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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관심이 있지만, 특히 요 근래엔, 현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극도의 '절망감'의 실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죠.

마침 추석, 20~30대 젊은 세대들이 기성 세대들에게 '결혼은 했니, 취업은 했니, 연봉은 잘 받니' 하며 '인생의 중간 성적표'를 받아드는 날입니다. 하여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청년, 절망, 희망 따위의 검색어를 조합해 그 결과들을 살피다, 우연찮게 SNS에 올라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했다는 김무성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출처는 그의 트위터.
▲ 청년희망펀드 가입 김무성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출처는 그의 트위터.
ⓒ 김무성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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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펀드'. 저게 무얼까. 과거의 저였다면 '아, 청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든 펀드구나' 하고 대충 이해하고 넘겼겠습니다만 이명박 5년간 이름과 그 실체가 다른 정책을 너무도 많이 목격해 온 저는 어느 순간 '이름'만으로 그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직접 검색을 해 보았고, 청년희망펀드 홈페이지에 접속해 '주요 사업소개'를 클릭해보았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을 의심했습니다. 27일 17시 현재, 모인 돈을 어떻게 관리해 어떻게 쓰겠다는 '정책'이 소개돼 있어야 하는 홈페이지의 '주요 사업소개'페이지를 클릭하면, '아이디어 공모' 메뉴만 확인이 됩니다.

설마 모금 계획만 있고 정말로 공개된 정책이 아무것도 없겠나, 싶어 관련 기사도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사업 계획에 대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발언이 있더군요. 그런데 이것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직된 펀드를 '청년 구직자 지원'과 '민간 일자리 창출', 그리고 취업의 기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을 돕는 데 쓰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인데, 적어도 '시민'인 제가 알기론 그런 것들은 이미 노동부에서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관련 예산이 늘면 좋겠죠. 하지만 일단 예산만 늘리고 보자는 정책은 사실상 '정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기부'도 아니고 '펀드' 아닙니까. 이럴 거면 그냥 기부라 하든가. 펀드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목표 모금액도 없고, 모인 돈은 어떻게 쓸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자는 식이라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정부 정책이 두서없는 경우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청년 희망'이라는 말을 걸고 전시행정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조선, 지옥불반도, 오포세대… 온갖 절망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조적인 웃음을 웃는 것으로 인생을 사는 '청년'들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청년은 기성세대가 일군 땅 위에 무위도식한다는 어떤 생각

김무성 대표가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는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린 날짜는 지난 9월 23일. 그가 지금의 청년 세대를 향해 '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절망적 과거를 모르고, 우리는 안 된다는 자학적 절망감이 팽배했던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여론의 빈축을 산 것이 바로 그 전 달 13일의 일입니다. 불과 한 달 하고도 열흘 만에 '절망적 과거를 잊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겠다고 마음이 바뀌신 계기를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 청년들이 절망적인 과거를 모른다고 믿는 근거도 궁금합니다.

특히, 어쩌면 '청년 혐오'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할 저 발언이 있던 날 같은 자리에서 그가 했던 발언, 즉 '순국선열과 기성세대가 흘린 피땀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만들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단호한 어조로 묻고 싶습니다.

순국선열과 기성세대가 이 땅의 거룩한 발전을 일군 사실, 인정합니다. 그런데 경제라는 게, 안보라는 것이, 일단 한 번 올려 놓고 쌓아 놓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증식합니까? 아버지 세대들의 '잘 살아보세'가 경제 발전의 단일한 원인이었나 하는 데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그 성과를 고스란히 인정하더라도 그 발전을 유지하고 지켜내고 더 발전시켜온 것은 순전히 우리의 딸, 아들이 이루어낸 성취입니다.

또한, 대표님께서 기성세대의 땅에 무위도식한다고 믿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훌륭한 이력서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입사해도 살인적 강도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죠. 기성세대가 만든 땅 위에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산다기엔 이들은 너무 고생이 심합니다.

'복지 과잉으로 인한 국민의 나태'를 걱정하는 김무성 대표님의 생각과 달리, 이 땅 위 젊은 세대들은 전세계에서 오래 일하기로 손꼽히며, 일부는 국민소득 3만불 임박이 무색하게도 시간당 6천 원도 되지 않는 임금으로 종일 일하고 있습니다.

'잘 살아보세', 현 20~30대들도 함께 일궜다

그리고 제발, '그래도 굶지는 않는다'는 뿌듯함에서 이제는 그만 나옵시다. 끼니를 걱정하는 고통은 물론 극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식을 할 정도의 가난을 겪는 인구가 크게 줄어든 데 기성세대의 공이 크다는 사실이, 현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고용 불안정성이나 저임금 등의 고통을 '작은 것'으로 폄하할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실체도 없는 희망 펀드. 대통령도 가입하고 총리도 가입하고 여당 대표도 가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청년'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순국선열과 기성세대만이 아닌 이 땅의 현재 이십대, 삼십대들 역시 이 나라를 '함께 일군'이들로 '인정하고', 세대의 고통에 대해 함께 하는 것이 계획조차 없는 펀드에 돈을 모으는 것보다 우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태그:#청년희망펀드, #김무성,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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