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앙도서관 2층 인문과학자료실에서 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중앙도서관 2층 인문과학자료실에서 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근로 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 헌법 제32조 제3항

햇볕이 강렬하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팔뚝은 금세 검게 물들어간다. 간간이 바람도 불어온다. 시원한 바람에 여름이 맞나 싶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군데군데 덩이졌다. 그럼에도 덥고 눈부시고 후텁지근한 날씨에 몸이 고생한다. 하지만 일상은 평범하다. 북적북적하던 학교도 고요하다. 그 많던 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그사이 정문 바로 앞 건널목 신호등 불은 파란불에 잠시 멈춰 있다. 저만치서 세차게 달려오던 초록 바탕의 시내버스 한 대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 신호에 맞춰 대기 중인 차들 사이로 누군가가 내게 다가온다. 자세히 바라봤다. 왠지 낯이 익다. 양팔에 하얀 팔토시로 무장한 여성이다. 햇볕에 팔뚝을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녀는 바로 임효선씨다.

그녀는 오늘(지난 3일) 내 사수다.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뛰어가 인사했다. 같이 정문으로 들어갔다. 왼팔엔 '안내'라고 적힌 완장을 끼고, 오른손엔 경광봉을 들고 있는 근로 장학생이 드문드문 들어오는 외부 차량을 통제한다. 학교 안 '스모킹 존' 너머에서는 담배 피우는 남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거기서 밀려오는 담배 연기에 코끝이 매캐하다. 종종 걸음으로 그 구역을 피해 간다. 점점 일터와 가까워진다.

사수의 일터인 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손 세정제가 우두커니 홀로 서 있다. 혹시나 손에 세균이 있을까 봐 손 세정액을 듬뿍 발라 비벼댔다. 알코올 냄새를 간직한 채 휴게실로 들어간다. 주간조(06:00~15:00) 청소노동자들은 이미 퇴근하고 자리에 없다. 휴게실 안 어둠을 더듬어 조명 스위치를 찾아냈다. 그제야 동굴 같던 곳의 시야가 탁 트이기 시작한다.

하루에 2번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녀

사수가 화장실 세면대의 물기를 제거하고 있다.
 사수가 화장실 세면대의 물기를 제거하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사수는 오전·오후조(06:00~8:30, 15:30~18:00)다. 새벽에 다른 여느 청소노동자들처럼 출근한다. 새벽 청소가 끝나고, 다른 동료가 휴게실에 들어갈 때 퇴근한다. 오후쯤 다시 동료가 퇴근한 빈 공간을 채우고, 저녁 무렵 일터를 빠져나간다. 요약하면, 사수는 하루에 출근과 퇴근을 2번이나 한다. 남들은 1번만 출근하고 퇴근하는데,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2년여 정도 주간조로 1층 로비에서 청소했죠. 순환 근무제의 영향으로 이렇게 오전, 오후 청소를 나눠서 하게 됐어요. 벌써 2달 정도 됐네요. 출·퇴근을 2번이나 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답니다. 어차피 6개월마다 한 번씩 바뀌니까, 11월쯤에는 다시 주간 근무조로 바뀔 것 같아요."

오후 청소 준비를 시작했다. 사수는 회사명이 쓰여 있는 작업복을 덧입었다. 나는 주황색 고무장갑을 꼈다. 고무장갑은 청소 필수 도구다. 이거 없으면 청소를 못한다.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고 휴게실을 나오니, 여학생이 지나간다. 뭔가를 잘못 본 듯, 두 번, 세 번 나를 계속 위아래로 훑어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네댓 명의 남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와 내 사수 사이의 연관 관계를 찾는 데 골몰한다. 그런 시선들을 알게 모르게 의식하며 9층까지 올라갔다.

오후 청소는 1층부터 9층까지 쓸고 닦아낸다. 열람실이나 자료실 안을 청소하는 게 아니다. 각 층의 화장실과 로비를 청소한다. 은근히 손 가는 데가 많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 층을 계속 청소한다.

내가 바닥을 쓸고 있다.
 내가 바닥을 쓸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그 학생들은 9층 열람실로 들어갔다. 사수는 곧장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반대로 남자 화장실로 발걸음 했다. 들어가서, 우선 쓰레기통을 비웠다. 바닥이 검게 물든 데도 마른 걸레로 닦아냈다. 그 중간마다 학생들이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청소하니, 들어오는 남학생들마다 깜짝깜짝했다. 다들 어쩜 이렇게 반응이 똑같을까.

