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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2박 3일, 31명의 청년들이 경상북도 영덕군과 청도군으로 봄농활을 떠났다. 수도권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출발한 이들은 각각 영덕군 창수면, 지품면, 남정면 등 3개면,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로 나누어 들어가 한창 뜨거운 봄볕을 맞으며 농사일을 도왔다.

해가 저물어 농촌의 하루 일과가 끝나자 준비해온 자료집을 펼치고 교양시간을 진행했다. 함께 탈핵과 탈송전탑, 탈성장을 공부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다.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아래 초록농활)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 이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삶을 나누었던 주민분들과 여름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초록농활대는 오는 6월 20일부터 27일까지 7박 8일 동안 영덕으로 여름농활을 떠난다.

다시 한 번, 삼평리에 '평화'를...

삼평리로 간 대구경북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이 주민들과 함께 복숭아 농사를 돕고 있다.
▲ 복숭아 농사를 돕고 있는 초록농활대 삼평리로 간 대구경북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이 주민들과 함께 복숭아 농사를 돕고 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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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에는 345kV 송전탑 40기가 세워져있다.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시작해 밀양을 지나 북경남변전소까지 이어지는 756kV 송전선로에서 갈라지는 3개의 북경남 분기선로 중 하나가 청도군을 지나기 때문이다. 청도의 송전선로는 풍각면을 거쳐 각북면을 지난다. 특히 각북면에만 19기의 송전탑이 세워졌고, 이중 3기가 삼평1리에 세워졌다.

삼평1리에 세워진 3기의 송전탑은 마을과 농토를 가로지른다. 22호기 부지는 예로부터 마을에서 기우제를 올리거나 자식을 낳기 위해 기도하는 곳이었고, 24호기 부지는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제사를 올리며 모시는 당산나무가 서 있는 뒷산이었다. 23호기 부지는 이곳의 할머니들이 열아홉 청년일 때부터 맨손으로 일궈온 논과 밭이 있는 곳이었다. 마을이 생길 때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던 때까지 한 마을에 대한 오랜 기억을 갖고 여전히 그곳을 일구며 여생을 나던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린 것은 단 세 기의 송전탑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2006년 1월 한국전력(아래 한전)이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를 개최했을 때부터 대다수의 주민들은 마을의 일로부터 이미 배제되어 있었다. 2007년 산업자원부의 계획 승인, 2008년 경상북도와 청도군의 행정 통보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009년에야 각북면과 청도군 주민들이 '범청도군민연대'를 결성해서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섰지만 한전의 회유에 이기지 못하고 삼평1리만 외롭게 남게 되었다. 2010년 24호기 예정 부지가 변경되어 마을 위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안 사람들이었다.

2012년 4월, 22호기 발파작업이 있은 후 같은 해 9월 23호기 철탑 공사가 잠정 중단될 때까지 주민들은 한전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의 폭력과 인권 침해에 시달려야 했다. 마을 내 분열과 사실 은폐는 극에 달해 삼평1리 이장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의견서를 조작한 일도 있었다.

2014년 2월, 대구지방법원은 한전의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주민들에게 공사방해 시 위반일수 1일당 20만 원의 벌금을 내놓으라고 고시했다. <뉴스 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7월 21일 새벽, 한전은 경찰 500여 명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농성장을 부수고 주민과 연대자들을 연행한 후 공사를 재개했다. 한전이 법원에 신청한 대체집행에 대한 심리는 25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삼평리로 간 대구경북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은 일정 마지막날인 지난 5월 25일 '송전탑의 파산을 선고한다'는 내용의 '청년탈핵선언'을 발표했다.
▲ '청년탈핵선언' 발표 기자회견 삼평리로 간 대구경북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은 일정 마지막날인 지난 5월 25일 '송전탑의 파산을 선고한다'는 내용의 '청년탈핵선언'을 발표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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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은 모두 완공됐다. 시험송전이 시작됐다. 3억에 가까운 벌금이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삼평리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7월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연대를 시작으로 많은 연대자들이 이 싸움에 함께 하고 있다. 송전탑이 완공되면서 삼평리를 찾는 발길이 줄었지만 '삼평리 시즌2'를 선언하며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농성장을 새로 세우고, 탈핵증언대회를 열고, 법정투쟁에 나서고 있다. 한 마을의 싸움을 넘어 탈핵과 탈송전탑을 외치는 운동이 삼평리로부터 계속되고 있다.

27년의 싸움, '평화의 바람'이 부는 영덕

영덕군 지품면에 들어간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이 말없이 고추밭 농사를 돕고 있다.
▲ 고추밭 농사를 돕고 있는 초록농활대 영덕군 지품면에 들어간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이 말없이 고추밭 농사를 돕고 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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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는 1989년부터 2003년, 그리고 2005년에 걸쳐 세 차례 핵 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다. 1989년, 최초의 핵 폐기장 건설 계획이 수립되고 예정부지로 영덕, 영일, 울진이 선정되었다. 각 지역 주민들의 주도로 면 단위 집회에 3000여 명의 주민이 참가하고 국도를 점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2003년, 제252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영덕, 영광, 고창, 울진을 방폐장 후보지로 재선정했다. 4개 지역 주민들은 청와대 앞 단식 농성과 삭발식 등 상경시위와 지역에서의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영덕에서는 총궐기대회 등을 진행하며 강하게 반대 운동을 펼쳐나갔다. 결국 그해 7월 부안군이 핵 폐기장 유치청원서를 제출하면서 투쟁은 일단락된다.

