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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임원은 그 조합원 중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23조 제1항

"이상 두 선거운동본부의 후보자들이 제43대 총학생회 후보로 등록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 게시판에 '제43대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 등록 공고'문이 붙어 있다. 때마침 한 남학생이 공고문을 힐끗 쳐다보고 지나간다. 읽어 보니, 현재 부총학생회장이 이번에 총학생회장 후보로 이름을 올린 듯싶다. 순간, 지난주에 부총학생회장의 사퇴서를 봤던 게 생각났다. 또 다른 후보의 이름은 처음 본다. 어찌 됐든 이 두 후보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고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칠 것이다. 광운대에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며칠 전, 또 다른 선거가 광운대 안에서 이미 이뤄졌다. 바로 청소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선거다. 지난 11월 4일 광운대 중앙도서관 계단강의실에서 분회장 투표가 진행됐다. 비록 광운대 구성원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지만,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만큼은 선거 열기로 후끈했다.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선거의 계절

계단강의실에 들어가니, 투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미 임원들은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최다혜 조직차장도 있다. 지난 9월에 보고, 오랜만이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2년 만에 다시 이뤄진 선거에서 최수연 현 분회장이 홀로 출마했다. 그 때문에 찬반 투표로 분회장을 선출한다. 또 다른 투표도 함께한다. 바로 '을들의 투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찬반 투표다. 이를테면 '정부가 제시한 정책안'과 '노동계가 준비한 대책안'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선거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선거 준비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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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 설치부터 명부 정리까지 임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았다. 나도 얼른 일을 거들었다. 조합원 중 막내인 임효선 사무장이 열심히 투표소를 설치하는 중이었다. 간단한 설치 작업이었지만, 몇 군데가 잘 조립되지 않아서 고생 좀 했다.

서서히 투표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같이 선거 준비를 하던 변선영 조합원이 드라마 <송곳>에 대해 얘기한다.

"요즘 드라마 <송곳>에 완전 빠졌어요. 그냥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저도 노조 활동을 하다 보니, 드라마 속 이야기가 제 모습같이 느껴져요."

조합원들 사이에서 드라마 <송곳>이 유행인 듯싶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도 <송곳>의 푸르미마트 조합원들처럼 노조를 만들 때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노조가 생겼다고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난관들이 조합원들을 기다렸다. 지금도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역경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있다.

선거 준비가 끝날 때쯤 조합원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광운대분회의 청'이'점 중 한 명인 김영호 조합원도 보인다. 임효선 사무장이 김영호 조합원에게 유인물을 나눠준다.

"다른 노동 현장에 연대 가는 건 별로 안 힘들어요. 그런데 총무 일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제가 숫자 계산하는 데는 머리가 팍팍 안 돌아가요. 또 회계 보고를 해야 하는데, 기껏 준비해서 발표하려고 연단에 서면 그때부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져요. 제가 무대공포증이 있는 것 같아요. 사무장이란 직책이 주는 압박도 꽤 있고요. 그렇다고 힘든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노조 활동하면서 보람찬 일도 많았어요."

임효선 사무장은 지난 2년을 회상했다. 광운대분회 임원으로서 많은 일을 묵묵히 해왔다. 청소 일하랴, 노조 일하랴, 바쁜 나날이었다. 옆에서 바라본 결과, 중압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유인물을 받아든 조합원들은 자신이 맡은 청소구역이 어디인지 이야기한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순환근무제의 영향으로 6개월마다 청소구역이 바뀌는데, 지난 1일에 또다시 교체됐기 때문이다.

연단 앞에 서 있는 최다혜 차장은 총회 발표 준비 차 문서를 꼼꼼히 확인해본다. 목감기에 걸려 목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걱정스러웠다. 최수연 분회장이 최다혜 차장에게 물병을 건네준다. 곧이어 최수연 분회장은 조합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혹시나 일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는지도 물어본다.

곧 진행될 임금협상, 어떻게 진행될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 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조합원 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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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침이 1을 가리키자, 총회가 시작됐다. 총회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최다혜 차장이 조합원들에게 인사한다. 곧이어 코앞으로 다가온 교섭 일정을 이야기했다. 투표는 이 설명이 끝난 후 진행될 것이다.

"11월 중순부터 집단교섭을 시작합니다. 임금을 소급 받은 지 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교섭의 계절이 다가왔네요. 이런 상황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올해는 임금이 단체교섭의 핵심 쟁점이다. 물론 각 대학 분회마다 보충교섭도 함께 진행한다. 이번 단체교섭에서 중요한 사안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부가 권고한 시중노임단가 수준의 임금 계약이다. 두 번째는 용역업체 교체 시 고용승계 보장 부분이다. 용역노동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사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역노동자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현실에서 두 조건은 기본적인 요구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기초적인 보호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 게 다반사다.

