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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이면 30년 세월 삼계탕을 끓여 어른들을 대접하는 집에 모인 어른들
▲ 초복 초복이면 30년 세월 삼계탕을 끓여 어른들을 대접하는 집에 모인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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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7월 13일) 오전 11시부터 어르신들을 모시고 삼계탕 대접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삼계탕을 드시고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남, 62세. 경기안택굿보존회장) 회장 집에서 어르신들께 보내온 문자다. 그 문자를 받기 일주일 전부터, 어르신들이 전화로 확인을 한다. "고씨 할아버지 올해도 삼계탕 하오?"라는 질문이다. 매년 초복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어르신들은 그 날을 기억했다가 이 집으로 찾아오신다.

삼계탕 300그릇. 적은 양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끓여서 대접하는 삼계탕은 일반 식당의 삼계탕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집만의 비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집 삼계탕을 매년 초복이면 오셔서 드셨다는 마을의 한 어르신은, 딴 집에서 먹는 삼계탕은 맛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만큼 정성이 깃든 음식이다.

생닭 300마리에 인삼, 마늘, 찹쌀, 대추 등을 넣고 있다(12일 오후)
▲ 준비 생닭 300마리에 인삼, 마늘, 찹쌀, 대추 등을 넣고 있다(12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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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들
▲ 재료 삼계탕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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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재료 속에 정성까지 깃들어

고성주 회장이 조리하는 삼계탕은 그야말로 영양식이다. 하루 전날부터 준비를 하는 삼계탕을 보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전날 황기를 물에 넣고 몇 시간을 푹 끓인다. 황기는 전분, 자당, 섬유소, 포도당, 비타민B 등이 풍부하며 만성쇠약에 효과가 있다. 또한 체질을 개선시키고 전신근육의 긴장을 높여 부종을 없앤다.

황기를 삶아 낸 물에 소 꼬리뼈와 다시마, 파뿌리, 북어머리 등을 넣은 후 10시간 이상을 고아낸다. 그런 다음 마늘과 양파, 감자 등을 곱게 갈아 함께 끓여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며 걸쭉하게 변한다. 그 국물에 아침부터 닭을 넣고 삶으면 영양가 높고 맛있는 삼계탕이 되는 것이다.

"이 집 삼계탕을 먹고 나면 딴 집 삼계탕은 심심해서 맛이 없어. 매년 초복에 이렇게 고 회장이 만들어주는 삼계탕을 한 그릇씩 먹어서 건강을 유지하는가 봐. 정말 한 마을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지."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신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 년이면 몇 차례씩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대접을 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 씀씀이를 아는 어르신들은 초복이 되면 즐겨 이 집을 찾는다.

13일 아침부터 24시간 고안 낸 육수에 닭을 넣고 있다. 뒤편에 고성주 회장
▲ 삼계탕조리 13일 아침부터 24시간 고안 낸 육수에 닭을 넣고 있다. 뒤편에 고성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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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꼬리 등을 넣어 걸쭉한 육수에 집어 넣은 삼계닭
▲ 삼계창 소꼬리 등을 넣어 걸쭉한 육수에 집어 넣은 삼계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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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세월 한 해도 거르지 않아

고성주 회장이 매년 이렇게 초복이 되면 삼계탕을 끓여 인근 어르신들을 모시고 대접을 한 세월이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다고 한다. 이제는 초복이 되면 어르신들은 당연히 이 집에서 삼계탕을 대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2일 오후 고성주씨 집안은 온통 닭 비린내로 가득하다. 마당에 차일을 치고, 비가 뿌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사람이 생닭 안에 대추며, 인삼, 마늘, 찹쌀 등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준비가 되면 냉장고 안에서 하루를 숙성시킨다. 그리고 13일 오전 9시 30분부터 닭을 육수에 끓이기 시작한다.

제9호 태풍 찬홈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오전 6시를 기해서 소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이 집에서 큰일을 할 때면 꼭 비가 내리고는 했다.

"이제는 큰 일만 하면 비 오는 날이 많다보니 면역이 생겼어요. 비가 와도 그러려니 하고 시작해요."

그 정도로 비가 와도 할 일은 하는 사람들이다.

삼계탕과 함께 차린 반찬. 김치종류와 오이지, 노란무, 파 등이다
▲ 반찬 삼계탕과 함께 차린 반찬. 김치종류와 오이지, 노란무, 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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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대접에 한 마리씩 담아 대접을 한다
▲ 삼계탕 커다란 대접에 한 마리씩 담아 대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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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에도 250명 넘는 어르신들 찾아와

오전 11시부터 시작을 한다고 했는데 오전 10시 30분이 지나자 어르신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연습실, 1층 서재, 앞마당, 1층 안채 등에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어림잡아도 150명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이다. 몇 사람이 땀을 훔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음식을 나른다. "여기 술 없소?", "국물 좀 더 주세요.", "휴지 좀 갖다 줘요." 그야말로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먼저 삼계탕을 드신 어르신들이 자리를 뜬다. 그 자리는 금방 치워지고 다시 상을 준비한다. 그렇게 몇 차례 치우고 차리기를 계속하다보니 시간이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그때서야 주변 정리를 마치고, 삼계탕 한 그릇씩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이다. 먼저 삼계탕을 드시고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그릇을 갖고 와서 삼계탕을 달라고 한다.

본인들은 와서 먹었는데 집안에 거동이 불편해 오지 못한 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포장을 잘해 건네준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이다. 삼계탕을 드시고 가면서 "고맙다"를 반복하는 어르신들. 300마리를 준비한 삼계탕에 그렇게 바닥이 났다. 매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지만, 곁에서 보기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와 네이버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초복, #삼계탕, #고성주, #대접, #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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