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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부산대학교 본관 로비에 마련된 고현철 교수의 분향소를 찾은 동료 교수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고 교수는 지난 17일 오후 총장 간선제 도입을 규탄하며 투신해 사망했다.
 지난 18일 오후 부산대학교 본관 로비에 마련된 고현철 교수의 분향소를 찾은 동료 교수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고 교수는 지난 17일 오후 총장 간선제 도입을 규탄하며 투신해 사망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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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질 것이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4층 높이 학교 건물에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소설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과거 오랜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었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28년이 지난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실화다.

지난 17일 오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고현철(54) 교수는 대학본부 측의 일방적인 움직임에 반발하며 대학 본관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교수를 죽음으로까지 내몬 것은 '총장 직선제 폐지'였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유서에서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 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부산대에서는 총장 직선제로 선출된 김기섭 총장이 이를 그대로 지키겠다고 강조해오다 뒤늦게 총장 간선제로 입장을 선회하며, 교수회와 법적 소송까지 벌이는 마찰을 빚어온 바 있다. 김 총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으며, 부산대는 총장 선출 방식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관련 기사 : 교수 죽음까지 불러온 부산대 사태, 왜?).

꼭두각시 총장 원하는 정부

총장 직선제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각 대학에서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총장을 선출하자는 취지에 따라 점차 저변을 넓혀 왔다. 교수로 대표되는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고루 반영함은 물론, 총장의 독단적인 전횡을 사전에 견제 및 방지하자는 의미였다. 이러한 총장 직선제의 전격적인 폐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아래 교과부)가 강행 발표했던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 주된 계기였다.

교과부는 직선제가 오히려 교수들의 '정치화'를 부추겨 교육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교과부가 '총장 직선제 폐지 및 총장 간선제의 도입 유무'를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 지표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평가에서 하위 15%에 속하는 대학은 예산권을 쥔 교육부로부터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교육부의 기준에 맞춰 구조조정을 해야만 한다. 결국 총장 간선제를 도입하지 않는 대학은 불리할 수밖에 없도록 지속적인 압박이 가해진 셈이다.

이처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강요된 총장 간선제는 국·공립대학의 자율성을 무참히 짓이겨버린다. 총장의 선출 과정은 물론 그 이후에도 대학은 교육부, 즉 정부와 청와대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국·공립대의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공주대학교는 교육부 지시에 따라 간선제를 통해 총장 후보를 선출했으나, 교육부가 별다른 설명조차 없이 임용권자인 대통령에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15개월 째 교무처장이 총장직을 대리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경북대 등도 같은 문제로 장기간 총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청와대의 입맛에만 맞는 '꼭두각시' 국·공립대 총장만을 선출하겠다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학내 최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총장부터도 청와대의 입김을 피할 수 없는 대학이 교육과 연구, 학생 복지 등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만한 여지는 없다. 결국 부산대에서 벌어진 '교수 투신' 사태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국 국·공립대에서 오랜 시간 지속돼 왔던 총장 직선제 폐지와 관련한 갈등이 이어지다 못해 끝내 폭발해버리고 만 것이다.

교육부의 일방적 통제, 어불성설이다

교수 투신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17일 오전 부산대학교서는 전국거점국립대교수연합회와 전국공무원노조대학본부가 총장 선출 관련 부산대 교수회의 직선제 선출 입장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수 투신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17일 오전 부산대학교서는 전국거점국립대교수연합회와 전국공무원노조대학본부가 총장 선출 관련 부산대 교수회의 직선제 선출 입장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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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총장 직선제가 만능은 아니다. 교과부의 지적대로 단과대·학과 별로 일종의 파벌이 생겨날 수 있고, 선거가 과열돼 무리한 공약이 남발됨은 물론 등록금 인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충분히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에 있다. 일말의 밀접한 관계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예산과 총장 직선제의 폐지 여부를 결부해 국·공립대를 통제하려 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어불성설이다. 막대한 자본을 무기 삼아 대학을 협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총장 직·간선제 문제와 관련한 대학 평가 지표를 없애고, 각 대학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총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더 이상의 '총장 없는 국·공립대'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이후 총장 선출과 관련해 발생하는 문제는 교육부의 예산 지원과는 별개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선에서 교육부와의 협의를 통해 감시와 견제를 위한 제도와 장치 등을 도입해 차차 개선해나가는 것이 맞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원래 시끄러운'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르자는 것이다.

애초 대학 개혁의 한 가지 수단으로 도입했던 총장 직선제 폐지였으나, 교육부는 대학 개혁보다는 오히려 총장 선출 방식의 변경 여부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어버린 모습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두고, 대표적 사회 병리 현상인 '목적 전치 현상'으로 설명한다.

교육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당혹스럽고 안타깝다'면서도 총장 직선제 폐지 정책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교육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국·공립대 교수들에게 '저항할테면 계속 저항해보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목적 전치 현상'이 한 교수의 목숨을 허무하게 앗아갔다.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는 교수의 말처럼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다시금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만 한다. 교육부가 앞뒤 맞지 않는 정책을 되돌아봐야만 하는 이유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부산대, #투신, #총장 직선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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