축구공 하나를 사려고 5명이나 모여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매일 방과 후가 되면 교실에서는 카메라를 보며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인권'이라는 단어 하나로 시작했던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아이들 스스로 경험과 가치를 배운 것이다.

 Bekind에서 보내온 답 메일
 Bekind에서 보내온 답 메일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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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kind에서는 우리가 보낸 영상메일에 아쉬운 마음과 함께 "소아암에 대해 인식개선 캠페인을 개최한 것에 대한 경험과 그 가치는 정말 소중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영상도 너무 예뻐서 저희가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저희 페이지를 통해 많은 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다"라는 말을 전해왔다.

어쩌면, '인권' 하나를 공부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배우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아이들 앞에 선생님으로서 서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반 아이들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에 인권의 가치를 새기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인권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소감

'소아암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고 또, 또 다시 하고 싶다.'
'비가 내려서 머리와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하였다.'
'소아암 어린이들이 꼭 권리를 찾아 씩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도우며 소아암 어린이를 도울 수 있어 좋다.'
'다음 날 감기 기운도 생겼지만 캠페인의 의미 때문에 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아암 어린이 모두 건강해지면 좋겠다.'
'학원에 빨리 가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할 수 있어서 느낌이 좋았다.'
'힘들었지만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말에 홍보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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