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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옷 색상을 고민하다 가장 편한 옷을 골라 집었다. 사진을 생각한다면 예쁘게 입고 싶었지만, 날씨와 이동 시간을 고려해보니 절로 소재와 활동성을 택하게 된다. 연중 최고로 더운 5월의 인도 폭염에 대비하는 정신력까지 함께 장착했다. 그렇게 타지마할 행 채비를 마쳤다.

아그라(Agra) 행 기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뉴델리역. 이곳에서는 아수라장인지 진풍경이지 모를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역에서 잠을 자는 수많은 사람들. 물론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주위에 흐트러진 집기를 보아하니 하루 이틀 머물지 않은 듯한 사람도 보였다.

세상 모르게 자는 사람들을 장애물 넘듯 피하고 넘어가며 플랫폼 안에 들어섰다. 하지만 우리가 타야 할 곳의 승강장 번호가 보이질 않아 기차역 전체를 돌고 돌았다. 플랫폼 사정도 마찬가지인 게 내 집처럼 드러누워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여야 했다.

인도 사람들은 뭐가 신기한지 나와 친구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철창만 없지 거의 우리 속에 갇힌 희귀동물을 구경하는 수준이다. 물어물어 알게 된 승강장은 따로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기차를 보고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는데... 허허, 어떻게 타야 하지? 오전 10시 15분 기차였지만 기차는 10분씩, 10분씩 지연되어 결국 11시가 넘어서 역에 도착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진짜 이렇게 늦을 줄이야.

"그래도 기차가 온 게 어디야. 난 오지 않을 줄 알았어."

델핀과 안토니는 기차가 와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앞을 스쳐 지나가는 기차. 좌석 등급에 따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꼬리 칸은 창문도 없는 공간에 닭장처럼 사람들이 고개만 내밀거나 매달려있었다.

안토니와 델핀은 "저 칸을 타야 한다면 타지마할에 가지 않겠다"며 질겁을 했다. 저 북새통에 에어컨 없이 3시간을 견딘다는 건 거의 지옥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도사람은 우리가 꺼렸던 그 칸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좌석은 침대칸이었다. 그나마 닭장 같은 앞칸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 안토니와 델핀은 눈살을 찌푸리며 별도로 가져온 시트를 깔았다. 건너편 침대에는 인도 4인 가족이 탔다. 그들도 시트가 더럽다고 느꼈는지 아예 전부 위 칸으로 치워버렸다.

타지마할 무료 개방, 릭샤 기사와의 잘못된 만남

기차를 타러 온 것일까? 잠을 자러 온 것일까?
 기차를 타러 온 것일까? 잠을 자러 온 것일까?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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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처럼 등급이 확연히 나뉜 기차를 타고서 아그라 칸트(Agra Cantt) 역으로 향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 흔한 도착 방송도 기대할 수 없는 인도 열차. 정차된 창문 밖 주위 풍경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폐허와 쓰레기 더미 투성이다.

쓰레기산 뒤에 널려있는 빨랫줄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신나게 쓰레기를 만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저 정도면 환경을 탓할 수도 있을 텐데 사람들의 모습에선 조화와 적응만이 보였다. 내 눈에는 황량하고 오물 처리장 같은 곳이 저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즐거운 놀이터이다. 적어도 자신의 환경이 불행의 원인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딸을 재우고서 한참 동안이나 창밖을 바라보던 어머니.
 딸을 재우고서 한참 동안이나 창밖을 바라보던 어머니.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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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는데 예정시각에 맞게 도착한 건 뭔지 싶다. 아그라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숨도 못 쉴 만큼의 불볕더위를 느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릭샤 기사들은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더위보다 옆에서 쉬지 않고 흥정하는 릭샤 운전사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대충 가격이 맞는 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릭샤 기사가 수첩 한 권을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수첩을 펼쳐보니 이제껏 운전해준 관광객들이 쓴 메시지였다. 델핀과 안토니는 프랑스 사람이 쓴 메시지를 보고선 "이 사람 좋은 사람 같아"라고 말했다. 나도 한국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억지로 쓴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 하루 1000루피.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가겠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타지마할이었지만, 그는 온종일 운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더러 오늘은 타지마할 입장도 무료인데 자신을 만난 것 또한 행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날씨도 덥고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 그냥 그와 함께 다니기로 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뭐라도 먹고 타지마할 구경하세요."

그는 타지마할 대신에 자신이 아는 레스토랑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릭샤를 타면 늘 기사들은 목적지보다 더 좋은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아마 나보단 기사 자신에게 좋은 곳일 테다. 우리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얼마 안 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수완을 빼앗고 싶지도 않았고, 좋다고도 하니 그 말을 믿고서 식당을 가보았다.

음식은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식당을 나오자마자 다른 흥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무료개방이라 사람이 많을 테니 타지마할 가이드를 붙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500루피였는데, 가격을 떠나서 그냥 패키지처럼 모든 것을 씌우려는 그 마음이 싫었다. 자유여행이 아니라 억지로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델핀과 안토니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라 나도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기사가 소개해준 가이드를 따라서 타지마할의 남문 입구로 갔다.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낱낱이 확인한 후에야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라진 가이드, 일행의 가방을 노리는 아이들

타지마할 입구. 여기서부터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타지마할 입구. 여기서부터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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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까워지는 타지마할. 이 더운 날씨에 닭살이 올라올 정도로 온몸의 신경을 깨워버렸다. 경이로운 광경을 직접 마주하고 있자니 참 신기하고 어리둥절했다. 완벽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는 각도마다 달라지는 건물의 비율과 대칭 형태였다. 볼수록 낭만적인 구조는 고상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도 장엄함을 발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했다.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가이드는 날씨와 해의 움직임에 따라 타지마할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건물의 섬세한 장식을 보는 것도 타지마할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무료라서 좋을 줄 알았는데 수많은 사람에게 떠밀려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게다가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곳을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그래서 뭔가 느긋하게 보지 못하고 쫓아가는 기분이었다. 여행 중 혼자가 좋을 때가 있고, 여럿이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정말 혼자가 되고 싶었다.

