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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스페인 마요르카로 일주일 간 가족여행을 떠났다. 마요르카 섬의 수도인 팔마로 당일 관광을 가고자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서 걱정이 밀려왔다.

팔마까지는 약 1시간 거리. 6개월 딸, 5살 아들 때문이라도 꼭 앉아서 가야 했지만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사람들이 좀 빠진 후에 타자는 생각에 자연스레 다음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모여든 사람들, 이렇게 기다리다간 버스를 못 탈 수도 있겠다 싶었다. 30분 뒤에 다음 버스가 도착했고 남편이 유모차를 짐칸에 넣는 동안 나는 재빠르게 아이 둘을 데리고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제발 한 자리라도 있어라 싶었지만 이미 버스 안에 들어섰을 때는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기띠 없이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서 한 아이 아빠가 감사하게도 자리를 양보해 주었고 5살 아들은 끝내 앉지 못한 채 아빠와 서서 가게 되었다.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을 거 같은데 밀려드는 사람들. 이대로 괜찮을까 싶었는데 딸과 개월 수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아기를 안고서 들어오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남일 같지 않았지만 분명 "저들에게 누군가 자리를 주겠지"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요지부동이던 사람들. 결국 그 부부는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버스가 출발했다.

꽉 찬 만원 버스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건 쉽지도 않거니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같이 서 있기도 힘들었는지 아기 아빠는 아예 내리는 문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교대로 아기를 볼 건가?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내 시선은 자꾸 그 부부에게로 향했다.

아기가 쪽쪽이도 뱉고 자세도 불편한지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아기 엄마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반갑다고 말해야 할런지, 두 사람은 스웨덴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알아들으니 더 이입되는 그들의 상황.

아기 엄마가 너무 힘들었는지 아빠와 교대를 원했고 책을 읽던 아빠는 바로 아기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아빠에게 안기자마자 더 심하게 울어대는 게 아닌가. 엄마 표정은 지칠 때로 지쳐 초점이 없고 눈이 풀린 상태인데 이쯤 되면 누구 하나 자리 비켜줄 만한데 내가 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양보 할 사람이 없나? 이놈의 오지랖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 내 레이다망에 포착된 두 사람. 내 앞 좌석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저기 죄송한데 아기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없나요?" 말이 목구멍까지 찰랑찰랑거렸지만 끝내 넘어가진 않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처럼 모르는 사람 머리를 후려쳐가며 "야 자리 안 비켜" 하기엔 현실은 내가 쇠고랑을 찰지도 게다가 여긴 내 나라도 아니고 그보다 요즘 10대들은 UDT보다도 더 무섭다 하지 않았는가. 

"왜 비켜주지 않는 걸까?" 하다 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입장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역민이라면 늘 관광객이 많은 이 버스에서 자리를 비켜준다는 게 신물이 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리 양보하기에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저렇게 아기 엄마가 힘들어하는데 아무도 본채도 안 하는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내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뿐이었다.
 
남편이 "다리 안아파?" 하며 찍어준 찐빵이 된 우리 모습.
 남편이 "다리 안아파?" 하며 찍어준 찐빵이 된 우리 모습.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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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도 쉽사리 자리를 내주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들이 다리 아프다고 징징거려 두 아이 모두를 내 무릎에 앉히고 있던 상황. 내가 자리를 양보하면 저 엄마처럼 서서 가야 하는데 과연 괜찮을까?

사람들에게 자리 비켜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누군가 자리 비켜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이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지만 또 한다면 할 수 있는 일, 선택은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여기 앉으실래요?"

아기 엄마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들려온 스웨덴어에 자리까지 비켜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게 나라서 놀랄 법도 할 테다.

"감사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곧 잘 거 같아요."

스웨덴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사람들은 느낌적으로 내가 자리를 내주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러고 싶었다기보다 사람들이 제발 이 상황을 주목해주길 바랐다. 혹시 이러는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정말 괜찮냐고 한 번 더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아이를 재우려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여기 앉아요. 지금 아기가 먹어야 할 거 같은데요."

나는 남편에게 5살 아들을 넘기고 딸을 꼭 껴안고서 자리에서 나오려 했다. 그런데 내가 한 걸음 떼려는 순간 뒷사람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저기요, 여기 앉으세요."

뒤를 돌아보니 서 계셨던 나이가 지긋한 여성 한 분.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긴 했는데 그게 왜 하필 당신인가요? 한국에 계신 엄마와 비슷한 연배라 마음이 좀 뜨끈해지기도 또 죄송스럽기도 했다.

근데 이왕 서기로 한 거 감사히 자리를 건네받고 남편과 딸을 앉혔다. 그리고 나는 아들과 그 스웨덴 엄마가 서 있던 자리로 갔다. 내 자리에 앉게 된 스웨덴 엄마는 모유수유를 하기 시작했고 이내 버스에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절반 정도 여정이 남은 상태, 버스는 30분을 더 달려야 했다. 남편이 자리를 바꾸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 노년 여성도 내 근처에 서게 되며 눈을 두어 번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서로 미소를 띄어 보였다.

이상하게 공간은 콩나물시루처럼 좁고 답답하긴 했지만 서 있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앉아 있는 것 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종착역에 도착하고 짐칸에서 유모차를 찾고 있는데 스웨덴 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까 버스에서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쪽 아니었음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수심이 가득했던 버스 안에서와 달리 아기의 부모들은 환히 웃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좋은 하루보내시라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버스 터미널을 나선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들이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다리 아파서 걷기 싫어."

버스에서 앉고 서기를 반복했던 아들이 여행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또 기로에 섰다 선택의 시간이다. 나도 남편도 지친 탓에 쉽게 가기로 마음먹고 달콤한 제안을 했더니 갑자기 기적(?)처럼 다리를 잘 움직이는 아들내미.

결국 팔마 대성당, 시내, 해변 유명 관광지는 다 제쳐두고 첫 번째 방문지로 장난감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몇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이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runch.co.kr/에도 중복 게재 됩니다.


태그:#만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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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설레며 살고 싶은 자유기고가. 현재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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