2005년도 투쟁은 주민들이 목소리를 모아 핵 폐기장 건설을 막아냈던 두 번의 반대 운동과는 달랐다. 2005년 6월, 원자력위원회 주민투표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핵 폐기장 후보지로 선정하겠다고 공고하자 삼척, 영덕, 경주, 군산 등에서 관의 주도로 핵 폐기장 유치운동이 전개된다. 경주, 군산, 영덕, 포항이 최종적으로 유치신청을 했고 경주가 최종 선정되면서 세 번째 핵 폐기장 건설도 막아내게 된다.

그러나 2005년의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영덕군 주민들의 삶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다수의 주민들이 벌금형에 처해졌고, 공무원의 불매운동으로 식당들이 폐업하기도 했다. 귀농했던 젊은이들은 탄압에 이기지 못해 다시 도시를 떠났다.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한농연)과 농민회 구성원의 경우, 지원사업에서 노골적으로 배제되기도 했다. 그 결과 2005년 이후 지역시민단체들이 실질적으로 해체되었고, 이후 지역 내에서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2010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은 그해 12월 영덕군의 원전 유치신청을 받아 2012년 9월 영덕읍 석리·매정리·창포리·노물리 일대를 신규 원전 4기 유치 지역으로 고시했다. 세 번의 핵 폐기장을 막아낸 영덕에 이제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뜻이다. 2010년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고리 7·8호기 건설 계획이 승인된 후 이를 영덕 1·2호기로 대체하려고 신청했지만, 2013년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이 결정을 일단 유보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2014년 10월, 강원도 삼척시에서 있었던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85%에 달하는 높은 반대율이 나왔다. 올해 6월 말, 정부가 발표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핵발전소 추가 건설 2기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정부지로 함께 논의되고 있던 삼척의 수용률이 떨어지면서 가장 유력한 핵발전소 후보지로 영덕이 떠오르고 있다.

영덕군 창수면에 들어간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원이 정성껏 호박농사를 돕고 있다.
▲ 호박농사를 돕고 있는 초록농활대 영덕군 창수면에 들어간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원이 정성껏 호박농사를 돕고 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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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가 가까워지면서 영덕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때부터 지역 농민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오던 반대 운동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올해 3월 영덕핵발전소백지화범군민연대(아래 범군민연대)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덕 주민의 58.8%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영덕군의회에서는 국회와 정부, 한수원을 대상으로 '국가 사업'에 대한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 주민투표법 개정과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모두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주민들이 나서 평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이윤과 희생의 시스템에서 '생명과 공존의 마을'로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은 농활 마지막 일정으로 핵발전소 예정부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참가단은 농활 마지막 일정으로 핵발전소 예정부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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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농활로 청도와 영덕을 찾아간 '생명평화의 초록농활'은 2011년 여름 탈핵을 외치는 환경현장활동으로 처음 시작됐다. 그해 3월 11일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인류와 핵의 적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했던 이 사건 이후에도 한국에는 수많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지어지고 있다.

2015년 평균 전력예비율은 15%지만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예상한 올해 적정 설비예비율은 22%에 달한다. 2020년이 되면 설비예비율은 30%에 달해 발전설비의 4분의 1 이상이 낭비된다. 전기는 더 필요하지 않지만, 발전소는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핵발전소와 송전탑도 늘어나고 있다.

핵발전과 전력구조 문제의 중심에는 계속해서 전기를 산업으로 키워야 하는 이권의 문제가 얽혀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는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핵발전 산업 육성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담화문 발표에서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아랍에미리트에 건설 중인 원전 1호기 원자로 설치를 보러 출국했다.

정권의 옹호 아래 기업, 재계, 학계가 뭉쳐서 전력마피아·핵마피아를 형성하고, 이들은 고리 1호기 정전, 핵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 수많은 사건들을 은폐하고 조작해왔다. 핵발전소 1개당 공사비는 3조 8천억 원이 넘는다. 발전소를 짓고 만든 전기는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수익을 보장하고 매입한다. 전기는 더 필요하지 않지만, 이윤을 만들고, 그 돈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을 강요당한다.

오늘날 농촌은 끊임없이 이윤과 희생의 시스템으로 내몰리고 있다. 땅투기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논과 밭, 빚을 내어 짓고도 수익을 낼 수 없는 농사, 고령화 현상과 소농의 몰락까지 농촌의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의 유일한 자산인 땅은 국가정책이라는 이유로 핵발전소와 송전탑의 근거지가 되면서 또 다시 위협받고 있다. 수도권에 공급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전력설비가 농촌으로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강남의 모든 송전선로가 지중화될 수 있지만, 삼평리 단 두 기의 송전탑을 잇는 송전선로는 지중화될 수 없었다. 핵이 아무리 위험해도, 그래서 85%에 달하는 삼척 주민들이 핵발전소를 거부해도 국가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초록농활은 사라져가는 농활의 연대정신을 계승하고 청년세대의 새로운 생태운동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지속되어왔다. 몇몇의 이윤을 위한 모든 희생이 농촌으로 미뤄지는 지금, 청년들은 시혜적인 봉사홛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연대를 위한 농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 희망은 2011년에는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이 있었던 삼척으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있었던 밀양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5년째를 맞는 지금도 청년들은 변함없이 생명과 평화를 외치며 연대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오는 여름, 공존의 발길을 만들기 위해 다시 청도와 영덕으로 향한다.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은 오는 6월 20일부터 27일까지 7박 8일간 영덕에서 진행된다.
▲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포스터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은 오는 6월 20일부터 27일까지 7박 8일간 영덕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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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영길 기자는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기획단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태그:#탈핵, #생태, #영덕, #청도,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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