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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는 한 여인에 대한 살인사건 소식이 흘러나오고, 폭설주의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기상특보도 이어서 알려 준다. 여인이 집으로 들어오고 곧이어 그의 남편이 들어와 그녀를 찾는다. 가슴 떨리는 산장 개업 첫 날, 각자 개성을 가진 손님들이 속속히 등장하는데..., 과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살인사건과 산장 손님들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몰리의 산장에서 일어나는 반전과 반전의 추리극 〈쥐덫〉을 졸업 작품으로 선택한 계명대학교 연극뮤지컬 전공 학생들의 연습실을, 마치 극의 한 부분처럼 급습한(?) 건 지난 1일, 일요일이었다.

학생들의 연습 장면이 사뭇 진지하다.
▲ 계명대학교 연극뮤지컬 전공 졸업생들의 〈쥐덫〉 연습장면 학생들의 연습 장면이 사뭇 진지하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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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졸업은 취업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현실. 하지만 연극지망생들에게 취업은 뭘까? 배우의 꿈을 찾아 선택한 연극이 안정된 직업군하고는 거리가 먼 상황이거나 매우 어렵고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선택한 〈쥐덫〉이라는 작품은 어쩌면 현실이라는 '쥐덫'을 탈출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메신저가 아닐까 하는 무리한 생각도 해보면서 찾아간 연습실이었다.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지하에 있는 연습실에서 10여 명의 학생들이 세팅된 무대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졸업생들이 선택한 <쥐덫>은 강소리, 신민진 학생이 공동연출을 맡았다. 지도교수는 안재범 교수다.

도착했을 때, 스태프 포함, 10여 명의 학생들은 자신의 역에 충실하며 무대를 채워갔다. 낯선 이가 있어서인지 조금은 어색하게, 하지만 나름 노련하게 자기 역을 소화하는 학생배우들. 그 아이들을 보니 고등학교 때 졸업 작품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광인들의 축제'에서 정신이상인 반장역을 했던 그 날카로운 기억들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하면서도 섬광의 빛으로 무장하여 자기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의 연기 위에 덧씌워졌다.

아가사크리스터의 쥐덫은 60년 동안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 계명대학교 연극뮤지컬 전공 졸업생들의 〈쥐덫〉 연습장면 아가사크리스터의 쥐덫은 60년 동안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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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젊은 사람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쥐덫>을 굳이 졸업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를 공동연출을 맡은 강소리 학생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추리작품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 추리극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쥐덫>은 6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공연된 작품이라고 해서 궁금증이 더했지요. 또 졸업 작품을 하다 보니 역에 대한 비중이 골고루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모든 배역의 비중이 비슷했어요. 역할에 대한 안배 차원이라고나 할까요? 주인공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작품이 아니니 졸업해서 배우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연출과 스태프, 배우들까지 모두 졸업생이니 특정 배역에만 치우치기 보다는 고른 비중이 배우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출의 배려가 분명 담겨 있는 대답이어서 어떤 무대가 만들어질지 자못 기대가 됐다.

연습을 지켜보는 동안, 학생배우들의 표정을 둘러보니 짐짓 진지했다. 같은 장면을 연이어 연습하면서도 장면마다 동선이나 대사의 느낌을 조금씩 다르게 하며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1장의 연습이 어느 정도 끝나자 공동연출자인 강소리 학생과 신민진 학생이 배우들을 불러 모아 연습 중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되짚어서 보완해나갔다. 여느 프로 연극인들의 진지함 못지 않았다.
연습 중간 중간에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진지하다
▲ 진지한 미래 연극인들 연습 중간 중간에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진지하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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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쥐덫>을 연극으로 본 적은 없다. 오래 전 책으로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연습장면을 보니 기억 속의 인물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인물 하나하나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내면 연기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푼 흔적이 보였다.

동선과 대사 수정, 인물 분석 등 반복되는 연습이 계속됐다. 꼭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숨소리조차 내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미래 배우들의 연기에 빠지다보니 3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밖은 이미 가을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습을 잠시 중단하고 식사 시간이 되자 배우에서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온 학생들에게 잠시 작품에 대해 물었다. 작품을 하면서 든 느낌이 무엇이었냐고. 늘 어른들의 질문은 똑같은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대답은 참 신선했다. 

"음, 갑자기 뭔가 들이닥친 느낌이요. 카스타드 같은 느낌.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느낌이요."

대답하는 학생의 입에서 카스타드향이 나는 듯 했다.

"대사가 많다보니 힘은 들었지만 대사를 소화하면서 배우로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됐어요."

"처음엔 '유명한 작품이니까' 한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 있겠다 생각됐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요? 인물의 삶을 하나하나 엿볼 수 있는 점도 재밌구요."

'쥐덫'에 푹 빠진 계명대학교 연극뮤지컬 전공 학생들이 작품 성공을 다짐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 자, 우리의 미래도 밝게 '활짝! '쥐덫'에 푹 빠진 계명대학교 연극뮤지컬 전공 학생들이 작품 성공을 다짐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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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착실하게 쌓아온 연극수업을 한껏 풀어내기 위해 6월부터 준비해온 졸업 작품 <쥐덫>은 연습을 마치고 오는 11월 14일과 15일(3시, 7시 30분) 총 4회에 걸쳐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블랙박스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재미와 상업성에 밀려 무게감 있는 정통연극이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연극계 현실에서 과감하게 아가사크리스티의 <쥐덫>을 선택한 학생들. 이번 무대는 미래 연극배우이자 졸업생인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의 '쥐덫'을 지혜롭고 용감하게 탈출하는 하나의 작전처럼 느껴졌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그들의 '쥐덫 탈출작전'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극장을 나섰다. 밖에서 나를 반기는 가을밤이 <쥐덫>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는 블랙박스 소극장처럼 잔잔한 검정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태그:#쥐덫, #계명대학교 , #연극뮤지컬 전공 , #아가사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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