2층으로 내려가서 로비를 청소하다 보니, 인문과학 자료실에 학생들이 있다.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소설책을 여유롭게 읽는 여학생이 눈에 띈다. 그 옆에 있는 책상에서 토익 단어를 외우는 남학생도 있다. 그 사이에 내 키보다 큰 책꽂이들이 나란히 줄 서 있다. 며칠 전에 나는 이 책꽂이 중 한 곳에 꽂혀 있던 책을 대출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이다. 누가 닦았는지 수북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했던 먼지는 온데간데없다. 그곳을 청소한 건 지금 2층 화장실을 정리하는 사수다.

"5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7층 화장실부터 가요. 거기가 제 청소의 시작이죠. 7층 화장실과 로비를 청소하는 데만 1시간 정도 걸려요. 딱 거기만 청소해요. 그곳 자료실은 다른 언니가 합니다. 화장실은 변기를 닦고, 바닥을 청소해요. 물론 쓰레기통을 비우는 건 기본이고요.

그 다음으로 2층에 내려가서 7층에서처럼 화장실과 로비를 청소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2층 자료실이에요. 2층 자료실은 중앙도서관에 있는 자료실 중에서 제일 커요. 우선 들어가면 할 게 정말 많습니다. 손걸레로 책꽂이의 먼지를 털어내고, 책상의 오물을 닦아내죠. 밑바닥도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로 닦고. 새벽부터 혼자 청소할 게 너무 많아서 매일 허둥지둥해요."

사수가 화장실 청소를 정리하는 중이다.
 사수가 화장실 청소를 정리하는 중이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새벽에 분주하게 청소하는 사수는 성석제의 소설 제목처럼 학교 안 '투명인간'일지 모르겠다. 2층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료실을 이용하는 학생과 교직원에게 보여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장 어딘가에 달려 있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만 사수에게 관심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렌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사수가 투명 인간이 아니란 걸 단적으로 반증한다. 오늘은 오히려 나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연한 계기로 청소를 시작하다

8층은 열람실이 폐쇄됐다. 학생들의 이용이 줄었기 때문이다. 불 꺼진 그곳은 사람이 없다. CCTV가 허망한 듯 그 어둑한 열람실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남자 화장실을 점검했다. 사수는 7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사수가 왜 청소라는 일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그 당시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어요. 자격증이 있었다면, 전문적인 분야의 직업을 가졌을 텐데. 제 신랑이 신혼 때부터 자격증 따라고 지겨울 정도로 잔소리를 했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결국 안 했는데, 그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네요.

그래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무얼 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유치원 교사 보조로도 일해 봤어요. 그런데 이게 공통적으로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일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월급은 40~50만 원밖에 안 됐죠. 그런데 애들이 셋이다 보니, 씀씀이가 남달라요. 반찬값, 교육비 등등. 아무리 제 남편이 일해도, 부족한 건 사실이죠. 이왕 밖에서 일하는 거 어느 정도 수입이 있어야 했어요.

그러다 지금 참빛관에서 일하는 언니가 청소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언니가 우리 동네 주민이에요. 막상 그 언니한테 권유받았지만, 청소라는 게 어르신들이 한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저도 그 편견이 있었으니까, 제 나이가 애매하단 생각이었죠. 처음엔 우물쭈물했어요. 그러다 몇 달이 지났는데, 그 언니가 일하던 사람이 그만뒀다고 귀띔해주더라고요. 이력서 써보라고 해서 망설이다 결국 썼죠. 그게 시작이에요."

