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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自)는 원래 사람의 코에 대한 상형이었다.
▲ 自 스스로 자(自)는 원래 사람의 코에 대한 상형이었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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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얼굴의 중심이자 기둥이다. 그래서 자신을 지칭할 때 손으로 코를 가리키는지도 모르겠다. 관상학에서는 코를 심변관(審辨官)이라 하여 사물을 분별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코가 비뚤면 생각도 바르지 못하다(鼻歪意不端)는 중국어는 본질이 나쁘면 그에 따라 모든 것이 나빠진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라이얼 왓슨이 쓴 <코-낌새를 맡는 또 하나의 코 야콥슨 기관>이라는 책에서도 인간의 코가 단순히 냄새를 맡는 역할뿐 아니라 낌새, 즉 육감을 관할한다고 주장한다. 콧구멍 안쪽 1.5cm 정도에 위치한 한 쌍의 작은 구멍인 야콥슨이 인식과 정서 등 원초적이고 섬세한 감정 정보를 관장한다는 것인데, 코가 인간의 인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의 오대 형벌 중 하나인 의형(劓刑)은 이런 코를 베는 것으로 얼굴의 정중앙에 위치한 코를 베어 심리적 모욕감을 주는 동시에 인간의 인식 능력을 제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죄는 원래 코를 고문도구로 잘라낸다는 의미로 코(自)와 고문할 때 사용하던 끌의 상형인 신(辛)이 결합된 형태(辠)였으나 진시황이 황(皇)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촘촘한 그물의 상형인 지금의 죄(罪)로 바꾸었다고 하니 코를 베는 것이 죄를 벌하는 수단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자(自, zì)는 원래 사람의 코에 대한 상형이었다. 그런데 자(自)가 무위자연(無爲自然)처럼 '스스로, 저절로'나,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처럼 '~로부터' 등의 의미로 더 널리 쓰이자 코 비(鼻)를 만들어 본뜻을 보전한 것이다.

갑골문에 제시된 코의 형태가 관상학에서 가장 복이 많다는, 쓸개를 매달아 놓은 현담비(懸膽鼻)의 모양을 닮은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갑골문의 코는 사람의 기운과 재산을 나타내는 콧대와 콧볼이 중점적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의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自(  )自(  )' 형태의 글귀를 가끔 만나게 된다. 자유자재, 자급자족, 자화자찬, 자포자기, 자문자답 등 생각할 수 있는 답이 많은데 어떤 것을 먼저 떠올리느냐에 따라 그날의 심리 상태를 알려준다고 한다.

<주역>의 건괘와 곤괘에 대한 설명에서 '하늘의 건실한 운행을 본받아 군자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고, 깊고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받아 안아야 한다'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은 오래도록 군자의 마음가짐을 다스리는 말로 사랑받아 왔다.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淸華)대학의 교훈으로 정문에 이 글귀가 적혀 있다.

<서경>에는 '자용즉소(自用則小)'라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우뚝 솟은 코가 자존감(自尊感)의 상징이면서 또 자칫 오만함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그:#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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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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