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밥나라'다!"

내 친구는 참 특이했다. 낯가림이 전혀 없는 성격도 그랬지만 취향도 남달랐다. 특히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동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루는 내게 전국의 모든 '김밥나라' 체인점을 가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고 화음을 넣어 부르고 다녔다.

그녀의 말은 허무맹랑한 데가 있었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다. 아직도 전국의 김밥나라를 모두 방문해 보겠다는 그 계획을 기억하고 있을까? 직장맘이 되어 버린 그녀에게 이제 그건 잊힌 젊은 날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허무맹랑한 꿈을 대신 이루어나가기로 했다. 그 꿈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한 가지 다른 점은 있다. 내가 전국을 돌고 싶은 곳은 '김밥나라'가 아닌 '만화카페'라는 점. 그녀에게는 김밥이 소울 푸드였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늘 만화책이 허기진 정신을 달래주는 유일한 소울푸드였기 때문이다.

도서대여점, 만화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어릴 적, 동네 도서대여점에서 처음 만화를 접했다. 집에 빌려갔다가는 혼이 날 게 뻔해 늘 까치발을 하고 서서보곤 했다.

"보려면 빌려가야지.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아주머니의 말은 이해가 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본 만화책은 바로 <유리가면>이었다. 가난한 집의 여자아이가 연기에 소질을 발견하며 성장해 나간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훗날 알았지만 손꼽히는 고전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만화를 즐겨봤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을 배웠고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었다. 사실 어른이 된 후에도 별 일이 없을 때는 종종 만화책을 보곤 했다. 하지만 어릴 때처럼 기쁘다기보다는 허무한 마음이 컸다. 몸은 컸지만 마음은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나는 좀처럼 왜 달라지지 않나하는 자책 때문이기도 했다. 꼬마였던 친구들이 사회인이 되고 가정을 꾸릴 동안 나는 여전히 그 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만화가 그리고 만화가 있는 공간이.

달라지지 않은 나와는 대조적으로 만화가 있는 곳은 변화하고 성장해나갔다. 짜장면을 시켜먹고 퀴퀴한 냄새가 나던 공간이 만화 카페로 모양새를 바꿔갔다. 고양이가 주인이라는 곳부터 누울 수 있는 골방 형태의 가게까지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전혀 만화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인천의 한 골목에 소박하고 귀여운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귀여운 토끼가 맞이하는 소박한 만화방
 귀여운 토끼가 맞이하는 소박한 만화방
ⓒ 최하나

관련사진보기


전반적인 분위기가 소박하고 포근하다. 의자나 테이블은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소박하고 포근하다. 의자나 테이블은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 최하나

관련사진보기


'바니의 만화방'이라는 상호와는 다르게 이곳은 카페에 가까운 곳이다. 기본적으로 만화책이 있고 웹툰도 구비되어 있으며 소설책을 비롯해 보드게임까지 갖춰져 있다. 외부음식을 반입할 수 없어서 그런지 좀 더 깔끔하다. 요금제는 여타 가게와 비슷하다. 후불제로 머무른 시간만큼 계산할 수도 있고 커피나 라면이 포함된 선불제 패키지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소박하다. 비싸 보이고 육중한 가구나 집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은은한 벽의 색깔이나 아기자기한 소품에서 주인의 취향이 느껴진다. 실제로 '바니의 만화방'의 인테리어는 직접 한 것이란다. 덕분에 품은 많이 들었지만 말이다.

있을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있을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 최하나

관련사진보기


추억의 그 만화 '유리가면'도 있다. 무기한 중단되었던 연재는 현재 간간히 이어지는 걸로 안다.
 추억의 그 만화 '유리가면'도 있다. 무기한 중단되었던 연재는 현재 간간히 이어지는 걸로 안다.
ⓒ 최하나

관련사진보기


사실 가게의 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만화책의 종류가 매우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로 손님들이 많이 찾는 작품 위주로 선별이 되어있는데 즐기기에 불편함은 크게 없다. 특히나 동물 관련 만화나 요리관련 만화 섹션은 따로 구분이 되어있어 찾기 편리하기도 하다. 그래픽노블도 제법 있다.

얼마 안 남지만... 손님 덕분에 '보람'

음료가 포함된 선불제를 이용하면 귀여운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내온다
 음료가 포함된 선불제를 이용하면 귀여운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내온다
ⓒ 최하나

관련사진보기


여기까지 읽다보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만 이 가게의 주인도 젊다. 하고 싶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창업을 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사회생활을 회사가 아닌 자영업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메뉴에 음료 혹은 라면이라고 적어도 사람들이 둘 다 주는 건 줄 알았다거나 혹은 커플 세트인줄 알았다고 따지기도 하시고, 패키지 결제하시고 3시간 초과하고 그냥 태연히 가는 커플들도 있고. 그럴 때는 너무 서럽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맷집이 많이 강해진 거 같아요."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일명 '진상의 일화'를 그녀도 겪은 듯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녀는 성장해가고 있다는 걸 나도 느꼈다.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손님 응대가 좀더 자연스러워지고 시스템도 많이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만화도 실컷 볼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지만 이 일은 결국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다. 손님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손님 덕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는 그녀는 그래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가게를 운영하며 보람을 느낀 것도 손님들 덕분이에요. 단골 고객 분들이 가끔 만화방이나 대여점이 점점 폐업하는 시기에 만화방 생겨서 좋다 이야기 해주시고 때론 아이랑 같이 방문하셔서 독서하는 모습을 보면 좋더라고요. 아이들을 위해서 마법천자문이나 동화책도 마련했거든요. 특히나 아버지가 아들이랑 오는 모습을 보면 괜히 흐뭇하더라고요."

사실 만화카페는 많이 남는 업종은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몇만 원 혹은 몇십 만원이 오가는 게 아니라 단 돈 몇천 원으로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오늘도 꿋꿋하게 자신의 가게를 지켜나가고 있다. 인터뷰에서 자신을 '88만원세대, 청년창업가 유가희 입니다'라고 밝힌 것처럼 청춘의 패기로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바니의 만화방'에서 그려가고 있었다.


태그:#바니의만화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