사수가 1층 로비를 대걸레로 닦고 있다. 그 저만치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중이다.
 사수가 1층 로비를 대걸레로 닦고 있다. 그 저만치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중이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사수는 5층 로비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잡지를 줍고 있다. 사수는 2013년 4월에 입사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중앙도서관이 사수의 첫 근무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남들 의식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져요. 사람들은 어쨌든 이 일을 하찮게 보니까요. 그런데 이게 나쁜 짓해서 돈 버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있을까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조에 가입한 이유

그런 사수가 갑자기 10월쯤 돼서 노조에 가입을 한다. 입사 6개월 만이다. 그때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는 생소한 것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던 사수에게 역시 노조 가입은 막연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제가 4월에 입사했을 때 저랑 같이 들어온 언니가 있어요. 도서관에서 같이 일했는데, 5개월쯤 돼서 누리관(로봇학부·경영학부 건물)으로 갔어요. 참 많이 의지했는데. 근데 10월쯤이었나? 그 언니가 일 끝나고 누리관으로 잠깐 오라 하더라고요. 뭔가 했죠. 갔는데, 대뜸 노조를 만든다는 거예요. 인덕대에 노조가 만들어졌는데, 거기 청소노동자들 처우가 좋아졌다고. 우리도 노조 만들면 임금도 인상되고, 복지도 나아지고, 인간적 대우도 좋아질 거라고 말해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덜컥 가입하고 말았어요. 임금 오른다는 말에 혹한 거죠. 노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었죠. 그러고 보니, 제가 노조의 초창기 멤버예요. 노조만 만들어지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너무 순진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노조 출범식 이후부터가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노조를 만들려고 시작할 때부터 이런저런 고난이 벌어졌죠. 그 당시 소장이 대충 눈치를 챘는지, 노조를 못 만들게 막 방해하는 거예요.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나, 시간 날 때마다 점검하고. 조합원한테만 일 더 시키고, 잔소리도 더 많이 하고..."

그런 사수에게 소장이 찾아와서 "노조를 만들면 뭐가 좋냐"고 물었단다. 그 당시 사수는 노조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무작정 "노동자한테 좋은 거 아니냐"고 따지듯 대답했단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버팀목이지 않은가. 처음 가입할 때부터 노조가 만들어질 때까지 사수가 겪었던 몇 달은 거의 첩보 영화 속 주인공과 다름없었다. 그때 그 소장은 회사에서 해고됐다.

"우리가 2013년 11월 1일에 노조 출범식을 했어요. 그때 다른 분회 조합원들이 우리에게 연대를 왔죠. 우리 분회가 출범식 할 때 한 30명 정도 됐는데, 그 언니들이 걱정 말라고 했어요. 이제 인간 대접 받을 거라고. 정말 그때 큰 힘이 됐어요."

현재 사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사무장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무장은 아니었다. 그냥 노조 내에서 나이가 어린 열혈 조합원이었다. 노조 활동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게 전부다. 초창기 분회장이었던 그 동기 언니가 개인적 사유로 분회장 자리를 내놓으면서 당시 사무장이 분회장으로 당선됐다. 그 때문에 공석이던 사무장 자리는 어느새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던 사수로 추천됐다.

내가 근처에서 바라본 사무장의 역할은 노조의 살림꾼이었다. 운영비 등 예산을 관리하고, 노조 내의 사무 전반을 관장한다. 요즘은 회계 감사 준비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수는 노조 전임자가 아니다. 노조 임원은 곧 전임자란 등호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 제2항을 보면, 전임자는 전임기간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지 못한다. 물론 전임자의 임금 손실이 없는 근로 시간 면제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광운대분회 임원은 유일하게 분회장뿐이다. 그래서일까. 사수는 자신의 직무인 청소는 물론이고, 노조 임원의 역할까지 동시에 맡는 중이다.

"아직도 어딘가 나가서 발표하면 얼굴이 새빨개져요. 임원인데, 총회 때 조합원들 앞에서 발표하면 가슴이 콩닥콩닥해요. 학창시절 때도 발표시킬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요즘은 그래도 사무장이 돼서 그런지 많이 나아졌어요."

사수는 참 소녀 같다. 감수성도 풍부하고, 부끄러움도 많다. 그렇게 앞장설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수는 지난 몇 년간 투사의 모습을 보였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대학 청소노동자의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 간접 고용으로 야기되는 '가짜 사장, 진짜 사장' 문제는 이 사회 전반에 팽배하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도 여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청소노동자 시급 1만 원은 언제쯤 가능할까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포스터가 붙어 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포스터가 붙어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나는 화장실의 꽉 찬 쓰레기통을 비우고, 휴지가 떨어진 곳은 새 휴지로 간다. 그러고 나서 잠깐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봤다. 마침 오늘은 최저임금위원회 제9차 전원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렇다. 요즘은 최저임금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최고 화두다.