"월급이나 좀 많이 올려주라고 하세요."

최다혜 차장의 설명을 유심히 듣던 한 조합원이 이야기한다. 웃음소리가 군데군데서 들려온다. 그렇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중요하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비용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을 쓴다. 비정규직도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간접 고용한다. 그래야 무슨 문제가 일어나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대학도 이런 기업의 모습을 점점 닮아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최다혜 조직차장이 조합원들에게 교섭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최다혜 조직차장이 조합원들에게 교섭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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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국민투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조합원 총회는 세미나의 역할도 한다. 우리 사회 내에 산적한 노동 현안을 조합원들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이다. 물론 조합원들도 우리네 노동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최다혜 차장은 누구나 쏙쏙 이해할 정도로 재미있는 강의를 진행했다.

"노동개혁이란 말 자주 들으시죠? 개혁이란 이름을 달면 좋지 않은 것도 좋게 바뀐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정부가 만든 개혁안은 사실상 재앙에 가깝습니다.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개혁안을 제대로 뜯어봤을 때 무슨 내용이 있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정부가 시행하려는 노동정책안은 총 4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다. 두 번째는 성과 차등 임금제다. 세 번째는 비정규직 사용 연한의 연장이다. 네 번째는 파견 제한 직종의 확대다. 반면에 노동계가 주장하는 방안은 정부 정책과 반대다. 첫 번째는 해고요건의 강화다. 두 번째는 최저임금의 1만 원 인상이다. 세 번째는 상시업무의 정규직화다. 네 번째는 파견노동의 근절이다.

조합원들은 어디에 도장을 찍었을까

최다혜 차장의 노동 강의는 모두 끝이 났다. 곧바로 분회장 투표로 넘어갔다. 원래는 서경지부 지부장 선거도 함께 계획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부장 선거는 사정상 다음 달로 미뤄졌다. 결국 오늘은 분회장 선거만 이뤄진다. 최수연 분회장이 분회장 후보로서 단상에 올라갔다. 선거에 앞서 조합원들에게 앞으로의 공약을 이야기했다.

분회장의 발언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조합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찬성과 반대 중 무엇을 택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총회장의 공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한 조합원은 턱을 괴고 '을들의 국민투표' 유인물을 찬찬히 살펴본다. 조합원 모두가 고민에 빠져 있다.

한 조합원이 자신의 신분을 확인받고, 2장의 투표용지를 받았다. '분회장 찬반투표' 용지와 '을들의 국민투표' 용지가 그것이다. 투표소로 걸어간다. 도장을 들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들어간 조합원도 꽤 오래 서 있다. 광운대분회의 미래와 우리네 노동현실을 동시에 고민하는 듯싶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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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하기 위해 서 있는 줄은 점점 줄어든다. 투표는 이제 마무리 단계까지 왔다. 최수연 분회장도 투표소에 섰다. 곧장 2개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각각 반으로 접은 채 투표함에 넣고 있다.

"2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네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마치 꿈같아요. 지금까지 광운대분회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여기 있는 조합원들 덕분이에요. 저를 끝까지 믿고, 따라주셨기 때문이죠."

한편으로 지난 11월 1일은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든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 노조에 수많은 일들이 펼쳐졌다. 그 순간마다 최수연 분회장은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버팀목이었다.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으려고 매일 노동현장을 동분서주한 그였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분회장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최수연 분회장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이번 임금협상도 오래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난번 협상 때는 물론 우리학교가 (노동쟁의) 조정기간에 가장 먼저 잠정 합의를 이뤘지만, 올해는 잘 모르겠네요. 우리가 먼저 합의를 봤다 해도, 단체교섭인 만큼 서경지부에 가입된 모든 대학 분회가 최종 합의를 이뤄내야 효력이 발생해요."

광운대분회의 임원진이 곧 새로 꾸려질 것이다. 이제 임금협상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생각건대, 올해 안으로 협상이 마무리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2014년 임금협상은 이듬해 6월 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11월 중순부터 시작될 임금협상은 과연 언제쯤 끝이 날까. 이번에 선출될 분회장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진다. 어쩌면 앞으로의 여정은 더욱더 고난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녹록치 않은 현실과 마주한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출범 2주년을 축하합니다.



태그:#청소노동자, #광운대, #분회장 선거, #노동조합, #광운대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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