타지마할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을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때 가이드는 설명이 다 끝났다며 남문 앞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떠나버렸다. 우리 셋은 여기까지 온 것, 기다려보자며 내부로 들어가는 줄을 섰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을 교묘하게 새치기하는 일행이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서너 명, 이상하게도 그들은 우리 가방을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저 가방을 어떻게 훔치지? 아, 빨리 가져가고 싶은데..."

대놓고 우리 가방을 가져가겠다고 노리는 사내 아이들. 나에게 말을 걸면서 한 눈을 팔게 하려는 그 우둔한 수법이 가엾기까지 했다. 내 가방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이 오래 지속할수록 가방을 더욱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타지마할 안으로 들어섰다. 1년에 한 번 볼 수 있다는 왕과 왕비의 실제 무덤까지 운 좋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특별한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무덥고 습한 공기까지 더해졌다. 아무리 위대하고 역사적인 공간이라도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처럼 온몸이 나른해졌다. 이미 나는 녹초가 되었다.

어떻게 이 경이로움을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인도는 정말 말도 안되는 나라다.
 어떻게 이 경이로움을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인도는 정말 말도 안되는 나라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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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손짓하며 보석이 박혀있던 벽장식을 보여주던 직원은 돈을 요구했다.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많은 인도 사람이 사진을 찍으며 안전요원과 다투는 중이었다. 타지마할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괴롭게 했다.

게다가 타지마할을 나와서 공원을 걷고 있는데 아까 내 가방을 노렸던 10대 서너 명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미 훔쳤냐? 아니면 이제 훔칠 거냐?"

갑자기 델핀이 그들에게 큰소리치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델핀 말이 끝나자마자 안토니의 크로스 백을 낚아채려고 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터져버렸다. 우리가 크게 화를 내자 그들은 줄행랑을 쳤다. 인도를 상징하는 감동적인 장소에서 벌어지는 너무 씁쓸하고 안타까운 행동이었다.

정말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애처로운 국민의식이다. 릭샤를 타면서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기다렸다는 이유로 팁을 요구했다. 자꾸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일행 셋 모두 더위에 지쳤다. 정말 이제는 조용하고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베로이 아마르 빌라스(Oberoi Amar Vilas) 로비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전경.
 오베로이 아마르 빌라스(Oberoi Amar Vilas) 로비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전경.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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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 기사가 데려다준다는 곳을 마다했다. 우리는 매우 근사해 보이는 어느 호텔로 이동했다. 오베로이 아마르 빌라스(Oberoi Amar Vilas)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선정되었다는 곳이었다.

호텔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바라보는 타지마할은 눈앞에서 바라보았던 모습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어쩌면 모든 게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충분하고도 충분한 타지마할의 운치를 느꼈다. 맥주 한잔과 함께 심신을 안정시켰다. 호텔에서 나온 뒤 릭샤 기사는 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려 했다. 급기야 옷가게에서는 어떻게든 옷을 팔려고, 보석 가게에서는 보석을 팔아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여유를 갖고 멀리서 본 타지마할이 더 좋았다

해질녘 노을에 물들어가는 타지마할.
 해질녘 노을에 물들어가는 타지마할.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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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격을 원하느냐? 얼마면 사겠느냐?"

그 말을 듣고서 원하는 가격을 말하기엔 이미 인도 사람들에게 많이 지쳐있었다. 릭샤 기사는 옆에서 필사적으로 우리를 부추겼다. 하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자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기사는 역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좋은 곳을 많이 구경시켜 주었느냐, 팁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는 우리를 데려간 가게에서 별다른 수완이 없자 마음이 급해졌나 보다.

역에서 내리며 그에게 100루피를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이것밖에 안주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더 주고 싶은 마음보다 오히려 주었던 돈을 돌려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 릭샤를 탔을 때는 방명록을 보고서 안심했지만 어쩌면 그것도 그가 애써 만든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무엇이 이들을 돈에 시달리고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식시간. 위스키, 킹피셔 그리고 모히또.
 휴식시간. 위스키, 킹피셔 그리고 모히또.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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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로 돌아가는 열차는 예상대로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아마 혼자 왔다면 수많은 시달림 속에 이미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혼자 말고 함께 와야 하는구나.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게...

늘 여행 중에는 이렇게 생각이 변한다. 델리에 도착해서는 어째 아침보다 더 많은 노숙자가 보였다. 그들을 밟지 않게 조심히 움직였다. 릭샤 기사들은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기차에서 마음을 진정했는데, 스트레스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다가오지 않은 릭샤를 골라 탔다. 가는 길을 헤매며 길을 찾지 못하는 릭샤 기사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전날 릭샤 기사를 겪으며 중요한 지점마다 길을 외운 것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인도의 아름다움에 반하기도 사람에 지치기도 했던 하루. 알면 알수록 씁쓸하고 감동할 것도 많았던 하루. 의심하면 힘들어지고 믿으면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이 되었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진짜 인도를 호되게 겪었던 하루. 무료입장이 아닌 날, 다시 타지마할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긴 하루였다.


태그:#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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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설레며 살고 싶은 자유기고가. 현재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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