"요즘 1~2만 원 들고 가면, 시장에 가서 살 게 없어요. 몇 개 고르면 금방 만 원이 넘어가는데, 뭘 사요. 가뭄 때문에 채소 물가도 갑자기 확 올라갔어요. 살 건 많은데, 고르기가 두려워집니다. 마트 갈 때마다 바구니가 점점 가벼워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도 우리는 노조가 있어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임금인 건 마찬가지예요. 최저임금 만 원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사실은 사수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최저임금을 받아왔단다. 2년 전까지는 모든 수당이 최저임금으로 환산됐다. 최저임금과 별개로 퇴직금, 상여금 등의 수당이 따로 지급돼야 했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원래부터 그런 건 줄 알았단다.

그 결과 최저임금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명목상 최저임금이었지만, 실상은 그 이하였다. 다행히도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지금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건 그만큼 노조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시급 만 원은커녕 올해 시중 노임 단가(8019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얼마나 될까. 그도 그럴 것이 그 최저임금이 청소노동자들의 내년 임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정말 피부로 와 닿는 문제예요. 결국 제 문제죠. 우리가 함께해야 우리의 문제도 해결될 테니까요. 그런데요. 성신여대랑 한성대가 청소노동자들한테 생활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던데, 혹시 그 소식 알고 계신가요?"

끊임없이 투쟁하고, 요구해야 한다

사수가 손걸레로 창문틀을 닦고 있다.
 사수가 손걸레로 창문틀을 닦고 있다.
ⓒ 김동수

관련사진보기


1층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휴지 뭉치를 주웠다. 대충 화장실을 정리하고 나오니, 사수가 2층에서 내려온다. 사수는 당시에 손을 덜덜 떨면서 가입했던 노조의 중요성을 내게 전해줬다. 그 이야기는 2층으로 터벅터벅 올라가던 학생들도 들었을 것이다.

"제가 노조를 하면서 느낀 건 우리가 하나 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의 단합된 힘을 보여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 조각 취급을 받을 거예요. 그래서 더 똘똘 뭉쳐야겠지요.

비록 요즘 내·외부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얻기 위해 사무장으로서 더 사명감을 갖고 활동해야 할 것 같아요. 수많은 난관이 광운대분회 앞에 나타나겠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사수는 조곤조곤 비정규직 문제도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청소노동자 자신을 넘어선 지 오래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새 그 자식의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 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대물림되는 시대다.

"내 자식이 정규직 되기가 진짜 하늘의 별 따기예요. 옛날에는 고시 공부해서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지금은 고시 공부 저리 가라죠. 4년제 명문대 들어가도 비정규직이 태반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나 제 아이들이 나중에 노조에 가입하면 환영할 것 같아요. 노조 가입하고 많은 것이 변했거든요. 제 아들, 딸들도 자신들에게 닥칠 불합리한 노동 현실을 스스로 바꿔나갔으면 해요. 저도 응원할 거예요. 제가 지금 노조 활동하는 것을 제 남편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니까요. 항상 고맙고, 미안해요."

사수의 말이 멋졌지만, 한편으로 슬퍼졌다. 맞는 얘기지만, 그게 또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청소가 마무리됐다. 사수가 노동자에서 다시 아내이자 엄마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사수가 전자정보공과대학건물인 비마관 경비실 앞에 부착된 카드 리더기에 출·퇴근 카드를 대니,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 리더기는 최근에 회사가 설치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니,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수는 내일부터 운동을 시작할 거라 귀띔해줬다.

"이게 육체 노동이다 보니까, 건강 관리도 중요해요. 가끔 체력이 안 따라줘요. 그래서 운동 계획을 쭉 짜놨죠. 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요. 아니지. 하루도 안 지나서 무용지물이에요. 내 자신에게 계속 핑계를 대고 있더라고요. 내일부터 진짜로 운동해야 하는데..."

집으로 발걸음 하는 사수는 매번 청소를 하며, 또 노조를 하며 무엇을 느꼈을까.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 현실이 갑자기 바뀌는 마법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몸소 깨닫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사수는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요구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불합리한 노동 현실을 바로잡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노동자 자신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수는 노동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꾼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청소노동자, #광운대, #중앙도서관, #노동조합, #사무장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동자의 삶을 그리는 기록노동자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재해, 사고, 폭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